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무력함이라는 단어가 지금의 내 상태라고 규정짓자 울음이 복받쳤다.

울음이 그치지를 않아서 결국 밖으로 나가서 대성통곡을 한 후 창피해져서 앞쪽으로 그냥 걸었다.

걷다 보니 힘도 들고...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아보니 새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의 걷는 소리는 무섭다. 두꺼운 파카가 서걱서걱 부딪히는 소리가 크레센도처럼 내게 다가올수록 크게 들리는데 순간 긴장하게 된다. 예전에 학생 중에서 눈이 안 보이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항상 이렇게 긴장하고 살았겠구나 싶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가고 다시 지금 쓰고 있는 논문 생각이 났다. 오늘 할 일이 떠올랐다. 걷기와 대성통곡의 효과인가보다. 쑥쓰러움과 민망함을 안고 평화로워 보이는 공원 속 사람들을 통과해서 다시 그의 앞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힘이 든 건 힘이 든거지... 아니 척 할 필요는 없겠지. 어쩌면 그닥 힘들지 않은 상황인데 힘들다고 말해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지. 요즘 유행어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들 하던데, 맞는 말이지만 '헝그리 정신'과 유사한 2024년 버전인 듯하여 그닥 맘에 다가오진 않는다.

막막함과 나이듦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2024.3.10.일요일, 아이의 영어학원 끝나기를 기다리며

 

 

1. 쉽게, 즐기면서, 재미있게 아이 키우기

2. 무리하지 않고 차곡차곡, 즐겁게 지식의 탑을 쌓아 나가기. 공부하는 행위가 내 삶에서 자연스러워지기

3.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대방이 어느 누가 되었든 자연스럽게 대화하기.

 

이 세 가지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떠한 삶의 자세로, 매일매일을 어떻게 운용해 나가며 지내야 하는 것일까. 구체적인 방안을 세워 보자. 내년에는, 후년에는..점차 위의 세 가지 바라는 바에 가까워지고 있을 수 있도록.

2022. 7.1.-7.3

7.1. 금요일.

혼자 여행을 해 보니, 가족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아이를 살펴야 했고, 남편과는 조화롭게 살기 위해 살펴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눈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혼자라는 건, 시간이 흐르는 대로, 앞에 무언가가 보이는 대로 가거나 서거나 내가 좋아하는 걸 먹거나 하거나 하면 된다는 걸 의미했다. 그 누구도 살필 필요가 없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뭐랄까 관계의 확장 가능성.

 

오늘의 압권은 뿔소라무침과 해안도로를 따라 탄 전기바이크였다. 아, 그래 난 뭔가를 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이렇게 오도독오도독 씹히면서 살짝 식초도 들어간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이런 걸 다시 확인했다. 최대 속도가 30km까지밖에 안 되는 바이크를 타며, 이게 진짜 오토바이면 신나겠구나 싶었다. 다음엔 좀 더 빠른 스쿠터에 도전해 보고, 그 다음엔 진짜 바이크에 도전해 봐야겠다. 쾌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 꺄오~ 하는 쾌감.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집에 돌아가면 자전거라도 타야지 생각했다.

 

7.2. 토요일

제주에 있는 친구 집에서 10시부터 밤 12시까지. 합창단 친구들이 모였다. 대학교 때 만난 인연들. 

쌓여 있는 테이프들을 꺼내 보고, 듣고, 엘피 판을 틀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자그만치 3시간 동안 우리가 그동안 불렀떤 노래들을 부르면서 감동하고 환호하던 시간들. 

50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그리고 지휘자의 손 끝에 집중한 눈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어른을 만나, 친구를 만나 이렇게 노래만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육아 이야기도 할 필요 없었고, 생각도 안 났고, 결혼 생활 이야기도 할 필요도 없었다. 

한여름밤의 꿈 같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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