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9일 목요일이 지나갔다.

아침 7시30분 재이가 나를 깨웠고, 어제 새벽 4시 30분에 잠이 들었던 나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시작되었고, 재이 아침을 팬케이크와 치즈, 계란프라이, 사과, 블랙베리, 우유로 먹이고,

새벽에 잔 남편은 10시쯤 깨더니 비상식량을 사러/구하러 마트로 바로 출동했다.

코로나바이러스. 휴스턴.

Coronacation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미국은 3월 중순, 일주일 정도가 봄방학인데, 그걸 빗대어 만들어진 신조어다. 재이 프리스쿨도 3월 30일까지 휴교였는데, 어제 다시 연락이 왔다. 4월 10일까지로 연장. 남편의 학교 역시 이번 학기,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하기로 했다. 나? 학교와 멀어진 나. 이젠 학사일정과는 상관없어진 나는, 재이가 학교에 갔던 4-5시간여를 혼자 보내지 못하게 된 것과 아침, 점심, 저녁 식사의 공급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달라졌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마음을 잡고 뭔가를 해보려하면 무슨 일이 꼭 터진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건가. 짬짬이가 죽도록 안 되는 나란 인간은, 마음을 단단히 동여 매고 계획을 세운다. 그러고 나면 꼭 재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아프거나 하는 일이 생겨 학교를 안 간다든지, 밤에 간호를 하다가 내 체력도 같이 고갈이 된다든지...뭐 그랬다. 또는 봄방학, 여름방학,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겨울방학....이놈의 나라는 노는 날이 뭐가 이리도 많은지. 그런데 이번엔 코로나바이러스란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재이와 놀다가, 다시 점심을 차리고 치우고, 재이 똥을 치우고, 낮잠 시간엔 재이와 함께 한 시간 반을 자다가, 또 일어나 재이와 놀다가, 저녁을 차리다가, 애 목욕을 시키다가, 10시가 되어도 잠 안 자는 아이를 보며 생각을 했다. 만약 오늘 이렇게 지내다가 코로나바이러스든 뭐든 해서 죽게된다면, 정말 이건 아니지 않은가. 나도 장래가 촉망 받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그것도 타향에서 이렇게, 이런 식으로.

 

살고 싶다. 아이 돌보미 말고, 내 이름으로.

그런데, 아이 돌보미는 이제 내 운명이다. 얘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계속 될 거다. 난 이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고, 지금은 거의 세상의 전부로 날 바라보는 이 아이에게 난 끊임없이 하늘의 사랑을, 자연의 생동감을, 살아가는 일에 대한 기대를 줘야 할 책임이 있다. 퇴근은 없다네.

 

 

 

2020. 새해. 첫 날을 맞았다.

12/20일부터 계속되는 J의 방학, 학교 문을 닫는다는 남편의 방학.

한낮 기온은 16도 정도.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오늘 새벽 기침이 다시 시작되었고, 재이도 약간 기침을 한다.

남편은 4년 전, 페북 피드에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며, 여느 날과 다름 없이 하던 일을 하고 있고,

바뀐 것은 나, 우리가 위치한 장소, 우리의 가족 한 명이 더 생겼다는 것.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10시쯤 재이의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북엇국, 밥, 생선, 멸치볶음.

떡국은 한국마트에 안 다녀와 떡이 없어서 패스.

재이에게 한복을 입혀 주니 아주 좋아한다. 새해인사를 남겨 카톡으로 가족들에게 보내고.

요즘 좋아하는 넷플릭스에서 하는 만화영화 두 편을 같이 봤다.

1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고.

피아노도 치고.

날씨가 흐려지고, 난 배가 고프다.

 

문득, 노는 게 지겹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면서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새해 첫날이고, 진짜 기독교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오늘은 오늘대로 잘 보내자.

2시쯤, 남편이 일을 다 끝냈다면서 방에서 나왔다. 

 

처음 가 보는 한국 식당에 가서 남편은 물냉면, 나는 이면수 구이, 재이는 튀김 우동을 시켜 먹었다. 보리차와 겉절이가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H마트에 가서 저녁 때 먹을 떡국 떡, 김치, 홈런볼, 유자청, 잡곡 콩, 포카칩, 부추 한 단, 대파 한 단을 사서 돌아왔다. 아, 맥심 커피 믹스도 작은 걸 하나 사며, 남편과 웃었다. 한국에서도 잘 안 먹던 커피 믹스를 사며, 이렇게 좋아하다니..... 뭘까. 우리에게 쌓여 있는 것들은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요즘 마트 쇼핑을 너무 자주 한다. 오늘도 130불가량이 나왔는데.... 쩝.)

 

차 안에서 잠이 든 재이를 집에 와 눕혔다.

비가 올랑말랑하는 흐린 날씨, 마트에서 사 온 커피 믹스를 타 마시며, 재이가 잠든 틈을 타 '동백이' 8회를 시청.

한 회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재이가 '이게 뭐야..' 약간 짜증이 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자고 일어났는데, 이미 어두워져 있고, 엄마 아빠는 옆에 없으니 기분이 나빴단다. (내 생각엔... 요즘 낮잠을 극혐하는 세 살 반짜리 아이는, 엄마, 아빠랑 더 놀아야 하는데 잠이 든 게 내심 분해서 저런 듯)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었던 우리는 저녁은 또 못 먹겠고, 결국 저녁 메뉴인 떡국은 재이만을 위해 끓였다. 마침 딱 그만큼의 육수가 있었고. 육전을 몇 점 부쳤는데, 나는 2점+와인 조금, 재이는 2점, 남편도 3점+와인 조금을 먹었다.

 

재이가 하고 싶다던 윷놀이를 세 판 했다. (술이 약해진 남편은 술 못 마시는 여자애처럼 조금만 마셔도 잠에 빠진다. )

자기 전에 읽고 싶은 책 세 권을 읽어줬고. 그동안 남편은 설거지를 했다.

이를 닦이고, 세수를 씻기고, 자려고 하니 갑자기 계란프라이가 먹고 싶다는 아이. 요즘 계란프라이 전문은 아빠라며, 이상한 놀이에 빠져 있는데...그냥 아빠랑 더 놀고 싶어서 그런건지. 여하튼 아빠 다시 소환. 그러다가 냉장고에 손가락을 살짝 찝혀서 꺼이꺼이 울고. 아....밤 10시30분.

 

약을 바르고, 계란프라이를 먹고, 우유를 조금 마시고 잠. 

아...밤 11시10분.

나도 같이 누워 있다가 잠이 들어 깨니 새벽 1시.

 

아-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어.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실에서 책을 보고,(여기서 중요한 건, '연구실에서'다. 난 집과 격리된 오피스가 갖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싶다... 아, 동료들도 그립다. 아이를 통해 알게 되는 엄마들 말고 공적인 자아로 만난 동료들.

 

 

새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

엄마는 아이가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이 되면, 그때부터 좀 숨통이 트인다고 했었지.

아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다섯 살. 그러나 만으론 세 살 반.

 

3년 반이었다. 폭신하게 잠을 쭉 못 잔 게.

난 아직도 아이를 재우면서 옆에서 구겨져 잠이 들고, 중간에 깨어 내 침대로 기어올라가는 생활 중이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점점 나아지겠지. 

9시30분경에 일어나 느지막히 아침을 먹었다. J는 학교를 안 가는 요즘이 그저 신나는 모양이다.
요즘은 일어나면 바로 아빠를 부른다. 잘 땐 나와 자고, 아침엔 아빠를 부르는 시스템. 왜 그럴까? 



새해가 오기 전에 수리를 해야할 것들을 끝내고 싶어서 어젯밤에 서비스 신청을 주르르 해 놨더니 11시30분경 아저씨가 왔다. 스페인어를 하는 분. 이 아파트에서 이런 서비스를 해주시는 분들은 모두 스페인어를 하고, 영어는 나 정도(?) 하는 것 같은 중미 사람들이다. 서울로 치면 논현동 정도 되는 우리 동네엔 대부분 금발에 피부가 희고 키가 농구 선수 정도 되는 백인들이 커다란 집에 산다. 이곳에 흑인은 없다. 동양인도 드문 편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어쩌면 유일하게 다인종, 이민자들이 사는 곳일지도....

화장실에 나간 전구 2개를 갈고, 약간 깜빡이는 현상을 해결하고, 환풍기에 소리가 나는 것, 필터 청소, 드라이어 수리 등을 했다. 아저씨께 방울토마토를 씻어서 봉투에 담아 드렸다. 이런 문화가 여기에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벌써 오후 1시.
시간이 후딱 가고 있다는 데 약간 짜증이 난다. 남편과 아이를 재촉해서 어서 나가자고 했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cafe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이곳은 분위기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우리 동네와는 달리 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가 섞여 있어서 마음이 좀 더 편하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나이, 다양한 인종을 볼 수 있다.



J와 가보려던 새로운 Park를 찾아 나섰다. 

좀 더 북쪽으로, 또 10분 정도를 갔다. 와 보니 나와 J가 한국에서 오기 전, 1년 동안 남편이 혼자 살던 동네였다. 여긴 점심을 먹었던 동네보다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다. 카페, 감각적인 상점들, 문신을 한 아이 아빠, 유럽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 자전거....... 우리 동네에는 눈에 치일 정도로 많은 교회들이 안 보인다. 남편과 이 동네,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Donovan Park.
-꿈과 희망이 넘실거리던 곳. 허클베리핀이나 삐삐가 살고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나무로 만든 성이 두 채, 나무로 만든 기차가 하나 있었고, 나무들, 낮은 언덕배기, 그네가 있었다. J는 팔랑거리며 뛰어다닌다. 아이들은 쉴새 없이 뛰고 오르고 구르고, 우당탕탕 웃고, 넘어져 울기도 하고 그런다.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 주위를 서성인다. 미국은 확실히 아이들에게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면벽수도하며 1년을 살던 아파트 앞을 지나, 우리가 휴스턴에 와서 들렸던 카페에 들려 카푸치노를 마셨다. 1년 반 전도 벌써 추억이 되어 있다. 반갑다, 이곳. 카푸치노는 남편이 집에서 만들어 준 게 더 맛있었지만.

 

40대 중반이 되어 가고 있는데, 난 여전히 우리가 갔던 카페처럼 연극, 공연 팸플릿이 놓여 있고, 옷차림도 표정도 나이도 다채로운 이런 곳에 마음이 간다. 우리 동네처럼 전통적인 안정감, 보수적인 정서, 궁전 같은 집들이 있는 곳은 보기에 좋기는 하지만, 살고 싶진 않다. 취향이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차 안에서 골아 떨어진 재이를 안고 집에 들어온 시간은 저녁 7시.

오므라이스를 해서 8시에 저녁을 먹고, 10시30분경 재이와 잠이 들었다. 새벽 2시30분 기상.. 

지금은 2019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새벽 5시 15분.

남편도 한 시간 전에 깨어 나와 옆에 앉아 있다.

하아- 중년 부부의 삶이 이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렇게 새벽 시간을 각자 즐기고 있다.

 

내일은 아침엔 시리얼, 점심엔 짜장면, 저녁엔 패스추리 빵을 만들고(도전) 남편은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올 한 해 가장 많이 한 생각 중 하나였다. 뭘 해 먹나, 뭘 먹나. 참 지겹기도 했는데, 이젠 그냥 받아들이게 된 듯하다. 

 

2020년은, 나에 대한 의심을 벗어버릴 수 있는 한 해이기를. 
남편과 좀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더 많은 오늘을 나누고, 내일을 이야기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J에겐 온화한 모습으로, 잘 지켜봐주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