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오늘 몸이 아퍼서인지 스크랩해 두었던 기형도 시인에 대한 기사를 보니
마음이 확 쏠린다.

모든 걸 함축한 제목에,
담담한 어투로 절망과 상실을 얘기한다.

너댓 살  더 먹은 윤동주 같은 기형도.


스물 몇 살 땐 나약해빠진 윤동주, 게다가 요절까지 해 버린 기형도 스타일은 딱 싫었다.
(좋았지만)일부러 더 싫어했다. 슬픈 유행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삶도 비슷하게 된다는 말처럼, 나도 이들처럼 될까봐.
그때의 난 삶에 대해 나름 전투적이었고, 나름 성취지향적이었음으로.(차라리 부르르 이육사나 싸이코 이상이 맘에 들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다시 윤동주나 기형도가 좋구나.
후훗-
취향은 잘 안 바뀐다.
바꾸려해도 잘 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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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
병원에 갔다 왔음.(이상한 목사가 많은 것처럼 이상한 의사도 많다는 것을 요즘 체감하고 있음. 하긴 선생도 이상한 사람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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