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관계에서 힘이 약한 을은 늘 갑에게 당한다.

사전에 어떠한 협의도 없이 갑에 의해 일이 벌어지고,
을은 그저 평가/재단 당하는 입장이 된다.

몇몇 선생님들의 재임용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마음이 어수선하고 답답해졌다.

당사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위로를 하기도 하고, 함께 화를 내주기도 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감'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그런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게 더 속이 뒤집어진다.

이 일 자체가 딱히 불합리한 것은 아니나(애초에 약속한 바가 없으니),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어쩜 그럴 수가라고밖에 말 못하는 사건.

한 가지 지적하고 분노할 수 있는 '타당한' 것은,
적어도 그 동안 몸 바쳐 일한 사람에게,
앞으로 그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설명을 사전에 해 주고,
이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제스쳐가
최소한, 인간에 대한, 혹은 배운 사람들의 예의인데,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번 채점 일을 '갑자기', '까라면 까라' 식으로 처리한 것도 그랬고,
인증원인지 뭔지에서 일거리를 안고 와서는, 우리에게 잔뜩 쳐 안기는 것도 그랬다.
초과 학점 시수를 강의하는 것도 그랬다.
이들은(누군지 모호함, 어쨌든 '갑') 항상, 모든 일을 할 때, 을에게 이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노사분쟁도 이래서 생기는 게 아닐지. 어떠한 일을 할 때 왜 미리, 상대방에게 알리고 설득하지 못할까? 그들은 배운 자가 아니거나, 혹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얼토당토 않은 일을 벌이기 때문에 설명할 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것이 공무원들의 일 처리 방식인지 이 사회의 '갑-을' 관계의 일 처리 방식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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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 관계와 별도로, 오늘 을들 간의 회의도 3시간 반이나 있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존중하려 해도,
회의를 들어가기 전 기도까지 하고 들어갔는데도, 역시나 그들을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왜 그 따위 쓸데없는 말만, 비겁한 말들만 골라서 하는가.
왜 정작 '갑'에게는 아무 말 못 하고, 역시 쓸데없는 말만 지껄이는가.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잡다한 이야기는 미친 듯이 떠들어대다가,
이제, 결정을 하고 책임자를 정합시다 하면 비겁하게 숨는가.
한 치의 양보도 없고,
한 치 배려도 없으면서,
입 닥치고 앉아나 있지 왜들 그렇게 말만 많은가.

결국 '제가 하지요. 회의 이제 끝내지요.'라고 말한 나는 뭔가.

나보다 10년은 더 사신 K 선생님께 배워야 한다. 자기의 의견을 명확히, 솔직히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을 감싸 안는 화법.(그래도 을들 중 이렇게 배울 점이 있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점에 감사하자.)

갑인 P 선생님께도 배울 점은 있다. 갑이되 을의 입장인 것처럼 보이면서, 꼼꼼히 요구할 것은 다 하는 화법.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는........흠.

다음 회의 땐, 두 분의 말을 녹음해서 분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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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결론:

1. 여기를 2013년 상반기 때에는 벗어나자. '갑'이 되자.
   (2012년이 중요한 해인데...... 일을 최대한 줄여야겠다.)

2. '갑'이 된다면, 그나마 조금 영향력이 생기니, '을'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배려하자. 그리고 명령이 아니라, 요구도 아니라, 요청하자.


3. 의문: 사실 여기를 벗어난다해도 난 '갑'은 못 될 것이다. 김 대리 왈,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갑은 정부기관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립국어원? 훗~ 그 재미없는, 우울한 곳으로? 우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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