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9. 월요일 새벽 4:52]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다. 카테고리는 분류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2021년을 쭉 써나가야지.

미국에서, 아니 그 이전에도 하루하루를 채우면서 살아온 듯한데, 기록이 없으니 시간을 겅중겅중 뛰어넘어 온 것 같아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익숙한 페이스북에 쓰자니 거긴 사적 홍보인지 공적 홍보인지가 애매해져 버린 공간이라 글을 보태기 싫었고, 좀 더 조용한 자리를 찾아 여기로 왔다.

한동안 글을 안 썼더니만, 이젠 사진이 없으면 글도 안 올라가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2021년. 마흔넷이다.(만 나이로) 

여기에 앞으로 어떤 걸 써서 채워나갈지 모르겠는데, 매일매일을 적어둬야 할 것 같은, 그래야 살고 있다는 걸 입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이 새벽에 들었다.

[3.26. 금요일]

지난 금요일 재이 유치원에서 확진자 선생님 한 명, 추가로 그 반 아이 한 명이 확진자로 판명이 되었다. 아침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내자마자 집에 와서 우유 한 잔을 먹고 있을 때 울려온 전화였다. 부랴부랴 아이를 다시 마중 나갔고, 아침 시간에 집에서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재이와 하루를 잘 보냈다. 익숙해서 놀랐다. 그리고 예전보다 지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것에도 놀랐다. 아이는 아이의 할 일을, 나는 내 할 일을 하려면 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남편은 연구실에 갔다.

[3.27. 토요일]

아이 한 명이 확진자로 분류되었다는 추가 공지가 들어오면서, 그 아이가 재이와 종일반에서는 같은 반인 아이라 접촉 가능 대상자가 되어 2주간 격리 명령을 받았다. 양성,음성 여부와 관련없이. 4월 7일까지 격리. 보호자 1인도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나도 자가격리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은 외부로 나가 있어야 한다는데, 남편도 함께 격리하기로 했다.

12월 15일, 한국에 와서 격리, 이번이 두 번째 자가격리다. 약간 어이없고 실소가 나기는 한데, 우린 익숙하다. 미국에서 지난 2020년 갈고 닦은 실력이다. 셋이 뭉쳐서 같이 지내기. 남편이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그 최악의 시기에도 우리는 셋이 집 안에서 같이 지내왔으니, 내공이 쌓일 만큼 쌓였으리라. 우리는 오늘도 깨알같이 웃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남편 덕. 우리 재이도 아빠의 이런 면을 닮았음 했는데, 실실 농담도 하는 걸 보면 이미 닮고 있다. 우리 셋의 포지션닝이 대략 정해지고 있다. 남편과 재이는 유머 담당, 나는 웃기 담당. 

[3/28. 일요일]

보슬비가 예쁘게 내리는 봄날. 우리집 앞 공원에는 개나리, 벚꽃이 보인다. 아침을 먹고, 보건소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의 깊은 빡침과 분노가 일었다. 검사 부스 안에서 들리지도 않는 윙윙거리는 말로 손짓을 하며 안내 아닌 안내를 하던 그 사람은 처음부터 저거 뭐냐 싶더니만, 결국 검사할 때도 개그지 같았다. 조그만 아이를 발판 위에 올라오라고 한 후, 지 팔이 잘 닿지도 않는 상태에서 코를 쑤신 것이다. 우리가 귀국을 해서 양평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을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양평에서는 검사하는 사람이 그 추운 날씨에도, 방역복을 갖춰 입고 부스에서 나와, 아이를 부모가 안고 앉으라고 하더니, 조심스레 검사를 했었다. 근데 이 인간은 자판기에서 나오는 100원짜리 커피처럼, 그 자리에 애를 서게 하고 꽉 잡으라고 하더니, 컵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버튼을 누르면 무조건 내려오는 커피처럼 자기는 꼼짝않고 서서 팔만 왔다갔다 하며 코에 봉을 쑤셔대는 거다. 아이는 당연히 울고, 순식간에 이뤄진, 그리고 순식간에 무방비로 당하고만 나는 분해서 "아이를 검사하는 데 나와서 하지도 않고 그 안에서 지금 뭐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인간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서 해도 똑같은 거라고 건성으로 대꾸했다.  나는 진심으로 빡쳤다. 그년의 자판기 같은 태도에. 

재이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욕을 하며 싸웠겠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치만 걸어나오다가 결국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저 썅년이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썅.년...그 사람은 아침부터 나에게 썅년이란 말을 들었으니, 되었다. 그치만 대다수에게 그딴 식으로, 커피 자판기처럼 기계적 코 쑤심을 하고 거기 있을테니, 그리고 양평의 그 추운 데서도 살뜰하게 사람들을 살피던 동종 업계의 사람들을 깎아내리는데 일조하고 있을테니, 나는 내일 정의의 이름으로 보건소와 구청 게시판에 민원을 넣을 생각이다.

[3/29. 월요일 새벽]

5시30분이 되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났었는데.

우리의 두 번째 쿼런틴이 시작되고. 설마 아니겠지 하고 있지만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기를 기도하고. 우리 세 식구가 또 약 10일 간의 격리 생활을 잘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고보니 교회에 나간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나의 신앙은 어디로. 누구에게로. 무엇에게로. 다른 사람들은 미국에 다녀오면 신앙이 더 깊어지던데, 텍사스의 보수성, 휴스턴의 대형 교회 컨셉이 나와는 안 맞았던 모양이다. 

 

*여기, 이곳엔 가능한 한 그날의 주요한 일들만 기록해 두고 싶은데 될까 모르겠다.

자가격리한 지 3달이 조금 넘어간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산 지는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여전히 이 나라에 정이 안 가고, 왜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주에는 집에 쥐가 나타났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엌에 놓여 있던 바나나 송이가 파져 있고, 그 아래로 이상한 물체가 보였는데, 쥐똥이었다. 검색을 해 보니 쥐는 뭐를 먹자마자 배설을 한다고......

기가 막혔다. 2020년에, 집 안에, 부엌에 쥐라니. 소름이 끼쳤다.

보름여 전부터 천장에서 뭐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쥐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관리소에 pest control 신청을 했고, 부엌을 다 뒤져봤지만 구멍이 없다면서 찍찍이를 두고 갔다. 쥐가 우리가 자는 동안 이 집안을 돌아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남편은 쥐가 나올까봐 식탁으로 공부자리를 옮겨 잠을 안 자고 6일간 보초를 섰다. 쥐는 새벽 서너 시가 되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데, 남편은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면서 필사적으로 막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 집에 격리되어 박사논문을 쓰면서 쥐를 보초 서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 이런 블랙코미디가 있나 싶어 웃기기도 하다.

딸과 내가 아침에 일어나 나오면 남편은 들어가서 자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은 내가 아침으로 소시지를 굽고 있는데, 쥐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에 쥐도 부엌의 반대쪽으로 도망쳤다. 그후로 나는 부엌에 도저히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재이를 먹여야만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식탁으로 재료들을 가져와 조리를 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면 어디선가 또 쥐가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요리를 했다. 그리고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닦았고, 우리는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있을 쥐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혹시나 쥐의 나쁜 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면 어쩔지 걱정도 되었다. 이 집을 떠나고만 싶었다. 아-지긋지긋한 휴스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쥐 사건'은 남편이 5일째 밤샘 보초를 서던 중, 빼꼼 얼굴을 내밀고 밖을 보던 쥐와 남편이 눈을 마주쳤고, 상상도 못한 곳에서 쥐 구멍을 발견하면서 종결되었다. 그곳을 테이프와 책으로 막아두었는데, 그 이후로 오늘까지 3일째 쥐는 나오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떠난 듯하다. 우리의 승리다. 처절한 승리. 게다가 지금도 쥐 구멍을 굳건히 막고 있는 책은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정년퇴임집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카펫 방역 청소와 우리가 임시로 막아놓은 구멍을 관리소에서 와서 제대로 막고, 저 안을 조사해 보는 일이 남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쥐를 볼 일은 없어졌으니 일상으로 돌아온 셈이긴 하다. 쥐 소동이 있던 주, 재이는 네 살 생일을 맞았고, 올해가 쥐띠 해라서 우리집에 쥐가 찾아온 거 아닌가? 하는 나름의 해석을 하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남편은 쥐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학위논문을 쓰고 있다. 세 식구 중 나만 마구 흔들리며 지내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미국에 와서부터 죽 그래온 것 같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여기저기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런 와중에서도 좋은 것들을 찾아보는 것. 한 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지만 매일매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쥐와 코로나가 내게 남겨주고 간 것들이다.

 

 

 

Dear. J

  너의 선택이겠지만 엄마이자 여자로서 난 너에게 꼭 결혼을 하라고 권하고 싶진 않아. 결혼과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험은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게 분명하고 그간 살아왔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만들어. 뭉클할 만큼 좋은 것도 있고, 욕 나올 만큼 짜증나는 것. 둘 다 있지.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야,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둥 하는 말을 쉽게 내뱉는데, 그런 말은 믿지 마. 그냥 하는 말이거든. 특히 자기의 삶에 대해 그닥 책임감이 없고, 생각이 없거나 가벼운 사람들은 그런 떠다니는 말들을 자기 생각인 양 말하는 걸 좋아한단다.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거나 아이를 안 낳거나 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그런 루트를 따라 가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지. 예를 들어 자기 자신과 가족에 함몰되는 것 대신,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에, 혹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 자연에, 환경에 필요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엄마가 너무나 사랑하는 음악과 미술 같은 좀 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에 눈을 돌려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거거든. 뭐든 자신의 선택이야. 네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란다. 그리고 나서 결혼-아이 낳기 등을 선택하면 될일이지. 많은 사람들은 '나'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정해 놓은 대로, 결혼과 출산을 해버리는 것 같아.  

 

엄마가 살고 있는 지금, 2020년은 여전히, 할머니가 살던 시대처럼, 여전히 여자들에게는 힘든 세상이야. 결혼까지는 여자의 주관이 뚜렷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면, 자기가 살아오던 패턴을 거의 유지하면서, 큰 변화없이 살 수 있거든.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면서는 그러기가 정말 힘들어. 일단 아이의 주 양육자는 엄마가 되어 버리거든. 네가 살 때에는 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몸 속에 품고, 낳고, 젖을 먹이고..이 기간이 있다보니,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이와 더 밀착하게 돼. 그러다보면, 자기가 하던 일은 자기 패턴대로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단다. 정말 쉽지 않아..... 

난 네가 simple하게, 맘 편히 살려면 혼자 살거나(물론 네가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아니면 마음이 잘 맞는 친구(그게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없다.)와 공동 생활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결혼을 하더라도 요리를 할 줄 알고, 집을 가꿀 줄 아는 '공동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해. 정말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이만 총총. 새벽 2시 21분이야. 너와 함께 내일 즐겁게 놀려면 자야하거든.

엄마는 여러 가지가 꼬이고 엄마 커리어는 정말 난관에 봉착했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널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너의 삶이 엄마의 삶보다 좀 더 빛났으면 좋겠고, 네 이름처럼 맑고 기쁘게, 감사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너를 위해 기도해. 얼른 크렴.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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