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낭비 없이
끝까지 완료할 것


어젠 정말 아침 6시 반부터 몰아쳤는데도 별 성과가 없어서
저녁 7시쯤이 되니(저녁도 안 먹었는데 7시가 넘어 있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이젠 워낙 분량이 많아져서 내 논문을 앞에서부터 훑어보기도 힘들다.

사실 워낙 앞 쪽에 공을 많이 들여놓은 터라
이것저것 생각한 것들을 다 논문 속에 쏟아내고 싶은데, 사실 그게 정리도 안 된 게 많고,
근데 버리자니 아깝고...
앞으로 돌아가면 자꾸 보충할 게 많아지고,
그런데 뒤는 안 해 놓은 게 여전히 많고 시간은 없고....
어제는 밤이 되니까 피곤과 짜증과 몸까지 욱신거려서 1시쯤 노트북을 끄고 자 버렸다.


논문 작업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의 내 습성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 앞의 것을 완벽히 해 놓았다고 생각해야만 뒤를 진행시켜나가는 이상한 완벽주의.
이런 스타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가 바로 이런 스타일이었다.
뒤를 하다보면 앞이 보충되곤 한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항상 근본적인 것부터라는, 그런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실제적인 자료로부터 시작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개념 정의로부터 시작하길 좋아한다는 것.

이런 사람의 함정은 자기가 세워놓은 이론이 다 무너지면 그 다음부턴 모든 게 엉망이 된다는 것인데...
물론 체계적인 틀 정립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좀 더 실증을 가지고 증명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체력과 끈기가 부족해서 지금처럼 기껏 틀 정립해 놓고 적용은 대충하고 마는 이런 스타일은 좀 곤란하다.
요즘 트렌드랑 맞지도 않고.

이 논문을 끝내고 나면, 남은 주제들을 가지고는
꼭 완전히 귀납법적으로 손을 대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내 이런 연역법적인 성향을 상쇄시켜야 한다.

- 처음엔 선행 연구들 무시해서 꼼꼼히 검토를 안 하는 바람에 일을 두번 세번 하게 된다는 것.
  현명한 연구자는 설사 선행 연구가 별로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중요한 내용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어쨌든 "대인배 심플, 전 샘"이 내게 메일로 남겨 준 간결한 말이 지금 내게 필요한 게 아닐까.
감정 낭비 하지 말고 끝까지 즐기면서 잘 해라.

위기의 순간, 압박의 순간에는 도리어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말이
체증을 뚫어주곤 하는 것 같다.
<17> 화법 교육의 중요성
  
갑:저 여자 누구야?
을:그건 왜 묻고 그래?
갑:물으면 안돼?
을:누가 안된대?
갑:근데 말이 왜 그래?
을:내 말이 어때서?
갑:몰라서 묻는 거니?
을:그럼 몰라서 묻지, 알면서 묻는 사람도 있어?

  일상 생활에서 벌어질 법한 상황을 설정한 대화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갑’은 얻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다. 한 사람이라도 자존심을 버리고 대화의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더라면 훨씬 생산적인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 묻는 말들이 반복되면 언쟁으로 가고 있는 신호다. 이처럼 의문문이 수 차례 되풀이되면 대화의 목적이 상실되거나 언쟁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보고 대화 방법을 바꾸는 게 좋다. 말을 평서체로 하거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설명을 해주는 게 한 방법이다. 그러나 갑과 을은 이를 피할 방법을 찾지 않고 있다. 평상시에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응대하는 훈련이 안 됐다는 증거다. 화법 교육을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스피치’라 불리는 ‘말하고 듣는’ 생활의 총칭이 화법이다. 뜻이 담긴 말을 택해 소리내는 것이 말하기이고, 소리를 듣고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듣기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올바른 대화를 위해서는 화법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의사 소통 능력 향상과 원만한 인간 관계 형성을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말하기 위주의 언어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국어의 네 영역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서 화법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미흡했다. 교육적 차원에서 보면, 고등학교 과정에서 국어 과목의 말하기·듣기 영역의 심화 과정으로 화법이 정식 과목에 편입된 것은 1995년 제6차 교육 과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그나마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어서 독서나 작문 등 다른 과목에 비해 적게 채택되고, 실제로 수업을 하는 학교는 드물다.
  대학에서의 화법 교육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1962년 ‘국어 화법’이라는 강좌가 개설됐으나, 대다수 대학의 화법 강의 역사는 짧다. 상명대가 1995년 1학기부터 학부생을 대상으로 ‘대화의 기법’을 개설한 이래 숙명여대는 1995년 2학기부터 ‘실용 화법’이라는 강좌를, 중앙대는 1996년 1학기부터 ‘문장 작법과 화법’이라는 강좌를 개설한 정도다 .
  서구의 교육 실태와 비교하면 국내 화법 교육의 부실 정도는 더욱 심하다.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습관적으로 말하기와 듣기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효과적인 듣기에 노력하기는 고사하고 자기 표현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인 상당수는 제대로 된 화법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적인 문화 배경도 제대로 된 화법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임칠성 전남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 되고 체면 의식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며 화법 교육 부실의 또 다른 원인을 진단했다.
  그러나 대학을 비롯한 교육 현장의 교육 방향이 점차 실용성 위주로 가고 있고, 사회 생활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태도나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만큼 화법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올바른 문장 구성을 위해 작문을 배우듯, 올바른 언어 생활을 위해서는 화법을 익혀야 한다. 이대규 전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개인적인 일상 생활, 사회 활동, 직업 활동에 필요한 대화의 생산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화법 교육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화법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듣는 이는 말하는 이의 인격, 인간 관계, 지적인 호소력과 연관해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법이 단순한 메시지의 전달과 이해가 아니라 의미의 공유 과정을 함께 하는 작업인 셈이다. 화법은 재주가 아니라 인격의 진솔한 표현으로도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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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토론. 토론이 아니라 씁쓸하게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을 보면서, 학생들의 스피치를 들으면서, 요새 애들의 이상한 영어 [s]에 가까운 'ㅅ' 발음과 마찰음 [z]에 가깝게 내는 'ㅈ' 발음을 들으면서, 누구보다도 '대화'를 어렵게 생각하는 나 때문에라도 얼른 좋은 논문을 써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5월 12일. 석가탄신일.
공휴일이지만 나와는 무관.

내일부턴 좀 더 조여 봐야지.


진짜 박사 논문은 엉덩이로 쓴다는 게 맞는 말이었구나를 절감.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 제대로 된 논문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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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쓰는 자의 뇌 구조>



봐도 봐도 웃긴 그림!
논문 쓴 선배 왈, 자신도 딱 이랬다고 한다.ㅍㅎㅎㅎ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즐겁게 하자. 즐겁게.
단순하고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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