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부하는 사람/엄마연구자: 연구실 312 (since 2026)

엄마 연구자의 임용 소회

by postever 2026. 3. 3.

내일부터 새 학기, 새 출발, 매번 가던 학교지만 임용이 되고 난 후의 첫 출근이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2월에 연구실 세팅과 집안 정리를 다 끝내놓고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학교에서 새 방에 해 준다는 페인트칠은 2월 26일에나 끝이 났고, 3월2일, 어제에야 바닥 공사를 했다. 일단 내 돈으로 계약금을 냈고, 나머지 잔금은 내일 학교에 가서 연구정착금으로 처리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현재 내 연구실에는(빈 방이었기에 1월 말에 이미 받아놓았는데도...) 학교에서 지급된 책상 1개와 의자 1개, 책장 1개, 서랍장 1개가 있다. 그리고 오늘 바닥공사를 했던 터라 문까지 열려 있는 상태다. 머리가 아프다. 이런 식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여튼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연구실 집기도 하나 없는 와중에 나는 어떤 연구 프로젝트 하나에 배정을 받아서 이미 회의는 한 번 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임교원의 편의는 미리 봐주지 않는 게 학교의 행정인가 싶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누구 하나 없었을테니, 학교에서도 굳이 나설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그래도 신임교원들이 안정적으로 잘 정착해야 학교에도 좋은 것일텐데..... 내가 학교 행정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개구리 올챙이적을 소환해 내서 이런 건 어떻게 좀 바꾸고 싶구만....

 

여튼, 지금 상황은 이렇지만, 2026년 12월 31일부터 2월 28일까지...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2026년 1월 말,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믿어지지 않았던 시기였고, 2월엔 나와 너덜너덜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낸 수많은 동지들(?)에게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고, 나의 스승님들께도 축하를 마음껏 받으며 분주하게 보냈다. 물론 부모님, 남편, 친지들도 무척 기뻐했는데 어두운 시기를 동고동락한 동기들과는 다른 결의 기쁨과 축하였던 것 같다. 한편으로 2월엔 너무나 잘 해내고 싶은 책임감이 몰려와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다보니 3월. 상쾌하게 잘 시작하고 싶었는데, J가 어젯밤부터 감기로 열이 나서, 같이 잠을 자느라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오늘은 임시공휴일이라 동네 소아과는 휴업이라 새로운 소아과를 찾아 갔다 왔고, 저녁엔 다시 열이 난다. 아픈 애 한테 왜 하필 개학 전날 이러냐고 한소리를 하고야 말았는데, 그래서그런지 예민한 아이는 잠을 잘 못 자고 불안해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애 옆에서 한참을 도닥이며 같이 누워 있었다. 모로 불편하게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뭔지, 그리고 지난 10년, 내 생애 처음으로, 내 계획대로 못 살았고(죄다 어긋났고), 다른 인간에게 희생이란 걸 해 본 시간들을 떠올렸다.(육아란 그야말로 책임+희생의 콤보 파티다!)   

작년, 2025년 1월. 12월 총장면접에서 떨어진 직후, 너덜너덜해져 있을 때 감정을 추스리고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었다. 1월 초에 J의 사시수술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무서워했지만 난 정말 두려웠는데, 아이 앞에서는 한껏 씩씩한 척 감추느라 정말 그런 줄 았았다. 70%의 수술 성공률, 겉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수술을 선택했었으니 아이의 눈은, 수술의 결과는 고스란히 내 책임이었다. 수술이라고는 맹장수술과 제왕절개밖에 해 보지 못했었기에, 눈 수술은 상상이 되지 않았고 두려웠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잘 되었고, 결과도 다행이 좋았다. 2025년 1월-2월은 수술 후 아이의 눈이 잘 회복되게끔 집중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잠을 잘 때 눈을 긁지 않도록 하는 게 제일 큰 일이었고, 그러다보니 내 수면 시간과 질은 형편없이 낮아졌다. 잠을 못 자면 난 설사를 하는데, 1-2월은 계속 그런 시기였다. 그렇게 3월, 개강을 했고, 난 다시 논문을 써야했다. 그리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왕복 6시간인 거리의 학교에 나가 수업을 6시간 하고 왔다. (그 학교는 먼 것만 빼고는 모든 게 좋았다. 강사료도 많았고, 학생들도 성실하고 착했고, 캠퍼스도 좋았던....) 8월에 지원 공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좀 더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하면서 스트레스만 받으면서 한 학기를 살았다.  2025년 3월부터 8월까지 생산한 건 논문 1편과 공저 1권이 다였다. 2024년 12월에 두 편의 논문을 무리해서 출판했던 게 있어서 다행이었지, 2025년의 성과만으로는 지원할 수가 없었을 거다. 

그간의 과정들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임용이 되었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게 정리가 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연구자로 살아남기 위해서 할 일.

(우리는) 모든 일의 데드라인을 -2로 당겨 놓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되었을 때 "무리해서" 연구를 해 두어야 한다. 여기서 방점은 "무리해서"이다. 무리하지 않으면 시간은 아이와 함께 흘러가고, 무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특히 아이가 두 세 살일 때) 대부분이었다. 이건 지금도, 내일 개강을 앞두고 나의 모든 계획이 틀어진 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나의 동지들인, 모든 엄마 연구자들과 생존 전략을 공유하고 싶다.

1) 일의 데드라인은 이틀 전까지로 당겨 놓는다.  

2) 시간이 있을 때(=애가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학교에 다니고, 학교에서도 특별한 행사가 없을 때, 공휴일이 없는 평화로운 까만 날에, 아이 학교가 재량휴업인가 뭔가로 쉬지 않을 때를 의미함) 조금 '무리해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