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0일 화요일 새벽이다.

 

 

오랜만에 내 방에 왔더니, 이토록 마음이 안정되고 편할 수가 없다.

나다운 놀이와 휴식. 반갑다.

쨍쨍한 한여름 더위를 지나온 새벽의 조용함과 선선함이 반갑다.

이게 여름의 맛이었고, 여름 방학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지!

공부를 하거나 책을 늘어지게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아-좋다.

이런 환경을 주신 부모님과 하나님께 감사하다.

 

 

 

 

지난 7월 4일. 수요 영성 클래스

 

지금, 여기에 살자라는 뻔한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인생 한 줄.

맑고 즐겁게 놀다가자.

 

과거에도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겁내지도 말고,

사랑하면서 살다가자.

 

온유하게 살다가자.

두들겨 맡고, 깨달은 후에야 찾아온다는 '온유함.'

다행스럽게도 스무 살, 서른 살.-나름 두들겨 맡지 않았는가.

징크스처럼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두들김이 무섭기도 하지만,

역시 다행히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일종의 시련들을 겪게 하신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내게 부족한 것이 '온유함'임을 아시고, 계속 훈련시키는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동행이란 의미는 엄마와 태중의 아이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일심동체와 같은, 너와 내가 하나라는 의미라는데.....

노아는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자였다고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특징-

"햇살 같은, 뜨겁고, 밝고, 사랑이 넘치는"

 

내 주위에서 이런 신앙의 사람들을 찾아보게 된다.

이런 모습으로 나이 들어 가야 할텐데.

기도해야겠다.

 

 

기도로 앞으로의 날들을 준비해야겠다.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던가.

나를 통해 인간의 의지는 얼마나 쉽게 꺾일 수 있으며,감정이라는 건 얼마나 얄팍한지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이런 모습들에 좌절하거나 근원이 뭔지 파헤쳐보거나 부정하거나 했겠지만, 이제는 이게 자연스럽다고 느껴진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기도하고 기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회의를 마치고, 잠깐 응급실을 둘러 보았다.
生과 死가 들고 나는 곳인 응급실.

아픈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이 제일 먼저 보인다.
그래도 환자 옆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었다면 환자들은 얼마나 더 겁이 났을까, 얼마나 외로울까.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다음으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응급상황'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선배. 따뜻한 바위 같은 사람이다.
묵묵히, 소신 있게 살아나가는 사람.
응급실의 상황을 들여다보니, 웬만한 일로는 흔들리지도 반응하지도 않는 그 선배가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사지멀쩡한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음 아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 사람들 혹은 사회 현상들과 직접 부디껴 가며 사는 일이 내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살아가는 일을 했더라면 몸은 피곤했겠지만 피 끓는 마음으로, 더 생생하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하고 있는 강의와 연구는 대부분 그 파급력이나 접근 방식이 간접적이다.
지금 6개월째 진행하고 있는 연구도 현장중심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 결과가 세상을 바꾸기에는, 혹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하 세월에....느릿느릿 답답하다. 물론 이 연구는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일에 일조할 수 있고, 또 의료진들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 등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간접적이고 조용한 방법이다.

게다가 공부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태도도 좀 못마땅하다. 회의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왜 프로젝트의 리더는 연구원들을 좀더 몰아치지 못하는 걸까. 다 선생들이니 서로를 존중해야 해서인가? 전자와 후자는 별개의 일이거늘.
리더 선생님은 우리 연구팀이 6개월이라는 짦은 기간 동안 괜찮은 성과를 냈다고 흡족해하시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기에 가만히 있었다. 리더가 연구 방향을 처음부터 명확히 제시하고, 분배를 효과적으로 했더라면 이미 끝나고도 남았을 거다. 
 

세상에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도 너무나 많고,
잘못된 의사소통 방법 때문에 어그러지고, 일그러지는 상황들은 차고 넘치는데,
밥 먹고, 커피 마시느라 세월을 보내고, 또 공자왈 맹자왈 떠드느라 시간을 보내고.....
답답하다.




아무래도 연구자의 지적 호기심 충족- 이런 이유로 책상에만 앉아 공부할 성향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의를 논리학으로 따지고, 양적 함축이니 질적 함축이니를 이론화 시켜 논하는 쪽은 내 갈 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이런 게 더 '있어보이는데'...)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난 이번에도 역시 '불모지'를 택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굳이 기존 것에 반발하려는 심리도 없고, 기득권을 쥐고 있는 분야를 피하려는 것도 아닌데, 하다보면 반대로 가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2012년에는,
'기득권', '있어 보이는 분야(안을 들여다보면 별것도 없으면서)'와 '내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관심있는 분야' 사이에서 더이상 방황하지 말아야겠다.

헛된 욕심 혹은 되도 안되는 계산으로 시간 낭비를 하거나
불필요한 갈등을 겪으며 살 필요는 없으니.

가야 할 길을 차분하고 씩씩하게 가 보겠다.
주님이 살아가며 인간들에게 보여주셨던 '진리의 세계'에 멋지게 뛰어들겠다.
그리하여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그 말씀의 맛을 1/100이라도 맛볼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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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에 나와 있던 기도문이다.
2012년 한 해, 기도하며 살아야지.
 
지혜의 하나님,

새해엔 통찰과 회개의 영을 주시옵소서.

어리석고 교만한 삶의 자리를 버리고

지혜롭고 겸손한 길로 인도하소서.



불신앙의 생활을 버리고

주일을 성수하며 안식하게 하옵소서.



안이한 삶을 버리고

믿음으로 주의 진리의 세계에 뛰어들게 하소서.



낮은 자리로 임하시는 주님!

주님처럼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청결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화평케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낮은 마음, 깊은 사랑의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요즘 책 때문에 다시 아침 6시 반쯤 자서 12시쯤 일어나는 이상한 생활이 시작됐다.
사실 이게 멀쩡한 대낮에는 일이 하기 싫어 밍기적거리다가 밤 10시쯤 되서야 책상 앞에 앉아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요렇게 되는 거지.(이런 '그지 예술가' 생활 패턴 싫은데......)
 

여하튼, 그리하여 오늘 예배를 못 갔고...(논문 끝나면 산마루교회나 이대교회에 가 봐야지 했었는데)
문득, 하나님께서는 내게 어떤 능력을 주셨고, 그리고 그걸 어떻게 쓰길 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잠시 기도도 해 보았다.
(물론 하나님의 음성 이런 것은 들리지 않았고, 배가 좀 고파올 뿐이었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삶이고, 당장 내일 건강이 어떻게 될지, 어떤 일이 생길지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지만,
그 매일을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1년, 10년, 20년이 결정된다.
방향성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논문을 끝내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기회가 찾아온다.
일이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난 이런 해석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지극히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관점이기에.


나의 길에 대한 방향성이 세워지지 않으면, 아마 그들이 주는 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구분도 못한 채,
덥석덥석 물고 볼 게 뻔하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겠지.

이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보다 전략적인 플랜이 필요하지.
덥석거리다가는 지금부터 중요한 앞으로의 약 3,4년간의 시간을 그렇고 그런 생활의 반복으로 흘려보내버릴 수 있다.(현재 내가 두려운 건, '그렇고 그런 시간을 보내며, 그렇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내 인생을 즐겁고, 능동적으로 꾸려가라고 이야기를 해 주시고 계신다.
(다행히도 난 태생적으로 혹은 길러지기를, 낙관적이며 세상이나 타인이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가올 기회들 중, 쳐낼 것은 쳐내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 인생의 방향성을 올 하반기동안 기도하면서,
맑은 정신으로, 또박또박 세워나가 봐야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다음주엔 산마루교회에 가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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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건 점점 부수적인 테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지금의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인 것 같다. 딱히 불만이 없으니......
다만 돈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많이" 벌려서 부모님 크루즈 여행도 보내드리고, 집도 좀 더 쾌적하게 고쳐드리고, 그 뭐냐.... 벤츠처럼 좋은 차도 한 대 뽑아드리고, 우리 세 식구 비행기 타고 여행도 1년에 한 번씩은 다니고.... 뭐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거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모님이 건강만 하시다면.)



삶의 방향성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함께 기도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낙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이런 류의 고민은 배부른 자의 것이라느니, 니가 굶어보지 않아서 그렇다느니 라는 한 부류와
전혀 실행은 없으면서 미래에 대한 공상만 해 대는 공상가, 나약하고 나 중심적인 한 부류.

여하튼 주변을 살펴보면 대략 '극과 극'을 달리는 남자들이 대부분이다.(쯧쯧쯧......)
중도를 걷는 이는 정말 30명 중 한 명 볼까말까고, 게다가 그들은 이미 결혼을 했다! (그것도 아주 속물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혹은 소위 여우 같은 여자랑! 역시 그런 여자들이 일찍 세상에 눈을 뜨고 자기 삶을 꾸려가는 데는 똑똑한 것 같다. 그 여자들을 내가 저렇게 판단하는 것은 명백히 '질투' 때문이다.) 그렇담, 그 커플들이 이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결혼은 내게는 부수적이지만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기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
결혼 제도에 포함되지 않은 인간은 늘 뭔가 결여되어 있다는 평가를 알게 모르게 받으니까.......
아직까지는 성인 완전체로서 인정 받기가 좀 힘든 사회 분위기니까.
(아이러니한 것은 결혼한 자신들이 안정되었으며, 완전체 성인으로서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저런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이지.)

결혼과 사랑에는 분명 가공된 헛 물이 있다.
헛 물을 켜면서도 '무조건', '그래도' 라는 이상한 믿음이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있다.
가족에 대한 그 무엇이 맹목적이듯이.
나 역시 저러 '헛 물'과 '맹목'에 반쯤은 발을 담그고 있으니 할 말도 없고.


바뀔 날이 있을까?
아니 또 굳이 바뀔 필요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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