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주 1일> 임신 9개월이 시작됨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았다.

주수가 바뀔 때마다 확실히 몸에 변화가 온다. 새로운 증상도 생긴다.

33주차.

몸이 더 무거워져서인지, 쉽게 피곤해지고 잠이 쏟아진다.

 

어제는 저녁 준비를 하는데, 4~50분가량 서 있으니 허리가 너무 아프고,

식사 후에는 뒷정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오늘도 하루종일 내내 몸이 휘저어져서, 안 되겠다 싶어서 요가를 다녀왔는데

운동 조금 했다고 또 잠이 쏟아진다.

오늘 하루 종일 쪽잠을 두 번이나 잤다.

 

 

4월 30일까지 마감인 논문은 또 글렀네.

논문 하나 못 쓰고 4월이 지나가 버리다니.

뭘 하면서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작년에 비하면, 훨씬 수업이 적은데도 할 일을 제대로 못해 나가고 있다.

 

 

해님이가 태어나면,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시간이 더 많아질텐데,

그 시간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이 얼굴을 보면 분명 행복하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건 분명하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제공해 주는 행복감만으로는 살아가면서 한 구석 공허함을 느끼는 부류라서....

아이나 남편이 주는 행복감으로는 살아가는 의미/재미를 채울 수 없을 게 분명하니까.

해님이가 태어난 후, 논문을 쓰는 건 정말 무리겠지만, 아주 아주 작게라도 뭘 해야될 것 같다. 

 

 

<30주 1일>

 

어제부터 해님이의 태동이 커져서 뭔가가 불뚝 솟아나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해님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제 10주 있으면 해님이를 만날 수 있겠구나.

 

그런데,

해님이의 크기가 커질수록 내 몸은 여기저기가 안 좋다.

8kg가량 몸무게가 늘었고, 허리가 더 자주 아프고, 왼쪽 갈비뼈가 어딘가를 찌르르 찔러서 통증이 있다.

또 해님이의 태동이 배나 자궁에 자극을 주어 약간 억하게 될 때도 있다.

그리고 매우 자주 피곤하다.

 

어제는 산뜻한 봄 날씨에 반비례하는 뚱뚱하고 구질한 외형과 몸의 무거움 때문에 우울했다.

산후조리사와 해님이 맞이 준비물 등을 검색하다 보니 피로하기도 했고 이 일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비용도 생각하게 되고,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고 뭔가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우석과 달리,

난 이런 실질적인 일을 알아보고 결정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알량한 마음가짐이다.

 

 

점심에 해님이랑 요가를 하고, 좀 피곤했지만 기분전환이랍시고 무인양품에 가서 옷을 들썩거리다 원피스 하나를 샀다.

그리고 그 옆 옷 가게에 가서 또 원피스를 입어봤는데, 전혀 맞지 않아서 더 우울해졌고,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부질없고 영양가 없는 우울한 생각들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해님이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봤다.

6주 때부터 30주까지.

아직까지도 실감 나지 않는 광경이고, 아마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도 다른 사람의 일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한 인간으로서,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도해주는 엄마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하루하루를 좀 더 곱씹으며 보내야한다.

 

병원에 가서 3D 초음파로 해님이를 만났다.

4주만에 보는 건데, 해님이는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 5분 동안 복도에서 걷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우석 목소리도 들려주는 등 여러 회유책을 써봤는데,

결국 옆 모습과 양 손과 발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보여줄 뿐이었다.


해님이 몸무게는 1kg이 조금 넘었고(난 임신 전보다 6kg 정도가 늘었다.)

입술과 인중이 날 똑 닮았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우석과 엄마는 코도 날 닮고, 얼굴형도 나란다.

집에 똑같이 생긴 아이가 한 명 더 온다고 상상하니, 그 신기한 광경에 웃음이 나고 기대가 된다.




지난주부터인가 컨디션이 안 좋았다.

허리가 아파 매번 숙면을 하질 못하고, 새벽 서너 시경에 잠들기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저께부터는 새벽 6시10분경이면 해님이가 움직여서 나도 깼다.

철분제 때문에 위는 쓰리고(아플 땐 먹지말다가 밥 먹자마자 먹으라고 한다.)

3월은 다 가고 있는데 논문은 끝내기는커녕 하나도 진도가 나가지 않고, 3월 말 마감일은 다가오고,

시간만 더럭더럭 가고 있는 것 같고,

꽃 피는 봄인데 즐거운 일도 없이 집에만 앉아 있고,

부끄럽지만, 남들은 다 간다는....태교 여행, 혹은 임산부 때에만 누린다는 호사? 뭐 이런 것도 없어서(하긴 난 평소가 '호사'에 가까운 삶일 수도 있는데...)

오늘 병원에 가면서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해님이를 만나고 보니,

배가 뭉치지 않게 남은 3개월, 마음을 좀 더 느긋하고 편하게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내 안에서 나름 고생 중일 해님이를 위해 좀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눈도 깜빡이고, 계속 표정과 손발을 움직이는 해님이가 내 안에 있다는 게, 좀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6월에 해님이를 순조롭게 만날 수 있도록, 출산에 대한 준비도 정성껏 해야겠다.

해님이와의 동거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준비해 내가고...

생각해 보니, 준비해 둘 게 많다.




논문의 압박이나 내 앞날에 대한, 세상살이에 대한 쪼임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이왕이면 우리 둘 모두에게 좋고, 행복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즐거운 일들을 누리면서 남은 날들을 '좋은 시간'으로 '스스로' 만들어나가 봐야겠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기대됐던 시간으로 만들어봐야겠다.







*to. 해님. 

아까는 거꾸로 내 뱃속에 들어 있다고 하는데... 방향을 좀 돌려주길.
돌려주겠지? 남은 기간 동안 잘 있다고 40주 될 때 상봉하자!
너랑 만나는 순간은 상상만 해도 감격의 눈물이 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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