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졸업을 계획하고 있다.  

2009년 8월 말. 이대 대강당에서 총장이 주는 졸업장을 받는 그림.







하도 오래 되어서 희미한 느낌이지만

언젠가 해 봤던 것처럼 논문만 생각하면서 아주 단순하게 살아보겠다.

내겐 어떤 일을 잘 해낼 저력이 있다고 한껏 자신감도 불어넣어 줄 생각이다.





돈, 졸업 후 진로, 나이와 관계들 때문에 사회가 안겨 주는 여러가지 인간으로서의 의무 등도

당분간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의 단계를 뛰어넘어야

인생에서의 3장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저께 곧 출산을 앞둔 친구를 만났다.
산모들은 아이가 임신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부터,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태아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10개월 가량 최대한 '그것에' 집중해서 공을 들인다.
그들은 엄마가 되었기에 가능하면 태아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힘들어지나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도 됐다가 또 다시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다가 난리도 아니란다.
하지만 자신의 뱃속에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에, 경험해 보지 않은 이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도 한단다.


박사논문 쓰기를 애 낳는 것에 비유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나름대로 정해 놓은 기간이 있고,
완성된 논문의 실체가 아직 보이지도 않지만, 끊임없이 그 실체에 대해 상상하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작업에 나는 최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논문에 집중하며 공을 들인다.
논문을 쓰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논문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시간이 갈수록 머리는 복잡해지고 흰머리는 늘어나며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적응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논문을 써 보지 않은 이는 평생 느껴보지 못할 기쁨과 희열을 이 기회를 통해 느껴 보길 간절히 기대한다.


그런데 박사논문 쓰기는 산모보다 훨씬 환경이 열악하다.
"언제 애가 나와요?/언제 논문 다 써요?
"여기 앉으세요./ (X)
"지금 몇 개월 됐어요?'/ 지금 수료한 지 얼마나 됐어?
"애는 여자에요, 남자에요?/ 논문 주제는 뭐야?
애는 몇 KG이에요?/ 논문은 몇 페이지 썼어?
                         /논문 다 쓴 다음에 뭐 할거야?-->이 질문은 흡사, 애를 낳은 다음에 애를 뭘 시킬거야? 와 비슷한 질문이다.
어디 자리는 있대?

애는 노력하지 않아도 지가 쑥쑥 자라지만, 논문은 혼자 크지 못한다.
애는 때가 되면 나오지만, 논문은 때가 되어도 못 나올 때가 있다.
애는 못 생겨도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타박하지 않으나, 논문은 별로다/그지같다/ 기타 등등 점수를 매겨 최악의 경우 폐기처분된다.
애는 성형수술 가능/ 논문은 성형 수술 불가. 하지만, 좀 다듬어서 고칠 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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