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무력함이라는 단어가 지금의 내 상태라고 규정짓자 울음이 복받쳤다.

울음이 그치지를 않아서 결국 밖으로 나가서 대성통곡을 한 후 창피해져서 앞쪽으로 그냥 걸었다.

걷다 보니 힘도 들고...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아보니 새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의 걷는 소리는 무섭다. 두꺼운 파카가 서걱서걱 부딪히는 소리가 크레센도처럼 내게 다가올수록 크게 들리는데 순간 긴장하게 된다. 예전에 학생 중에서 눈이 안 보이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항상 이렇게 긴장하고 살았겠구나 싶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가고 다시 지금 쓰고 있는 논문 생각이 났다. 오늘 할 일이 떠올랐다. 걷기와 대성통곡의 효과인가보다. 쑥쓰러움과 민망함을 안고 평화로워 보이는 공원 속 사람들을 통과해서 다시 그의 앞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힘이 든 건 힘이 든거지... 아니 척 할 필요는 없겠지. 어쩌면 그닥 힘들지 않은 상황인데 힘들다고 말해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지. 요즘 유행어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들 하던데, 맞는 말이지만 '헝그리 정신'과 유사한 2024년 버전인 듯하여 그닥 맘에 다가오진 않는다.

막막함과 나이듦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2024.3.10.일요일, 아이의 영어학원 끝나기를 기다리며

 

 

의욕이 없는 2012년 여름이다.

방학이 흐지부지 다 끝나간다.

이번 방학 때 공부하는 자로서 디딤돌을 마련해 봐야지 했는데 싸그리 무산됐다.

6월 중순부터 8월 12일.현재 시간까지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일을 안 한 건 분명한데, 여유있지도 않았고 마음이 편치도 않았다.

무엇 하나 똑부러지게 결정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다.

 

 

어째서 내 인생은 모 아니면 도인가.

누구나 다 이런가?

개,걸,윷....

이런 중간 단계들을 선택할 순 없는 일인가.

 

 

가능한 조용히, 가능한 단순하게, 호흡도 가다듬고.

식탐은 줄이고. 몸은 가볍게 만들고.

 

 

어차피 그들처럼 살지 않을 것, 그들처럼 사는 삶에 만족하지 못할 것.

그렇다더라 저렇다더라 등의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 것.

한낱 감정 따위, 한 마디 말에 흔들리지 말 것.

 

 

 

매 순간, 작은 것들에 감동도 잘 하고, 웃고 울기도 잘 하면서

사는 것 자체에 그닥 애정이 없는 거 보면 이상하다.

살아가는 건, 이쪽저쪽을 들여다봐도 죄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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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추천했던 필그림하우스. 예약.

예약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한 판 기도로 맞짱을 떠야 될 것 같아서.

왜 나를 이렇게 만들고, 대체 어쩌란 말인지,

하나님이 길을 예비하고 계시다면, 어떤 그림인지 알려달라고 대판 할 생각.

A/S 센터 기사가 와서 TV를 말끔히 고치고 갔다. 4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기술을 갖고 있는 자, 멋져 보인다. 난 수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간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몇 가지 눈에 보이는 현상만 질문하고 그와 관련된 대답만 취해 듣더니, 바로 기계를 바로 뜯어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 본다.

상황과 현상은 분명 다르다. 상황에는 갖은 추측이 포함되고, 필요없는 이것저것의 요소들이 장황하게 붙는다. 현상은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사실 몇 가지일 뿐이고. 기술자인 아저씨는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내 말을 그닥 쓸모있게 생각지 않는 듯해서, 조금 얘기하다가 스스로 끝냈다.

어쟀든 무뚝뚝하나 기술이 좋아보이는, 50대 초반쯤의 아저씨는 별 말 없이 1시간 반여를 나사를 조이고 풀고 선을 연결하면서 뚝딱였다. 그리고 선명한 화질의 TV를 내 눈 앞에 나타나게 해 주었다. 박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일 일이다. 항상 이 놈의 말이 문제인데, 내 전공도 말이고 난 이토록 무슨 일만 있으면 언어로 뭔가를 해결보려고 하니, 참 골치아픈 스타일이다.

잠언에서도 말과 관련된 구절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골자는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괴롭히기도 즐겁게하기도 한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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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것 같으나 은근히 핑계가 많고 게으른 조교와 2시에 약속을 했는데, 못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런 일이 지난 학기부터 몇 번 반복됐다. 아마 비도 오고, 자기 말대로 감기에 몸도 안 좋으니 학교에 나오기가 싫은 모양이다. 나 역시 게으른 유형이라 이런 기분을 100% 이해하기에 별 말 없이, 알겠다, 5시 30분까지만 오라고 했다.

게으른 조교를 탓할 수 없는 것이, 나 역시 내일 수업 준비를 다 못했고, 집 청소도 못 했고, 방 정리도 못했다. 그래서 아주 산만한 상태다.(저 조교도 비슷하지 않을까? 뭔가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유일하게 정돈된 공간과 규칙적,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공간인 학교에 들어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난 이런 인간이다. 뭔가 반복적으로 돌아가야지, 계속 결정할 것이 생기고 변수가 생기면 돌아버릴 것 같은 그런 인간. 따라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려면, 미리미리 일을 해 놓아야 하고, 일의 가짓수를 벌이지 말아야 하며, 최대한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과 얽히지 말아야 하고, 복잡한 일에 연루되지 말아야 한다.

기억하자. 나는 이런 종류임을.
96년. 독서실에 오전 8:20분쯤 가서, 12시에 집에 와 밥을 먹고, 다시 2시쯤 독서실에 가고 새벽 2시에 집에 오는 생활. 내 계획, 목표를 향해 외부적으론 조용하지만 내적으론 뜨거웠던,단순한 그 시간들은 내 생애에서 길게 평화롭고 의미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때는 어떤 불평불만도 없었고 마음의 밀도가 촘촘했다. 

괜히 시끄러운 사람들, 에너지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쓸데없이 얽히지 말아야겠다. 내겐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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