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의를 마치고, 잠깐 응급실을 둘러 보았다.
生과 死가 들고 나는 곳인 응급실.

아픈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이 제일 먼저 보인다.
그래도 환자 옆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었다면 환자들은 얼마나 더 겁이 났을까, 얼마나 외로울까.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다음으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응급상황'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선배. 따뜻한 바위 같은 사람이다.
묵묵히, 소신 있게 살아나가는 사람.
응급실의 상황을 들여다보니, 웬만한 일로는 흔들리지도 반응하지도 않는 그 선배가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사지멀쩡한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음 아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 사람들 혹은 사회 현상들과 직접 부디껴 가며 사는 일이 내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살아가는 일을 했더라면 몸은 피곤했겠지만 피 끓는 마음으로, 더 생생하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하고 있는 강의와 연구는 대부분 그 파급력이나 접근 방식이 간접적이다.
지금 6개월째 진행하고 있는 연구도 현장중심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 결과가 세상을 바꾸기에는, 혹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하 세월에....느릿느릿 답답하다. 물론 이 연구는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일에 일조할 수 있고, 또 의료진들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 등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간접적이고 조용한 방법이다.

게다가 공부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태도도 좀 못마땅하다. 회의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왜 프로젝트의 리더는 연구원들을 좀더 몰아치지 못하는 걸까. 다 선생들이니 서로를 존중해야 해서인가? 전자와 후자는 별개의 일이거늘.
리더 선생님은 우리 연구팀이 6개월이라는 짦은 기간 동안 괜찮은 성과를 냈다고 흡족해하시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기에 가만히 있었다. 리더가 연구 방향을 처음부터 명확히 제시하고, 분배를 효과적으로 했더라면 이미 끝나고도 남았을 거다. 
 

세상에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도 너무나 많고,
잘못된 의사소통 방법 때문에 어그러지고, 일그러지는 상황들은 차고 넘치는데,
밥 먹고, 커피 마시느라 세월을 보내고, 또 공자왈 맹자왈 떠드느라 시간을 보내고.....
답답하다.




아무래도 연구자의 지적 호기심 충족- 이런 이유로 책상에만 앉아 공부할 성향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의를 논리학으로 따지고, 양적 함축이니 질적 함축이니를 이론화 시켜 논하는 쪽은 내 갈 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이런 게 더 '있어보이는데'...)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난 이번에도 역시 '불모지'를 택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굳이 기존 것에 반발하려는 심리도 없고, 기득권을 쥐고 있는 분야를 피하려는 것도 아닌데, 하다보면 반대로 가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2012년에는,
'기득권', '있어 보이는 분야(안을 들여다보면 별것도 없으면서)'와 '내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관심있는 분야' 사이에서 더이상 방황하지 말아야겠다.

헛된 욕심 혹은 되도 안되는 계산으로 시간 낭비를 하거나
불필요한 갈등을 겪으며 살 필요는 없으니.

가야 할 길을 차분하고 씩씩하게 가 보겠다.
주님이 살아가며 인간들에게 보여주셨던 '진리의 세계'에 멋지게 뛰어들겠다.
그리하여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그 말씀의 맛을 1/100이라도 맛볼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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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에 나와 있던 기도문이다.
2012년 한 해, 기도하며 살아야지.
 
지혜의 하나님,

새해엔 통찰과 회개의 영을 주시옵소서.

어리석고 교만한 삶의 자리를 버리고

지혜롭고 겸손한 길로 인도하소서.



불신앙의 생활을 버리고

주일을 성수하며 안식하게 하옵소서.



안이한 삶을 버리고

믿음으로 주의 진리의 세계에 뛰어들게 하소서.



낮은 자리로 임하시는 주님!

주님처럼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청결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화평케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낮은 마음, 깊은 사랑의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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