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가 휘릭 지나갔다. 수업이 끝나는 목요일 저녁이 금요일 저녁 같고, 금요일이 토요일 같고, 토요일이 일요일 같다.

새 학기가 시작한 지 4주가 지났고, 아무런 문제도 없고 잘못되는 것도 없이 하루하루가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맥이 빠지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노동의 강도가 약해서 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예전에 한국어를 가르칠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처리해야 할 일이 단순한 편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고, 밖에서 보면 늘어진 팔자로 보일 때가 내게는 참 무미한, 무색무취라서 심드렁한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좀 그럴까 말까 하는 중.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은 무진장 피곤했었는데, 이것도 4주차가 되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신은 심심한 것도 아니고, 무료한 것도 아니고, 뭐랄까....
그래, 매일매일이 너무 평탄해서(?), 단조로워서?, 단순해서? 신이 나지 않는다.


-5월 초까지 학회 발표 신청 공고가 떴던데, 그때까지 연구 주제 하나 잡아서 올인해 볼까보다.(그럼, 좀 신이 날까??? 모르겠다...)

-그리고 내일 저녁부터 테니스를 배워보기로 했다.(이거 하면 좀 신이 날까?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니 활력은 생기겠거니 기대하고 있다. 근데 코치가 무섭게 생기고 눈에 황달 기운이 약간 돌아서 좀 그렇다.-_-.)

-다음 학기엔 대학원 전공 강의를 꼭 하나 했으면 좋겠다. 이거 하면 좀 신이 날 것 같은데......

-6월부터 시작하는 합창 참여? 이미 연습 진행중인 게 있는데, 2개는 무리일 것 같음.......






2011. 2. 24. 목요일 어제에 이어 봄 날


오늘 처음 가 본 연구실.
기분 묘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방 문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좀 얼떨떨하기도, 좀 흥분되기도, 한편 덤덤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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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 철학하는 사람은 탱크쏭 교수 한 명뿐이었는데,
오늘 여자 3명과 남자 1명을 보게(구경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파리한 철학자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여자 셋은 밍크를 두르고 얼굴은 번쩍이는 싸모님들 같았고, 남자 한 명은 대머리 복덕방 아저씨 같았다. 하긴 블루베어 탱크쏭도 철학자 같진 않다. 그냥 중국인 같지.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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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수들에 비해 나는 지나치게 대학원생이나 조교 같은 분위기다. 그들의 나이가 나보다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집과 생김새, 분위기 자체가 그들은 완전 중년의 어른이다. 나도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도 '어리고 젊으시니까'라는 말을 수 십번 들었다. 

저녁에 TV를 보니까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 씨가 나오던데, 이 사람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겠다 싶더라. 드센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들이 판치는 정치판에서 대학원생 얼굴로 살아나가려면...... 그래서 그런가? 이 사람은 거의 무표정이고, 좀 강박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젊은데도 세련되고 여유있는 홍정욱 씨와 비교된다. 기존 세력의 무식함과 지루함을 단번에 압도하는 젊은 기운. 내게도 이런 기운이 좀 풍기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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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권을 끊는 곳에서, 신분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교수라고 답했다. 거짓말 한 것이 아닌데도 좀, 부끄러웠다. 아마도 주차 관리를 하시는 우리 이모나 삼촌뻘인 아줌마, 아저씨의 눈이 좀 동그래지면서 갑자기 자신을 낮추며 나를 대하는 말투에, 민망함에 더 그런 것 같다.   

2011. 2. 9. 저녁에 다시 추워짐.


시립대에서 만난 분들은 담백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국립국어원 분위기도 이랬고, 그때 내 바로 위의 연구원 선생님도 '정말 좋은 사람'으로 이름난 분이셨는데, 이번 역시 비슷하다.

하나님은 항상 까다롭지 않은 사람들을 동료로 붙여 주시고, 게다가 인간적으로 배울점이 많은, 덕 있는 사람들을 내 주변에 보내주신다. 정말 큰 복이다. 분명 내가 예민하고 근본적으로 유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다 계산하고 하신 일이다.

게다가 내 생애 처음으로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 거의 감격 수준이다. 고학력 여성 집단의 깐깐함과 철두철미함에서 벗어났다는 게 참으로 기쁘다!
아하하하하하!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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