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사람을 만나면 허구언날 싸우고 꿈을 꿔댔다. 강한 고집과 아집과 혈기왕성함이 섞여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싫어했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너나 나나 아직 결정된 것이 한 개도 없어서, 그저 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뭐가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그것들을 위해 공부하기도 했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때의 키워드는 '야망'과 '자신만만함'
30대 초반-서른에 결혼하고, 서른하나에 애 낳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숙제를 끝내고 싶었다. 별 거 아닌데, 나이에 대한 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당면 과제에 눌려 누가 누구를 옥죄기도 하고 누구는 벗어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 타이밍이라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싸이클이 맞는다면 그들은 결혼하고, 맞지 않는다면 헤어진다. 이때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사람과 싸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끔은 매우 나와는 다른 유형을 만나는 경험도 해 본다. 일종의 실험. 혹은 한 번 데였으니 다시는 안 데여.라는 모종의 결심 때문이랄까. 이때의 키워드는 뭐였지? 하나로 정리가 안 된다. 매우 피폐하고 안 좋은 상황에서 '잘 살려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꼬박꼬박 수영 학원에 가기도 했고, 논문을 쓰기도 했고, 안정적으로 돈이 나오는 일자리를 얻기도 했다. '잘' 살기 위해, 뭔가 어긋난 방향들을 제 궤도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혹시...키워드는 '실패와 상처를 억지로 부인함?'
30대 후반-졸업. 포지션이 바뀌는 경험.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포기할 것들은 조금 포기하게 된다. 예컨대 내가 바위처럼 매사에 무덤덤하면서 단단한 인간류가 될 리는 없다는 것. 40을 바라보면서 사람을 만나니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늙어갈지에 대해 그려보게 된다. 그리고 나와 삶의 방향이 같은 사람을 만난다. 더 이상 팔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건강에 신경을 쓴다. 지금보다 훨씬 덜 다듬어져 있던 때이기는 하였으나 빛나던 청춘의 때를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 공유하지 못했던 과거가 40년이나 쌓여있어서 역시 마음이 아프다. 서로의 흰 머리를 보고, 지친 낯빛을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도 한다. 이 사람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아야지, 내가 행복하게 해 줘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어느 서울 한 쪽에서 근 40년을 겪어내 오면서도 밝고 곧은 모습으로 살아와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친구든 애인이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되고, 그들을 만나고 싶어하게 된다. 지금 보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이 풍부해진다는 말,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아닌 것 같다. 나이대별로 삶의 풍부한 소재들은 각기 존재한다. 예를 들어 10대 때는 무조건 다양하게 놀며 몸과 마음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폰지처럼 쭉쭉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신나는 때이고, 몸도 부쩍부쩍 자랄 수 있는 때가 아니던가.
각자의 나이에서 무엇을 풍부하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할 때인지 아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내용과 방식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잣대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기준 하에서 잘 판단되어야 하고 행해져야 한다.(아,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것 하나 찾았다! 사회의 잣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스타일을 찾고 알게 된다는 것!)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8세~40세까지 나의 키워드는 무엇으로 기록될까.
"반 남은 인생의 기반 닦기'일 것 같다.- 신앙, 학문, 사랑,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대한 기반.
40이 되기 전까지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밑작업을 탄탄하게 해 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