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보통이 한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좌표가 불안정하기에 '불안'을 느끼는 것일지도,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러했다.
조급할 것 없는데도, 이제 시작인데도 불만이었고,
강의가 여기저기서 넘쳐흘렀는데도, 그것도 싫었다.
나라는 사람의 좌표는 떠돌거나 아예 표시도 안 되어 있거나 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과거에 정체되어 있는,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곳에 틀어 박혀 있다는 생각. 여튼 그러했다.

어제 받은, 합격을 알리는 전화는 내가 그동안 '물리적인 좌표'를 얼마나 필요로 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그간의 과정을 생각해 보니, 어딘가 자리가 나서 가게 된다는 건 사람들 말대로 운과 노력의 합작품이라는 말이 맞다는 것과 또 성실히 살다보면 안 되는 건 없겠구나 싶다. 그리고 모든 경험이 쌓여 선을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때마침 국어학 전공자를 원했고, 때마침 난 학위 소지자였고, 나이도 이젠 너무 어리지도 늙지도 않았다.

2008년 새벽에 일어나 엄마(! 아...여지없이 어무니 등장해 주신다.TT)가 상봉터미널에 데려다주면, 거기서 7시에 학교버스를 타고 가서 정말 빡 세게 강의해야 했던 내 생애 첫 번째 강의는,
그리고 하필(or 운 좋게도) 한의학과와 OOO과라는 같은 학교 내에서도 최상위와 최하위 수준의 애들을 가르쳤던 경험은 내가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해 주었다.
 
지난 학기 수업 시수가 너무 많아서 질식할 것 같다며 잔뜩 투덜거리며 강의를 했었는데,
이건 내 강의 경력을 단기간에 늘려주었다. 그래서 졸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논문을 쓰고 나서 교재를 쓸 때, 도무지 쉴 틈이 없다면서 괜히 시작했다면서 뒷목을 잡고 있었는데,
이건 내가 그쪽 방면으로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방편이 되었다.

인터뷰 관련 책을 쓰고 강의를 하기 위해 공부했던 지식은 실제로 내가 면접을 볼 때 도움이 되었고,
내가 했던 스피치 관련 강의 역시 시강을 할 때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는 잘못 선택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한국어교육의 3년여의 경험까지도,
외국인 유학생들과 교환학생이 많아지면서 좋은 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의 친절 미소 훈련, 교안 작성 훈련 등이 교수법에는 도움을 줬던 것 같다.


하나님은 날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 가고 계신 것인지......
이건 내가 방학 계획표를 짜듯 월화수목금토일 구상한 스토리들이 아니었다.
순간순간 주어진 것들이었고,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몇 개의 선택들만을 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나의 작품이 아니다.

믿음 좋은 엄마는 내가 어디에 지원을 했다고 했을 때에도, 그저 마음이 편하고 하나님이 잘 이끌어 주시겠지, 만약 되지 않아도 또 좋은 길을 준비해 놓고 계시겠지 하는 믿음이 굳게 들었다고 하셨다.
그래, 그런 믿음이 중요하다. 의심 없는 믿음이.

내가 가볍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내일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며 혼자 끌고 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회개로부터 나를 가볍게 할 수 있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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