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8. 새벽 3: 20



2013년 1월 스페인 여행과 독일에서 나름 업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2월 14일까지, 학회 원고 때문에 근 2주 스스로를 썩혀 가며 지내고 나니, 2월 18일이 되어 있다.


한 달 반 가량을 바쁘게만 막 달려왔고, 그동안 수많은 생각과 각성과 감정들이 뒤섞여 지나갔었는데 정리하지를 못하니 좀 답답(?)하다.

여행부터 하나하나 정리하고 기록해 두고 싶었는데, 정말 여행 돌아와서부터 영 짬이 나지를 않았다.(아주 비생산적인 회의도 해야했고, 공무원 보고서도 써야 했고, 수업계획서도 2개 올려야했다.)


오랜만에 아무 부담감없이 내일을 맞고, 새벽을 보내고, 책을 읽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 참 평화로다.

아주아주아주 살 것 같고 이 시간이 꿀맛 같다.

이런 새벽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강의를 준비하다가 문득 조혜정 선생님의 책이 생각나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다시 꺼내들어서 읽고 있다. 이미 1996년에 출간된 책이라서 그런지, 이 선생님과 나의 세대차이인지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더러 나타난다. 예컨대 공부하는 사람을 '학자'가 아니라 '지식인'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조혜정 선생님을 이를 한탄하며 비난조로 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조차 내게는 공부하는 사람을 무슨 특정 계급인냥 인식한 말로 들린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무슨 지식인인가. 그냥 직업인일 뿐이다.그저 직업이 공부하는 것일 뿐이다. 공부의 질이 어떠냐에 따라, 또 그 공부하는 사람의 관심이 어디로 가 있느냐에 따라 A는 자기가 파 놓은 우물 안에서, 무슨 말인지 타인도 자기도 잘 못 알아듣는 말을 하며 지내고, B는 우물 밖으로 나와 뭔가 이 세상에 도움을 주려고 애쓰기도 하면서 사는 게, 그 정도쯤 다르겠지 싶다. 어떤 일이든 그렇겠지만, 공부하는 사람은 잘 해야지, 잘 못 하면 정말 사회악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어쨌든,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여야 하지 않겠나.(이런 의미에서 내 일을 열심히 해야된다!)


사회학자가 쓴 이 책에는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날카로운 도구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좀 터프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 보면, 언어학에서 특히 내가 싫어하는 몇몇 분야에서는 so, what? 하는 질문을 불쑥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특히 지루한 이론적 싸움-몇몇 자기네들끼리만 하는-이나 통계 자료를 들이대면서 양적인 것이 진실인 냥 얘기하는 것들이 그렇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면에서 언어학을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유익한' 사람들 같다.=) -이쪽 세계를 잘 몰라서 할 수도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 초반에 재미난 얘기가 하나 있었다. 모호한 것을 규정해 내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사유와 존재의 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불연속적 자아'의 개념 같은 것은 것.

혼란스러운 일상을 몇 개의 개념어로 규정해낸다는 게 꽤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연속적 자아-'봉건'과 '근대'와 '탈근대'적 상황을 한꺼번에 소화해 내야 하는 제3 세계 주민의 실존을 가장 잘 표현해 낸 개념일 수 있다. 제3 세계 근대화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이미 탈근대의 시작이었다."



나 역시 제3 세계 주민인가? 봉건과 근대와 탈근대를 한꺼번에 소화해내야 하잖아.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들은 자신들이 '낀 세대'라고 얘기하지 않던가. 예전부터 이게 참 웃겼다.  어떻게 모든 세대들은 하나같이 자기네들이 가장 혼란스러운 때 태어났고, 자라났고, 그렇게 끼어서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건지..... 어쩜 그렇게들 똑같은 말을 하는지.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들은 시간이라는 축 속에서 살아가면서 불연속적 자아를 경험하다가 통일감을 이루는 소수의 몇몇을 빼고는, 그냥 그러다 죽는 것 같다. 이게 나인지 그렇다더라의 표상인지도 모르는 채. 구분하지도 않고 혹은 그럴 필요도 못 느끼면서......


 나와 내 친구들만 봐도 개인과 가족, 인간과 여성과 남성, 한국의 관습들 속에서 살면서 도저히 몸에 밸 수 없는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전체주의, 이성과 감성, 합리와 정...이런 기준들 속에서 애매하게 헤매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매우 불연속적으로. 


 저자는 자기 자신은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소셜리즘, 페미니즘, 포스트 콜리니얼리즘을 모두 수용한다고 말하는데, 정말일까? 2013년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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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전까지 할 일>

1. 공적인 일: 28일까지 투고, 강의 4시간, 사례분석 2건(매주 1건씩), 3월 4일까지 마감(?)

2.개인적인 일:

 -컴퓨터, 노트북 속 파일들 정리(삭제, 통합, 분류): 집, 연구실

 -자전거 습관 들이기

 -10 to 6

 -연구실 서류 뭉치들 정리(삭제, 분류)

- 1월 스페인 여행 사진, 기록 정리, 인화할 것 몇 장 

- 옷장 정리, 인터파크 대청소

-양수리 집에 가 있고 싶다.....[주말 이용]






20대. 사람을 만나면 허구언날 싸우고 꿈을 꿔댔다. 강한 고집과 아집과 혈기왕성함이 섞여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싫어했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너나 나나 아직 결정된 것이 한 개도 없어서, 그저 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뭐가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그것들을 위해 공부하기도 했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때의 키워드는 '야망'과 '자신만만함'


30대 초반-서른에 결혼하고, 서른하나에 애 낳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숙제를 끝내고 싶었다. 별 거 아닌데, 나이에 대한 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당면 과제에 눌려 누가 누구를 옥죄기도 하고 누구는 벗어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 타이밍이라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싸이클이 맞는다면 그들은 결혼하고, 맞지 않는다면 헤어진다. 이때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사람과 싸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끔은 매우 나와는 다른 유형을 만나는 경험도 해 본다. 일종의 실험. 혹은 한 번 데였으니 다시는 안 데여.라는 모종의 결심 때문이랄까. 이때의 키워드는 뭐였지? 하나로 정리가 안 된다. 매우 피폐하고 안 좋은 상황에서 '잘 살려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꼬박꼬박 수영 학원에 가기도 했고, 논문을 쓰기도 했고, 안정적으로 돈이 나오는 일자리를 얻기도 했다. '잘' 살기 위해, 뭔가 어긋난 방향들을 제 궤도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혹시...키워드는 '실패와 상처를 억지로 부인함?'


30대 후반-졸업. 포지션이 바뀌는 경험.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포기할 것들은 조금 포기하게 된다. 예컨대 내가 바위처럼 매사에 무덤덤하면서 단단한 인간류가 될 리는 없다는 것. 40을 바라보면서 사람을 만나니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늙어갈지에 대해 그려보게 된다. 그리고 나와 삶의 방향이 같은 사람을 만난다. 더 이상 팔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건강에 신경을 쓴다. 지금보다 훨씬 덜 다듬어져 있던 때이기는 하였으나 빛나던 청춘의 때를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 공유하지 못했던 과거가 40년이나 쌓여있어서 역시 마음이 아프다. 서로의 흰 머리를 보고, 지친 낯빛을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도 한다. 이 사람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아야지, 내가 행복하게 해 줘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어느 서울 한 쪽에서 근 40년을 겪어내 오면서도 밝고 곧은 모습으로 살아와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친구든 애인이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되고, 그들을 만나고 싶어하게 된다. 지금 보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이 풍부해진다는 말,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아닌 것 같다. 나이대별로 삶의 풍부한 소재들은 각기 존재한다. 예를 들어 10대 때는 무조건 다양하게 놀며 몸과 마음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폰지처럼 쭉쭉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신나는 때이고, 몸도 부쩍부쩍 자랄 수 있는 때가 아니던가.


각자의 나이에서 무엇을 풍부하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할 때인지 아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내용과 방식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잣대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기준 하에서 잘 판단되어야 하고 행해져야 한다.(아,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것 하나 찾았다! 사회의 잣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스타일을 찾고 알게 된다는 것!)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8세~40세까지 나의 키워드는 무엇으로 기록될까. 

"반 남은 인생의 기반 닦기'일 것 같다.- 신앙, 학문, 사랑,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대한 기반.

40이 되기 전까지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밑작업을 탄탄하게 해 놓고 싶다.


D-4


-17박 18일 엄마와의 여행: 1/11~1/27


-독일 일정 때문에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었는데......프라이부르크에 3일 머무는 것으로 결정.


-1월 중순, 1월 말까지 수업계획서 입력, 포트폴리오 제출 3개, 학회 발표 초고 제출 등 일이 있어서 미리 처리하려니 신경도 쓰이고 바쁨. 학회 발표 초고를 안 썼는데...... 




<여행 가기 전 할 일>


0. 회네 선생님께 이메일(1/7 월요일 처리), 경비 신청 처리(1/7 월요일)


1. 과사에 포트폴리오 제출(1/8 화요일 처리)


2. 다음 학기 전공 수업 계획서 작성하고 미리 조교에게 보내 놓기. 이메일 보내고 전화로 반드시 확인. 교재를 잘 선택할 것. 작년에 좀 힘들었음. 다른 선생님들 실라브스 참고.(1/8 화요일 교보에 가 보고, 1/9 수요일 이메일 보내기)


3. 공동 논문 일정 체크, 발표 초고 개요 잡을 것


4. 미용실: 커트한 지 두 달 지났음. 좀 다듬고 갈 것.


5. 집 청소: 여행 다녀와서 깨끗하게


6. 아빠와 WS에게 주고 갈 여행 스케줄 정리, 연락처, 호텔 


7. 신문 끊고 가기


8. 피트니스센터 전화


9. 렌즈 한 팩 구입


10. mp3-노래 담고, 짬짬이 볼 책 2권쯤 챙기고, 카메라 메모리카드 확인하기


11. 여행 짐 잘 싸기: 날씨 체크 후 옷, 선글래스, 안경, 선크림 하나 면세점에서 구입. 상비약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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