생각하는 사람

2009년 여름, 기록.

postever 2009. 7. 10. 00:01

오늘의 흔적과 어제 스쳐갔던 생각들을 모두 남기고 싶은데 여유가 없으니 짧게 메모라도 해 놓아야겠다. 산만할 게 뻔하고 요즘 글도 지지리 안 써져서 짜증이 나지만서도 그래도 기록해 두고 싶으니 이건 뭔 심리인지 모르겠다.


0. 2009년은 하루하루가 아깝다. 그냥 흘러가는 것 같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있는데도 뭔가 긴장이 된다. 폭풍 전야 같기도 하고, 난 지금 이 시기가 서른 넘어서부터 달려와 아주 바닥까지 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명확히는 모르겠지만서도)

내 인생에서는 10년 주기로 바닥을 칠 때가 오는데, 남들 다 꽃 피는 시절인 스무 살때가 그랬고, 역시 남들 다 결혼하거나 직장에서 뭔가 자리를 잡아가는 서른 살 때도 그랬으니 영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다행히 그 바닥을 치는 시기인 2, 3년 정도를 보내고 나면 10년 중 나머지 7년은 그야말로 무탈하고 나름 만족하며 잘 지냈던 것 같다. 헌데 이번 서른부터는 슬럼프 기간이 꽤 길었다. 4년하고도 7개월을 바닥을 쳤으니.......

그런데 이제 드디어 벗어날 때가 온 듯한 신호를 내 속에서 자꾸 보내온다. 아니면 하늘에서?
아마도 내년부터는 사주로 말하면 '운이 트이는' 시기가 올 것 같고,
지지부진했던 내 삶에 변화가 올 것 같기도 하다.
딱딱한 땅을 박차고 위로 휙 뛰어올라야지.


1. <병원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재밌었던 대화>
나 29년생.
나이가 몇인데?
일흔 둘.
아이고..애기네.
애기는..매일 병원 오는데.
좋은 데서 만나야지.

1929년생에게 일흔 둘은 '애기'다.
올해는 2009년. 1929년생 할머니는 꼭 천 년을 사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ㅎㅎ


(이런 얘기들을 단막극 드라마 속에 넣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2. 할머니들한테는 유난히 눈길이 간다. 병원에서 뵌 1929년생 할머니처럼 씩씩한 할머니들을 보면 기분이 좋고, 쭈그렁팥죽에 허리는 꼬부라진 할머니가 열심히 길을 가고 계신 걸 보면 마음이 쓰리다. 얼마 전 만난 405호의 치매 걸린 할머니의 모습에서는 외할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쭈그렁한 할머니들의 얼굴 속을 자세히 보면 아주 어린애 같은 얼굴이 나오는 것도 신기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든 그 내용과는 무관하게, 그 나이까지 살아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젊은 사람들은 그 분들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 그 질과 양은 다를지라도 삶의 우여곡절을 다 겪어왔고, 그 몸에는 희노애락이 다 섞여 있어서 화석처럼 어딘가에 다 남아 있을 것이며, 개인과는직접적으로 관계 없어 보이는 정치나 사회, 문화적인 변화들 속을 통과하여 걸어 온 것만으로도 그 분들은 대접받아야 한다. 이젠 편하게, 내 real 존재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남은 생을 살 수 있도록 사회는 도와줘야 한다.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다.


3.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모니터에 내 나이가 '32년 9개월'이라고 떴다.
   그리고 여기저기 내 신체의 내부 모습들이라면서 화면으로 보여준다.
  32년 9개월짜리 몸. 다 정상이라고 해서 고마웠다.


4. 마이클잭슨이 죽었다. Heal the World를 들었던 게 중학교 때였던가? 처음 들었을 때  세상에는 이런 아름다운 음악도 있구나 하면서 심 봉사가 눈을 뜨듯 심장이 꽉 차는 것 같은 음악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였다.(그런 음악은 1.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 2. 쇼스타코비치 3. 에어서플라이 4. 카펜터스)
 
추모 공연을 보며 인종 차별이 없는 나라에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뚱맞은 생각도 했다.

 장국영, 최진실에 이어 마이클잭슨.
 내가 알던 스타들의 죽음.


5. 여름이긴 한데 계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좀 정신이 없다는 뜻.

6. 우아한 W 선생님. 어디서나 그렇듯 교수들 사이에서도 인물은 중요하다. 특히 여자는 더더욱.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남성과는 대별되는 여성 특유의 '우아함'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햐는 듯하다. 똘똘하거나 여장부 같은 스타일은 성별에서 얻는 이득이나 실은 전혀 없다. 남자들이 드글대는 곳에서 자기 위치를 확보하고 살아 남는 방법은 여성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흠-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태도.
어떻게 하면?
(일단, 모든 사태에 대한 여유있는 태도가 기본으로 깔려야 할 것 같다.
  침착함. 긍정성(낙천성은 아닌 듯))

난 사실 이런 류는 좀 아닌데......
공부를 하는 곳에서의 나는 (아마도) 훨씬 팔팔한 이미지다.


7. 감정적인 부류들은 어디선가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젠틀하게 대처하는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감정적 대응은 감정적인 반응만 부를 뿐이다.

8. 논문. 문자에 사로잡히지 말 것. 생각이 중요하다.

9. 생산

   박진영 아래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던 것 같은 박지윤이 스스로 작사작곡을 한 곡이란다.
   뭔가 스스로 생산해 냈다고 하면 확실히 있어 보인다.
   가수든 누구든.
   나도 얼른 논문을 생산해 내야지. 있어 보이게...흐흐흐.
  
*내 친구 O가 건강하게 둘째를 낳았다. 같은 맥락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들 역시 뭔가를 스스로 생산해 냈으니 있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삶은 정체된 것이고 답답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소비만 하는 사람은 쓸모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내 가치 판단으로는 그 사람이 생산성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이 보일 수는 있어도 분명 그 사람도 이 세상에 기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11. 해 보고 싶은 일
  -. 작곡, 화성악 배우기
  -. 동화책 쓰기. 삽화는 엄마.
  -. 단막극 써서 공모
 

 12. 지금 하고 싶은 일
  -. 야외 수영장에서 평영
  -. 산책
  -. 하늘이 껴안고 자기
  -. 합창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