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에는 여전히 동조할 수도, 공감하지 않는다. 부부는 여전히 객체이자 타인일 뿐이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일심동체'라는 기대치를 한껏 올린 꿈을 꾸는 것보다는 옆에서 지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줄 수 있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일이다.


소풍 같은 날들을 보내자며 약속하고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1년하고 며칠이 지났다. 결혼한 지 10년이 된다는 친구, 내일이면 결혼 40주년을 맞는 부모님을 보며, 진심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존경심이 나온다. '혼인 관계의 지속'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이해와 배려의 산물 아닐까. 마땅히 서로가 서로를 장하다며 축하해야 하는 날.


우리의 혼인 1주년을 즐겁게 보내지도, 기념하고 축하하며 보내지 못하고 흘려보낸 게 마음에 걸리고 아쉽다. 우리의 1년 속에는 아름다운 지점이 곳곳에 많았고,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으며 웃을 수 있는 좋은 날들이었다. 그가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고, 나의 마음도 건강해지는 6월- 초여름 어느 날쯤, 다시 기념을 하며 지나가야겠다 싶다.



 



꿀맛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는 밤,
지독한 감기에 걸렸으면서
늦게 퇴근하는 아내의 발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젖지 않도록
슬리퍼를 챙겨서 마중나오는 남편.

회식을 마치고 거리를 걷다가 지나치는 악세사리 샵에서
아내에게 어울리겠다 생각하며 귀걸이 세트를 사는 남편.

좀 심하게 감사해서 오늘 귀가길에 혼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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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 보는, 나의 선배의 후배인 듯한 사람네 집.
이 사람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드나든다.

이 사람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신앙이 녹아든 모습도 보기 좋고,
노래를 해서 가끔 올려 놓는 파일들도 재밌다.
이 사람의 직업은 새터민 사업 등 복지 재단 쪽 일을 하는 듯한데, 아주 사명감 있게 힘든 일을 열심히 한다.
이 사람의 친구들 소개도 따뜻하고 솔직하다.


특히 이 사람 글을 엿보다 보면
연애 시절부터 결혼 생활 1년차(?) 정도가 된 지금까지,
뚝배기같이 생긴 남편(그런데 가장 잘 생겼다고 말하는 걸 많이 봤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어떤 날엔 남편 천사를 하늘에서 내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는 글도 봤다.@@ 약간 까칠한--; 난 "사람"이 그렇게 좋은가 싶으면서도 매우 부러웠다.)

오늘 그의 집에 놀러 갔다가 '꿀맛'이라는 글을 보며,
사랑을 주는 그의 남편과 이 사랑을 고맙게 받는 이 사람이 또 한번 부러웠다.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 아닐까.
마음을 주고ㅡ 그 마음의 그릇을 모양 그대로 감사히 받고.

틀에 담겨 있지 않은 것이 마음이기에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키기 일수가 아니던가.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마음 그릇을 선사해 준 사람의 의도 그대로를 읽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그러다 문득 블로그를 닫다가 오버랩된 장면.
 "이거, 우리 아빠잖아!" 하는 거였다.


아빠는 출장을 가면 항상 엄마와 내 선물부터 챙겼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항상 가족 생각을 했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엔 종이에 빼곡하게 편지를 써서 일주일에 한 통은 꼭곡 소식을 전했었다.
마일리지를 아껴서 엄마와 내가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게 해 줬고......


엄마와 내가 '까다로운 이 선생'이라고 아빠의 예민함을 놀리긴 해도,
"(끄덕끄덕)아빠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둘이 쑥덕거리는 이유는
아빠만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_^
모든 판단 기준을 제쳐 놓고서라도.

 

단, 이 남자와 울 아부지와의 차이점은~ㅋㅋㅋ
이 남자는 말수가 없는 편인 듯했고, 주로 행동으로만 묵묵히 보여주는 유형인 듯했다.
울 아부지는 말수와 행동 둘 다 아주 풍부하시기 땜시롱, 엄마는 말을 들으면서 조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 거고.
우히힛~ :D

곧 다가오는 두 분의 33주년 결혼 기념일.
세상에서 제일 예쁜 마누라와 까다로운 이 선생께서 행복하게 사셨음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리고 두 분 다 건강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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