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것으로
잘살고 있다고 여기는 이가 있고,
많이 가졌다는 것으로
인생을 이룬 줄로 여기는 이가 있고,
높이 올랐다는 것으로
인생이 다 된 줄로 여기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착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과 통하는 수가 있고,
많이 가졌다는 것은
속이 궁핍하다는 것과 통하는 수가 있고,

높이 올랐다는 것은
열등감이 많다는 것과 통하는 수가 있기에,
착하고, 많이 가졌고, 높이 오른 것만으로
좋은 인생이라 여기는 허상은 벗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착한 것만큼 강함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많이 가진 것만큼 가난한 마음이 그득해야 하고,
높이 오른 것만큼 소박함을 즐기는
내면의 길 가기를 익혀야 합니다.

착함과 많이 가졌음과
높이 오름의 올가미를 끊고,
순종과 의분을 단호히 해내며,
빈곤과 부함을 흔쾌히 살아내며,
높음과 낮음에 개의치 않는 삶으로 흐르십시오.
<둥둥 영혼을 깨우는 소리, 이주연 저, 형성사>에서




하루하루 맞이하는 날마다,
쓸 데 없는 일을 피하며,
매순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기쁘게 이루어가는 것!
깨달은 이의 길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술취함에서 깨어나듯
탐욕과 나태함,
분주함과 어수선함에서 벗어나
매 순간 자신의 삶에 집중하여
<지금-여기>를
충만한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집중은 심각함과 다릅니다.
집중은 호기심과 기쁨 중에 몰입하는 것이나
심각함이란 부정적 감정과 혼란 속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짜증을 부리고 성을 내는 사람은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심각할 따름입니다.
거기엔 정성과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산마루 서신>

'부정적 감정과 혼란 속에 집착하고 있는'......딱 내 모습. 에고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행의 초보자는
깊은 계곡 난생 처음 보는 절경 앞에서
이 하늘 아래 자신이 처음
그 광경의 목격자인 양 착각하고 맙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열려 있는 산길을 따라 걸으며
그 길이 숱하게 많은 이들로 인함임을 깨닫고
뒤늦은 자신을 발견합니다.

깨달음과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으로 큰 종교적 각성이나 지혜를 얻은 사람은
자기만이 처음으로 그 보화를 얻은 듯
착각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계속 길을 가는 이는 머지않아
그 길에서 이미 숱하게 많은 영혼들이
노래하고 지나갔던 흔적들을 발견하고 맙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깨달음과 지혜는 자기만의 것이 아니며
우주의 시간만큼 오래 묵은 것이나
녹슬지 아니하는 하늘에 속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듯 깨달음과 지혜 너머의 지경까지 이를 때에
우리 자신은 자기 지평선을 넘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연>


<출처: 산마루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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