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혼동의 여름
혼동.
더위도 더위지만 이번 여름은 여러 변화와 사건, 그에 따른 나의 자리매김 때문에 지치고 힘들었다.
1. 결혼 생활에서의 자리매김
좋고 상대방에게 감사한 점이 많은 결혼생활이지만, 역시 혼자 살다가 둘이 사는 것에는 적응이 필요했고, 지금도 적응 중이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양보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무엇이 배려이고,
무엇이 사랑인지 고민하게 된다.
또한 둘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할 것과 그와 함게 해야 할 것들의 경계도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을 그와 나눌 수는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반대로 그의 모든 행동과 생각들을 내가 알아야 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나눠야 한다는 매우 이상적인 바람이나 기대도 버려야 한다.
언젠가 유행했던 말처럼 부부는 '따로 또 같이'가 적절히 배합되며 살아가야 한다.
2. 부모님의 늙어감에 따른 역할
아빠의 병세에 따른 우울함, 양수리 집에 갔을 때의 짓누르는 무거움.
40여 년 함께 했으면 서로 포기할 것 포기하고 인정할 것 인정할 만도 한데,
계속 상대방은 이상하다고 지적하고 짜증내고 소리치는 관계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먹이 사슬 피라미드처럼, 아빠는 엄마에게, 엄마는 내게, 나는 남편에게 힘듦을 토로한다.
이 사실이 힘들고 답답했다.
게다가 엄마까지 관절 수술을 하고 나니, 이건 원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순간 들었다.
하지만 참 뭐랄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인지,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 엄마의 수술이 우리 가정의 밑바닥까지 간 계기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빠는 할 수 없이 엄마를 대신하여 움직이기 시작했고, 잘은 모르지만 해야만 하는 책무가 부여되었기에 그간의 무력감에서(힘은 들지만) 벗어나거나 혹은 경감되었거나 한 듯 싶고,
엄마는 오랜만에 모든 일을 자신이 해야 할 수밖에(능동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는 피동)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또 며칠 아빠와 함께 있다보니, 좋은 가정의학과 선생님도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바로 실천하게 되었고....
그리고 난, 더 강해진 것 같다.
내가 그동안, 근 삽십 몇 년간 받아온 관심과 사랑을 이제는 부모님게 서서히 돌려드려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그런 때가 시작되었구나 싶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하필이면' 그 때가 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될 때인 것이 유감이지만- 이 사람은 나 때문에 장인, 장모와의 즐거운 추억도 없이 갑자기 의무만 다 하게 된 것 아닌가- 뭐, 어쩌겠나. 우리가 늦게 만났기 때문인 걸.......내가 중간에서 간간이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잘 해야지.
3. 연구자
오늘 3시간 여 스터디를 마치고ㅡ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의심을 잘 풀지 않는 내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지지하고 대하는 상대방에게 미안했다.
나 역시 그러하다는 식으로, 상대방을 기만해 온 것 같아 미안했다.
연구에 대하여 열과 성의를 다 했던가.
순수한 연구 목적을 가지고 했던가.
다른 것들만 탓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나의 비순수함.
그리고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불성실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심지를 가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흘끗흘끗 주위만 살펴서는, 나도 괴롭고, 결과 역시 참담할 뿐이다. 설령 결과가 잘 나왔다 하더라도 난 계속 갈등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나의 태도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가장 혐오한다고 말하는 '얄팍한 처세술을 가지고 요리조리 살아가는 부류'와 내가 무엇이 다른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고 순수한 자세가 기본이다.
4. 남은 방학
7월이 그냥 지나가고, 방학도 20여 일 남았다.
-마무리할 논문, 시작할 논문, 연구계획서 낼 것 착수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개학하기 전에, 꼭 서울을 떠났다가 와야겠다.필그림하우스라도 다녀와야지.
예배에 대한 집중과, 그 집중의 즐거움도 회복하고.
-몸이 온갖 스트레스와 더위로 엉망이다. 어깨가 아파서 보름 정도 매일 파스향이 나는 아로마를 바르고 자봤는데 별 소용이 없다. 3일 전부터는 어깨 통증이 왼쪽 머리로 올라와서 두통과 눈에 열감이 느껴진다. 집 근처 수영장을 찾아보니 다행이 학교 근처에 걸어갈 수 있는 곳에 하나 있다. 자유수영은 딱 한 시간. 환경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일은 한번 가보려 한다. 양수리에 장을 봐서 가야할 것 같기도 한데, 14일 수요일에 움직여 봐야겠다. 내일은 일단 강의계획서 초안을 잡아두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