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10년만이다.
꼭 분황사가 보고 싶었다.
그때는 여름이었고, 이번에는 초겨울.
계절이 달라서 그런지 분황사는 내 기억보다 회색에 가까웠다.
그 더웠던 여름엔 분명 더 까만 돌이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색이 바란 것일까, 아니면 초록 바탕에 보였던 여름의 분황사라서 더 짙게 보였던 것일까.
1999년 한여름의 분황사.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평상이 있었고, 그 곳에 잠시 누워 분황사를 쳐다봤었다.
같이 갔던 친구도 같이 누워 감상을 했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어떤 건축물을 보고 마음이 내려앉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잊을 수가 없다.
분명 그땐, 뙤약볕의 경주 날씨만큼이나 팔팔 끓는 어린 마음도 함께였다.
비가 오는 겨울 경주.
분황사.
사람 취향은 바뀌지 않는지 다시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다시 보고 싶은 돌탑이었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 있을 것 같은,
과묵하나 다정하고 섬세한,
어두운 색인데도 따뜻함을 주는,
그런 모습이 좋았나보다.
(뭐냐..분황사를 남자로 생각하는 것이냐.-_-)
流-여행
- 경주 2009.11.30
- 브라운과 이른 봄맞이 산행 2009.04.13 2
- 집으로 가는 길 2009.04.13 1
경주
2009. 11. 30. 16:25
브라운과 이른 봄맞이 산행
2009. 4. 13. 21:19
수종사-->운길산-->수종사에 내려와 차 한 잔의 코스.
작년 설 쯤까지만 해도 조용하고 소박한 모습의 수종사는 변해 있었다.
은행나무를 보러 가기 전에 있었던 오래된 문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들어가는 입구에 스피커를 달아 어쩌고저쩌고 소리가 들리게 해 놨다.
무슨 정자 같은 것을 짓고 있기도, 새로운 문이 생기기도 하는 등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안 어울리게 '쌔빠따 큰 불상" 조각을 떡 세워 놓기도........(돈을 좀 버셨나 보다.)
이 날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운길산 능선길이었다.
운길산 정상 쪽의 반대 편 봉우리로 올라갔었는데, 아기자기하고 인적이 드문데다가, 수종사에서 올라갈 때와는 다른 길로 다시 내려 올 수 있어서 좋았다. 브라운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마음에 맞는 길을 찾아 꽤 즐거운 듯했다.^^
550여 미터 조금 넘는 위치에서 바라본 남양주 쪽(?)의 마을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난 바위 낭떠러지가 무서워서 바위에 납짝, 비스듬히 요염한 자태(=이상한 자태)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산에 가 보면 내가 얼마나 '호연지기'라는 게 없는 지 절실히 알게 된다. 어찌나 쩔쩔 매는지......
등산 자체는 힘도 들고, 다음날 몸도 뻐근해서 그리 재밌는 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산에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경치들,
조금 올라갔을 때 심장이 펄떡대는 느낌들이 좋아서 다음번 산행을 또 상상해 보게 된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소백산(?), 무슨 산이 예쁘다고 브라운이 얘기해 줬었는데....언제 또 한번 가 보자고 해야지.
2009. 3. 28. 토요일. 운길산.
*아줌마가 된 우리 둘은, 나무에 등을 부딪히고 맨손 체조를 열과 성을 다해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등이 시원하더군......
집으로 가는 길
2009. 4. 13. 21:00
신청평대교를 건너서 화야산 쪽에서 집으로 가는 길.
마음이 안 좋았는데도 여기 풍경이 너무 예뻐서 잠시 차를 세웠다.
토요일 6시경이었는데도 차가 없어 한적했다.
강 건너편에서 본 386번 지방 도로. 저 하얀 구름 같은 것이 다 벚꽃.
실제로 보면 멀리 있는데도 또렷하니 예쁘다.
저렇게 뭉쳐 있는데도 수선스럽지도 않다.
따뜻하고 상냥한 봄날 같을 뿐.
양수리의 강과 산은 2005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게 위로를 준다.
어릴 땐 꽃놀이 간다고 수선 떠는 사람들이 저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는 것과 TV로 멀리서 느끼는 감상은 천지 차이다.
그 달콤함과 이게 바로 봄이다란 느낌.
특히 저 날, 벚꽃 터널에서 꽃잎이 봄바람에 토로록 떨어져 흩날리는데,
<<4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사람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았다.(내 마음은 정반대였지만.-_-)
봄에 피는 꽃과 여름의 바다와 시원한 계곡, 가을의 단풍, 겨울의 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허풍 조금도 안 떨고, 정말 이건 선물이다. 앞으로 이 선물들을 꼬박꼬박 잘 받으며 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