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난다' 카테고리, 오랜만이다.

12시30분부터 저녁 6시. 중간 10분 쉬는 시간 몇 번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합창 연습을 했다. 마지막 곡을 노래할 때쯤엔 머리가 띵하고 손이 좀 떨리기도 할 정도. 몰입의 시간들이 스르륵 지나갔고, 즐거웠고, 신났고, 감동적이었고, 노래하는 목소리들을 들었고, 어여쁜 모습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처음 본 선후배도 노래와 함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듯 허물이 없어지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노래, 합창의 힘 덕분이겠지. 

평균 나이 중년인 사람들이, 토요일 11시부터 모여서 준비를 하고(그 전에도 모이기 위한 수고들이 있었다.), 김밥과 커피를 먹고, 계속 지휘자를 바라보며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우리 속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저녁을 같이 하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공연 다음날처럼 계속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내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맴맴 돌았던 자잘한 고민거리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별 거 아닌 듯 가벼워진다. 이게 도파민 분비 때문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사소한 생활의 문제들, 해야할 일들이 '그냥 하면 돼.'로 변화되고 있었다.

하루도 채 못 채운 시간으로 사람의 정신상태와 세상을 바라보는 상태가 달라지는 걸 보면, 인간은 얼마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동물인지. 나란 사람이 얼마나 그런 류의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는 듯하다.

남편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우리 딸에게도 이런, 좋아하고 몰입하는 일에 흠뻑 빠져 지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릴 때 경험하는 이런 시간들은 정말 귀하겠구나, 다시 느꼈다. 재이를 좋은 곳으로 가서 참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그런 순간들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일상에 매몰된다',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 이런 은유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와 남편에겐 '연구-강의-재이 돌보기' 주로 이 세 가지 유형의 일상이 너무 오랜 시간 반복되어 왔다. 재이도 비슷하겠지. 재이도 학교- 가끔의 수영/피아노 학원-영어 공부. 이 세 가지가 너무 반복되어 왔다. 우리 모두에겐 특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한번 누렸으니, 남편과 재이에게도 기회를 줄 차례. 그들에게도 전환점이 필요한 여름이다.

2022. 7.1.-7.3

7.1. 금요일.

혼자 여행을 해 보니, 가족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아이를 살펴야 했고, 남편과는 조화롭게 살기 위해 살펴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눈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혼자라는 건, 시간이 흐르는 대로, 앞에 무언가가 보이는 대로 가거나 서거나 내가 좋아하는 걸 먹거나 하거나 하면 된다는 걸 의미했다. 그 누구도 살필 필요가 없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뭐랄까 관계의 확장 가능성.

 

오늘의 압권은 뿔소라무침과 해안도로를 따라 탄 전기바이크였다. 아, 그래 난 뭔가를 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이렇게 오도독오도독 씹히면서 살짝 식초도 들어간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이런 걸 다시 확인했다. 최대 속도가 30km까지밖에 안 되는 바이크를 타며, 이게 진짜 오토바이면 신나겠구나 싶었다. 다음엔 좀 더 빠른 스쿠터에 도전해 보고, 그 다음엔 진짜 바이크에 도전해 봐야겠다. 쾌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 꺄오~ 하는 쾌감.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집에 돌아가면 자전거라도 타야지 생각했다.

 

7.2. 토요일

제주에 있는 친구 집에서 10시부터 밤 12시까지. 합창단 친구들이 모였다. 대학교 때 만난 인연들. 

쌓여 있는 테이프들을 꺼내 보고, 듣고, 엘피 판을 틀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자그만치 3시간 동안 우리가 그동안 불렀떤 노래들을 부르면서 감동하고 환호하던 시간들. 

50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그리고 지휘자의 손 끝에 집중한 눈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어른을 만나, 친구를 만나 이렇게 노래만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육아 이야기도 할 필요 없었고, 생각도 안 났고, 결혼 생활 이야기도 할 필요도 없었다. 

한여름밤의 꿈 같던 시간. 

2013. 2. 18. 새벽 3: 20



2013년 1월 스페인 여행과 독일에서 나름 업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2월 14일까지, 학회 원고 때문에 근 2주 스스로를 썩혀 가며 지내고 나니, 2월 18일이 되어 있다.


한 달 반 가량을 바쁘게만 막 달려왔고, 그동안 수많은 생각과 각성과 감정들이 뒤섞여 지나갔었는데 정리하지를 못하니 좀 답답(?)하다.

여행부터 하나하나 정리하고 기록해 두고 싶었는데, 정말 여행 돌아와서부터 영 짬이 나지를 않았다.(아주 비생산적인 회의도 해야했고, 공무원 보고서도 써야 했고, 수업계획서도 2개 올려야했다.)


오랜만에 아무 부담감없이 내일을 맞고, 새벽을 보내고, 책을 읽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 참 평화로다.

아주아주아주 살 것 같고 이 시간이 꿀맛 같다.

이런 새벽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강의를 준비하다가 문득 조혜정 선생님의 책이 생각나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다시 꺼내들어서 읽고 있다. 이미 1996년에 출간된 책이라서 그런지, 이 선생님과 나의 세대차이인지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더러 나타난다. 예컨대 공부하는 사람을 '학자'가 아니라 '지식인'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조혜정 선생님을 이를 한탄하며 비난조로 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조차 내게는 공부하는 사람을 무슨 특정 계급인냥 인식한 말로 들린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무슨 지식인인가. 그냥 직업인일 뿐이다.그저 직업이 공부하는 것일 뿐이다. 공부의 질이 어떠냐에 따라, 또 그 공부하는 사람의 관심이 어디로 가 있느냐에 따라 A는 자기가 파 놓은 우물 안에서, 무슨 말인지 타인도 자기도 잘 못 알아듣는 말을 하며 지내고, B는 우물 밖으로 나와 뭔가 이 세상에 도움을 주려고 애쓰기도 하면서 사는 게, 그 정도쯤 다르겠지 싶다. 어떤 일이든 그렇겠지만, 공부하는 사람은 잘 해야지, 잘 못 하면 정말 사회악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어쨌든,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여야 하지 않겠나.(이런 의미에서 내 일을 열심히 해야된다!)


사회학자가 쓴 이 책에는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날카로운 도구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좀 터프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 보면, 언어학에서 특히 내가 싫어하는 몇몇 분야에서는 so, what? 하는 질문을 불쑥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특히 지루한 이론적 싸움-몇몇 자기네들끼리만 하는-이나 통계 자료를 들이대면서 양적인 것이 진실인 냥 얘기하는 것들이 그렇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면에서 언어학을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유익한' 사람들 같다.=) -이쪽 세계를 잘 몰라서 할 수도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 초반에 재미난 얘기가 하나 있었다. 모호한 것을 규정해 내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사유와 존재의 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불연속적 자아'의 개념 같은 것은 것.

혼란스러운 일상을 몇 개의 개념어로 규정해낸다는 게 꽤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연속적 자아-'봉건'과 '근대'와 '탈근대'적 상황을 한꺼번에 소화해 내야 하는 제3 세계 주민의 실존을 가장 잘 표현해 낸 개념일 수 있다. 제3 세계 근대화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이미 탈근대의 시작이었다."



나 역시 제3 세계 주민인가? 봉건과 근대와 탈근대를 한꺼번에 소화해내야 하잖아.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들은 자신들이 '낀 세대'라고 얘기하지 않던가. 예전부터 이게 참 웃겼다.  어떻게 모든 세대들은 하나같이 자기네들이 가장 혼란스러운 때 태어났고, 자라났고, 그렇게 끼어서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건지..... 어쩜 그렇게들 똑같은 말을 하는지.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들은 시간이라는 축 속에서 살아가면서 불연속적 자아를 경험하다가 통일감을 이루는 소수의 몇몇을 빼고는, 그냥 그러다 죽는 것 같다. 이게 나인지 그렇다더라의 표상인지도 모르는 채. 구분하지도 않고 혹은 그럴 필요도 못 느끼면서......


 나와 내 친구들만 봐도 개인과 가족, 인간과 여성과 남성, 한국의 관습들 속에서 살면서 도저히 몸에 밸 수 없는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전체주의, 이성과 감성, 합리와 정...이런 기준들 속에서 애매하게 헤매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매우 불연속적으로. 


 저자는 자기 자신은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소셜리즘, 페미니즘, 포스트 콜리니얼리즘을 모두 수용한다고 말하는데, 정말일까? 2013년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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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전까지 할 일>

1. 공적인 일: 28일까지 투고, 강의 4시간, 사례분석 2건(매주 1건씩), 3월 4일까지 마감(?)

2.개인적인 일:

 -컴퓨터, 노트북 속 파일들 정리(삭제, 통합, 분류): 집, 연구실

 -자전거 습관 들이기

 -10 to 6

 -연구실 서류 뭉치들 정리(삭제, 분류)

- 1월 스페인 여행 사진, 기록 정리, 인화할 것 몇 장 

- 옷장 정리, 인터파크 대청소

-양수리 집에 가 있고 싶다.....[주말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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