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10. 월. 장대비

 

여름이 시작된다는 듯, 장맛비가 주룩주룩,

어제는 스콜처럼 쏟아지더니 오늘부턴 본격적으로 주룩주룩 한국의 장마답게 비가 내린다.

 

종강을 한 건 6월 20일쯤었고, 그로부터 20일이 지났다.

지난 달엔 재이의 돌 잔치가 있었고.

성적처리..이런 것들을 했다.

7월부턴 논문을...나도 좀 살자, 나도 논문 좀 써보자..했는데, 10일이 훌쩍 지나있다.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생각의 정리도 힘들다.

 

 

 

변화가 많은 2017년 여름이다.

이제 곧, 남편은 멀리, 꿈을 향해 날아간다.

 나도 40여년 산 서울을 떠나, 돌쟁이 아기와 함께 이사를 한다.

12년만에 다시 부모님과 함께, 한 공간에서 살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예상치 못했던 40세 이후의 미래다.

우리 가족에게는 어떤 삶이 펼쳐질까....

나-남편-딸.

 

 

 

이번 일을 겪으며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나는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기는 하지만 삶의 방식의 변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계획되지 않고 예측되지 않는 삶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익숙한 사람과 일,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겠지. 그리고 새로운 것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거다.

이제 겨우 아이를 낳고, 1년이 지나고, 좀 익숙해지고 있다고 여겼더니,

다시 새로운 변화가 덥쳐오려 한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마음은 버겁다고 느끼고 있어서 그가 미워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는 내게 던져주었다.

같이 계획한 거 아니냐고 내게 토로하기도 했다.(아, 나 이 사건을 같이 공모한 적이 없다. 그가 밀고 나가서 그래그래 해 봐 한 적은 있었지만, 진지하게 내 일로 받아들이고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갔고, 그는 계속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완수했고, 그 사이 난 아이를 가졌고, 어마어마한 출산이라는 일을 치렀으며, 올해 새 직장에 취업을 했던 것.- 이런 일을 겪은 내게 뭐라 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항변하고 싶다.)

 

 

 

한편, 남편은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 버벅거리는 나까지 껴안고.

그는 계속, 이 일이 진행되는 시간 내내 잘해 왔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나라면 해낼 수 없었다. 환경이 도저히 받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기할 지점들이 너무 많았는데,

그는 나의 임신 기간-출산-출산 후-돌까지. 이 긴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할 것들을 하나씩 해냈다.

독한 사람이구나 싶기도.

혹은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혹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가능한 일이었겠다 싶다.

 

 

그도 분명히 매우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지금도 힘에 부칠 것이다.

그는 예전보다 쉽게 피로하고, 쉽게 짜증을 낸다.(사람이 지쳤을 때 내는 그런 종류의 짜증이다.) 

자기와 보조를 맞춰주지 못하는 내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고...

게다가 그의 주변 곳곳에 지뢰밭이 있다. 어쩜 그렇게 도와주는 이는 하나 없는지.....

고군분투란 이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겠구나 싶을 정도다.

어찌보면 외로운 사람이다.

 

 

남의 도움,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온 이 사람은 혼자 일 처리를 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는 듯하다.

그는 갑자기 벌어진 사건 사고에 순발력은 없는 편인데, 자신이 기획한 일은 무지 체계적으로 잘 처리한다.

그래서 항상 바쁘고, 자신의 판단하기에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내주는 것에 인색하기도 하다.

주도면밀한 사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

 

주변의 도움과 부모의 도움으로 그동안 반은 먹고 살았던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이 안쓰러울 때도 있다.

주변의 도움을 조금만 더 받을 수 있었더라면, 삶이 편했다면...

그는 좀 더 유쾌했을 거고,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을 것이고, 타인에게 좀 더 관대한 사람이었을 거다. 

명민한 이 사람은 굉장히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더 발휘하며 즐겁게 살 수 있었을텐데.

나라도 이 사람에게 짐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함께 살면서, 고군분투가 편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의지할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

내가 좀 더 든든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지.

오늘 저녁엔 들어가면서 그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감자볶음, 샐러드를 해 줘야겠다.

그렇게 하려면, 5시까지는 집에 들어가야 한다! 얼른 공부를....==>>>>

 

 

 

 

임신 중, 출산 직후 온다는 우울증. 전혀 없었다.

아기를 낳고 4개월 보름이 지난 지금. 아무래도 이게 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매우 우울하다.

아기는 세상과 엄마 아빠,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점점 적응해 나가는 것 같은데,

엄마인 나는 여전히 멘붕이다.


지난 여름보다는 무언가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외형적인 것- 예컨대 베이비시터를 두었기 때문이라든가...-일 뿐,

심리적 상태는 전혀... 점점 압박은 심해져간다.

남편은 어떨까?? 모르겠다.

남편은 나보다 자기 일을 잘 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도 그대로 피곤하겠지.



아기는 사랑스럽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나는 우울하다.


새벽마다 아기가 뒤척이는 소리에 깨고, 일어나 아이를 지켜보는 일,

아침잠이 많은 내가 아침에 못 자고 아기와 함께 새벽 5시, 6시, 아침 7시경 깨서 우유를 주거나 젖을 물리고,

일어난 아이와 아침 댓바람부터 웃음을 지으며 놀아줘야 하는 일.

낮에 함께 있는 주말에도 재이에게 총력을 다 해야 하는 것.

밤에 잠 들기 전, 칭얼거리거나 우는 아기를 달래 재우는 일.

모든 게 서툴고, 피곤은 쌓여서 지치고. 허리는 임신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프다. 병원에 가야할 정도인가 싶게 요즘은 통증이 아주 심해져서 침대에 똑바로 눕지를 못하겠다.

남편과의 달라진 관계-우린 대화와 같이 노는 시간이 줄었으며, 다른 건 다 훌륭한데 돌발상황에 대한 의연함이 부족한 남편은 아기가 울거나 뭐가 뜻대로 안 되면 내게 짜증을 잘 낸다.



재이가 나오는 이상한 꿈을 되게 많이 꾼다. 바운서 같은 데 재이를 들고 가다가 로프에 매달려 가는데, 바운서가 뚝 떨어져서 놀란다. 그런데 다행히 재이는 다치지 않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다든가 꿈에서 재이에게 젖을 주고 있는데, 깨자마자 또 젖을 줘야 한다든가. 진짜 엄청 다양한 상황이 펼쳐진다.




재이와 내가 둘 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1. 일단, 난 조용한 곳에서 잠을 좀 자야겠고- 아줌마 계실 때 안방 문을 꼭 닫고 잔다.

2. 허리 통증을 해결해야 한다.- 마사지를 받거나, 추나요법 어쩌구 하는 데 가보거나 진단을 받아야겠다.

3. 점심 먹고 30분 걸으며 운동을 해서 뱃살을 빼거나 아님 요가를 다시 시작한다. 요가가 좋겠다...집 앞에서 시작하자.

4. 논문을 하루에 한 편은 읽어야겠고.

5. 10시-5시30분은 학교에 나오도록 한다.

6. 평일 저녁 6시 이후 시간과 토, 일은 재이에게 올인한다.



드디어 100일. 100일의 기적이 온다는 그날이다.

그런데 뭐가?

 

 

 

재이는 두 달쯤 됐을 때부터 이미 통잠을 잤고,

밥만 제때 잘 주면 잘 자고 잘 먹고 하는 아기다. 자기 전에 잠투정이 좀 심해서 애를 먹이기는 하지만....이게 나아지려나?

 

 

오동통 살이 오른 재이는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면 웃는다.

또 안방에 걸린 파란 십자가를 보면서는 까르륵 웃기도 하고, 무당벌레 그림을 보면서도 좋아서 웃는다.

사람들이 많은 걸 좋아하고,

양수리 집을 좋아한다. 여기서 잘 자고, 먹고, 많이 웃는 걸 보면 그렇다.

외할머니의 명랑함도 좋아한다. 역시 할머니를 보면 잘 웃는 걸 봐서 그렇다.

 

 

 

졸립거나 배가 고프면 울고,

같은 자세로 앉혀 놓거나 뉘여 놓으면 운다.

내가 안을 때, 불편하면 운다.

 

 

 

엄마가 된 난,

임신 기간 중엔 우울증도 없었고, 되려 기분이 상당히 좋았었다. 아기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이 컸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요즘은 정말 혼란스럽다.

재이에게 신경이 온통 쏠려 있게 되는데, 그게 또 좀 불안하다.

지난 1월 말 논문을 하나 투고한 이후로 내 연구는 스탑 상태이다.

아무것도 진행 중이거나 고민 중이지 않다.

원래 한 가지에만 몰빵하는 습관이 있어서일까.

균형 있게 해 나가지 못한다.

10월 말까지 논문 투고를 할 수 있을까. 올해 마지막인데.

 

 

현재 내 직위도 불안하고, 미래도 알 수 없다.

이 불안함을 뚫고 나갈 '과정'도 현재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최저 수입의 압박 또한 있다.

박사 졸업 후 처음으로 연구실을 갖고 있지 않고 지낸다.

어떻게 보면 아기 돌볼 시간이 많아졌으니 좋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그저 위안용일 뿐. 불안정함이 날 초조하게 만든다.

 

 

재이는 내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아무것도 내게 해 주는 것이 없어도,

그 존재가 BEING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사랑하고, 마음 벅찰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줬다.

그치만, 이 깨달음과 나의 문제와는 별개다.

 

 

나의 문제.

허허벌판에 서 있는 느낌.

공허함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고 있는지 방향을 모르겠다.

매일 저녁, 아기와 놀고 먹이고 재우고 나면, 허리와 손목이 아프고 뻗어서 자야 하는 게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것.

 

항상 과정과 현재에 충실한 남편도 이해할 수 없는 것.

오로지 내 몫이다. 해결해야 한다.

 

수업이 있는 날, 학교에 10시부터 나와 공부를 하려고 나오는데,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조금 후 3시30분 수업을 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고,

그럼 재이가 기다리고 있고,

난 재이를 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그렇지만 눈은 감기고 피곤하고..

주차장에서 15분씩 눈을 부치기도 하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