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금요일이 아까워서 TV를 틀었다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영화 한 편을 봤다.

<달리는 자전거>

영화를 보면서 어디에선가 많이 본 장면, 배경, 느낌이 쓰였다는 생각에 더 재미있었다.
그 조각들이 어설프지 않게 잘 어울리도록 만들어 놨으니 감독이 잔잔한 재주 혹은 센스가 있는 사람인가 보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어디에선가 있을 것 같은 사람 사는 얘기가 나오고,
도시가 아닌 지방 도시가 배경이라는 점, 주인공이 사는 집의 구조, 주인공의 성향이  아주 닮아 있다.

일본 영화 <4월 이야기>처럼 신입생과 헌책방이 등장하고,
풋풋한 사랑의 감정도 나오고.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처럼
백수나 재수생, 죽은 알콜 중독자 엄마 등 이 사회에서 비주류인, 사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평가 없이 담담히 진행된다.


이탈리아 영화 <그녀에게>처럼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수준인 여자와 그를 돌보는 남자도 나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네 영화의 이미지들이 오버랩되어서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뻑쩍지근했던, 그야말로 요즘 영화 <아바타>를 본 이후  
처음으로 본,
과거부터 내 취향과 맞닿아 있는 영화를 보니 거참 마음이 꽉 차는구나.


이렇게 쉽게, 88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별 볼일 없던 마음과 피곤했던 머리가 뜨뜻한 기운으로 가득 차는 걸 보면
좋은 영화, 좋은 음악, 좋은 글, 좋은 이야기, 좋은 인간 등 세상에 존재하는 순기능의 힘이  얼마나 센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4월 1일이 시작되면서
4월 한 달 안에 판가름 내지 않으면,
이번엔 정말 끝이다, 그냥 자포자기할 지도 모른다는 절박감 같은 게 생겨서, 마음이 좀 무겁고 차가워졌는데, 이 영화 덕분에 한결 부드럽고 살만해졌다.


94년인지 95년인지 아주 더웠던 여름이 생각난다.
하루종일 독서실에서 공부하고(그때도 난 독서실에 다녔었군...ㅎㅎ),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는 길, 중간에 있던 비디오 가게에서 거의 한 편씩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오곤 했다. 비디오가게의 노란 간판과 쩅쨍거리며 내 머리에 쏘이던 햇빛, 까만 비닐 봉투 속에 담아준 비디오테이프를 흔들거리면서 걸어오던 그 길이 생각난다.

6시 반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1시간 반 가량 다른 세계에 다녀오곤 했었는데.... 그리고 바로 지금처럼 이런 훈훈한 기분을 느끼면서 다시 독서실로 가서 공부를 했었고....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었던 그때,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이었을 때,
내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준 건 영화였는데,
지금 역시 그렇네.


기분 좋게 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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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 라는 깨끗하게 생긴 배우가 이미지만 팔아 먹는 요즘 애가 아니라 꽤 매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영화. 웃는 게 참 예쁘더라.('동이' 봐야겠는 걸.. TV 끊으려고 했는데...쩝)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년 8월 개봉작이었구나...

영화를 보면서 내용에 비해 제목이 참 별로라고 생각했는데(직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함축적이지도 않고......아무런 호기심도 유발시키지 않는, 밍숭하기 그지없는 영화 제목이라니....) 포스터 카피 뽑아 놓은 건 더 별로다.

세상에.... 쯥! 이 괜찮은 영화에 저런 그지같은 카피를 뽑아 놓다니. 어린 학생들의 방학을 노리고, 호객행위 하려고 만든 카피로밖에 안 보이는구만.@@ 고심해서 카피를 만든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차암 너무 하셨네. 어떻게 이 영화를 '같이 있으면 맥박이 빨라져요. 이러다 나..고백해 버릴 것 같아" 같은 싸구려 문구로 압축할 수가 있었을까?@@ 내가 감독이었다면 무지 열 받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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