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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구천을 떠도는 귀신처럼2025

"일이 안 되는 시기다"라는 인정

by postever 2025. 8. 4.

아이의 여름방학을 쨍한 여름처럼 같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함께 할 것들을 계획해 놓았지만, 내 일은 진행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압박으로 다가오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 아이의 방학을 2주 보냈는데, 마감일이 일주일 연장되어서 오늘까지 마무리지어야지 했던 논문은 결국 투고를 못했다. 내가 마감일에 쫓기면 항상 남편과의 관계는 삐그덕거린다. 내가 예민해져서인지, 예민한 남편도 불편함을 느껴서인지, 내가 열심히 일을 할수록 가정의 평화는 깨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내 커리어를 찾아가지 않을 때, 집안 일-먹고, 치우고, 돌보고-을 열심히 할 때 가정의 평화는 찾아온다. 이렇게 되려면 나는 모든 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지금은 그냥 아이와 함께 할 때이지라고 생각하거나, 가정의 평화가 곧 나의 평화요...뭐 이딴 식의 생각만 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젠장.

 

돌이켜보면 내 커리어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를 난 판단을 잘못해서 버려버렸다. 2018년-2020년. 박사학위를 받은 지 10년 정도 되는 때가 커리어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그때가 테뉴어트랙, 전임 자리를 잡아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졸업을 하자마자 비정년트랙이긴 했으나 계속 전임 타이틀로 취직이 되었었기에,  당시 전임 자리를 버리고 내가 미국으로 가서 3년 정도 있다 오더라도, 다시 이런 포지션으로는 돌아올 수 있지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인데.... 쉽게, 순조롭게 얻으면 그게 귀한 줄 모르는 법이다.  여튼, 2025년. 나는 3년 간의 미국 생활 후, 다시 내 원래 자리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기에, 재이의 영어 실력과 나의 커리어를 맞바꿨다고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재이의 영어가 해결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하면서.

 

이제 50을 바라보면서, 안정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칠 환경을 기필코, 반드시, 가져야겠기에, 나름 다시 돌아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말 그대로 '고.군.분.투'. 아무도 나를 도와주거나 봐주지 않는 환경에서, 능력치를 최대한 쥐어 짜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는 내가 어떤지 전혀 알 턱이 없고, 자신의 여름방학을 엄마가 즐겁게 놀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아이에게 그렇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놈의 책임감과 사랑 때문에 열심히 어딘가를 다니고, 놀고, 먹이고 있다. 남편은 날 그닥 봐주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마감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해도 왜 미리미리 하지 않고 닥쳐서 이러냐, 왜 가족들에게(=자신에게) 피해를 주냐는 말을 한다. 그런 고로, 이 사람의 '네가 계획하고, 만든 일이니 네가 책임져'라는 원칙에 의해, 아이를 어디 데리고 다니고 하는 것은 아무리 마감일에 동동거리며 전 날 밤을 지새웠어도, 온전히 내 몫이다.  그는 이상하게도 나에 대한 측은지심이랄까 이런 게 거의 없는데,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은 아닌 듯하고....  여튼, 그가 나에게 이러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여러가지 이유와 원인이 쌓여 있기 때문일거다. 그가 처음부터 이랬겠나 싶은데, 지금 나에겐 그의 감정과 쌓아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물어보면서 이해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풀고 나갈 큰 숙제고 문제다. 알랭드보통의 책 제목처럼,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가" 뭐 이런 주제로.

구질구질하게 그에게 내 형편을 봐달라고 구걸하기도 싫으니, 나는 그저 버티고 있다. 그래, 드럽고 치사하다. 내 힘만으로 온전히 이 시기를 타파해 나가겠다 뭐 이런 마음이 깔려 있으니, 나도 그에게 말이나 눈빛이 곱게 나갈 리는 없다.

문제는 늙음과 체력이다. 아이와 뭔가를 하고 나서 재우고 난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집중해서 논문을 생산해 내야 하는데, 체력이 안 된다. 다리가 저리고, 너무 피곤해서 집중이 안 되는 거다. 특히 통으로 나에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조각조각 찢겨진 시간 안에서 연구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을 기반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 남고 싶다. 여기서 주저 앉기는 싫다.

1) 아이를 어디에 데려가서 픽업해 올 때까지 기다리는 40분, 50분, 1시간, 2시간 정도의 조각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을 미리 정함. 

 -이미 써 둔 논문 문단 1개 다듬기/ 초안 한 문단 고치기 등.

- 목차 정리하기/ 연구 지원서 제목 후보 3개 구상하기 등

-연구 노트 메모하기 

-단순 자료 분석, 참고문헌 리스트 업데이트/정리하기, 

2) 8.20 아이 개학 때까지는 육아 7: 연구3의 비율로 가기. 연구를 놓지 않아야 한다.

3) 연구 노트를 계속 작성한다./ 최소한의 연구 루틴을 유지하면 감정을 균형 잡히게 유지한다.

: 흐름이 끊기면 끝이다. 매일 정리한다. 한 것/해야 할 것.

4) 기록해 놓자.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연구를 하는 아줌마의 삶에 대한 기록,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 나중에 우리 재이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 재이가 일을 할 때 나처럼 이렇게 여성의 역할/ 혹은 육아와 남편과의 가정사 때문에 자신이 계획했던 흐름을  놓칠 경우를 대비해서, 나처럼 실수하지 말라고, 혹은 이런 남자와 결혼해라..등등 나를 반면교사 삼아서 더더욱 지혜롭게 살아나갈길 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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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감사할 것은  우리가 좀 삐그덕거려도 재이는 매일매일 나와 남편의 사랑을 먹고 해맑게,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하면서 잘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도서관도 같이 갔고, 책도 보고, 런닝맨도 같이 웃으며 보며 잘 보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영재원 뮤직캠프가 기대된다는 아이. 엄마가 섬그늘에를 매번 잘 때마다 불러 달라는 아이, 꼭 껴안아줘라고 말하는 아이. 아- 오늘 하루도 잘 보냈지.... 내 논문 투고는 날아갔지만...그래도 하나라도 잘 했으니 다행이다. 

내일은 남편이 재이를 뮤직캠프에 데리고 간다고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천금 같은 시간이 생긴다. 집중해서 논문 작성을 하고, SNPE도 가서 뭉친 어깨와 허리도 풀어줘야겠다. 8월 12일로 학회지 마감일이 미뤄진 게 있다. 여기에는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을 꼭 투고하려고 한다. 제발 무사히 해 낼 수 있길. 

12시30분엔 자고, 6시30분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하면 좋은데...안방으로 내 책상을 옮겨놓는 바람에,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도 눈치 보이고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것도 눈치보인다. 정말 짜증난다. 내 공부방이 필요하다. 어떻게 할까. 방이 4개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돈만 있다면 오피스를 구하고 싶다.

내일부터 비가 많이 온다던데.... 무사히 잘 지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