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3. 토요일 EC OG 공연 팸플릿 사진
-격무와 인생사에 꽤 노출되어 있는 두 사람-정아와 내가 최고참이다.(정아야, 있어줘서 고맙다~내년엔 꼭 선배들을 섭외하자꾸나.) 4학년 애들과 대비되는 우리. 쩝.....


세 곡. 무대 위에서의 시간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지나간다.
단지 공연하는 것만 목적으로 한다면 합창은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노래를 시작하기 전, 무대 뒤에서 나누는 서로에 대한 격려,
무대에 올라섰을 때 우리를 향해 비치는 환한 조명,
지휘자와 반주자의 모습과 눈빛, 
리허설 때 좁은 연습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화음.
이런 맛을 못 잊어서 자꾸 합창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격주 연습이었고, 공연 임박해서는 매 주 연습을 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에 신촌으로 연습을 하러 가면서, 피곤해 죽을 것 같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11월엔 잦은 회의와 채점 때문에 연습을 빠질 수밖에 없기도 했고.

단가- '더욱더 사랑해'를 부르던 이대 앞 시장통 길거리.
하늘은 어두웠고, 옆에는 '모텔' 네온 사온이 번쩍였지만
여태껏, 어찌보면 습관처럼 공연 후 불렀던 이 노랫말이 이토록 절절히 다가온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개인이 아니라 EC라는 단체에 대한 사랑은 대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세상 곳곳에서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들을 만나게 된다.
귀가 열려 있어서 감사하다.

김민기란 사람은 어떤 이일까?
맑고 담백한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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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죽한 봉우리 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 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에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 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


8월 8일이 입추였구나. 그래서 이렇게 바람이 선선해진거구나.
음력 절기는 기가막히게 맞는군.
오늘은 음력 7.12. 목요일 새벽이다.


계절학기가 끝난 후, 지난 학기부터 긴장되었던 근육과 정신줄을 잠시 놓고 나니, 8월이 쑥 찾아왔다.
유난히 덥고 습한 날씨에 허덕거리며 지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의심하기도, 체력저하인가? 아니면 정말 유난히 올해 날씨가 지독했나, 뭣 때문인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셋 다겠지 뭐.


제대로 충전도 못한 채 방학의 반이 날아갔다는 불만, 학위 받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연구자로서 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불안감, 에어컨 때문인지 일주일에 5일 동안 계속되는 두통과 어깨결림, 불면증, 허리에 통증, 다음 학기 강의 준비, 학교 행정을 떠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등이 쌓여서 8월 첫 주는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날 해방시켜 준 건, 신앙이면 참 좋겠지만.... 월요일에 갔던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연주였다.
오대산 월정사. 저녁 8시.
태풍 때문에 월정사 뜰에서 진행되려던 연주는 불당에서 하게 되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보는 연주라니. 게다가 무대 쪽에는 금빛 불상들이 번쩍번쩍, 왼쪽 오른쪽 벽도 모두 번쩍번쩍 불상들이 촘촘히 놓여있는 공간이었다.


오보에로 연주한 피아졸라, 두 대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사라사테, 현악 앙상블-차이코프스키.
무엇보다 사라사테의 곡이 역시 바이올린 곡으론 지존이었다. 파릇파릇한 두 젊은 연주자의 연주 실력에도 놀랐지만(와..정말 잘 하더군! 젊은이의 자신만만함과 곡에 대한 영특한 해석), 두 사람이 합을 맞추기 위해 '흐음'하고 들숨을 쉴 때, 그리고 나서 활을 그을 때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예당이었으면 R석에 해당하는 자리. 연주자의 미세한 움직임과 곡에 대한 해석이 손에 잡히더군. 하아-


마지막 곡.-차이코프스키, 현악기의 앙상블
인간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모여, 모든 감정선을 함께 느끼며 동시에 표현하는 일.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각자 힘든 과정이 있었겠지만 따로 그러나 또 함께이니 덜 힘들지 않았을까. 감동도 더 크지 않을까.


듀엣, 트리오, 콰르텟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연주자들의 '합', '조화', 그리고 합쳐진 에너지가 주는 무한한 감동.
내가 추구하는 '인간적인 삶'의 형태 또한 이런 것인데......
현재 사생활에서도 일에서도 대부분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길을 걷고 있으니, 그리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생활이 삐걱거리며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결론.


글쓰기 무지 귀찮은데, 요새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생활이 정리가 잘 안 돼서 기록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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