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제 오후 3시30분경 흩날리는 눈을 봤다. 입춘 지나 내리는 눈이니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상식이나 가수가 노래 부를 때 뿌리는 하얀색 스프레이처럼 눈이 화사하게 내렸고, 사람들이 그 사이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둘, 허리가 약간 굽은 조그만 할머니, 시장 앞에서 바쁘게 길을 건너는 아저씨 둘. 흐린 날씨라 그런지 사람들이 입은 옷이 어두워서 그런지, 눈이 더 하얗게 도드라졌다. 화사하고 즐겁게 흩날리는 눈은 주인공이고, 회색빛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거리, 시장, 아파트가 배경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학회 발표문이 아니라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었던 어제.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2. 어제 저녁에 아빠(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검사를 여러 가지 해 보자고 해서 입원을 했단다. 조금 놀랐으나 아빠 목소리가 의외로 안정감이 있었고, 요즘 병원을 신뢰하고 있는 듯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안 아픈 사람도 요즘엔 미리미리 돈 백, 이백 들여 종합검진도 하는 마당에, 새해 시작하며 구석구석 종합 검진을 하면 나쁠 것은 없겠지.

 

3. 오늘.

  전체교수회의가 있는 날인데 안 갔다. 꼭 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 학회 발표문만 없었더라면 참석했을 거다.

학회 간사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까지 원고를 넘기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했다. 좀 부끄러웠다. 미리미리 안 하고, 꼭 이렇게 닥쳐서 부랴부랴 쓴다.

게으름이 문제다. 게으름이.

 

더 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4. 오늘.

학회 간사와 전화를 끊고, 기분이 꿀꿀해서 부쩍 늘어난 흰 머리 몇 개를 족집게로 뽑아냈다. 그러다가 CD를 틀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까 해서 둘러보다가 1999년, CD를 발견했다. 뭐였나 싶어서 들어보았다. 예전에도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곡들이, 꼭 지금 내가 듣고 있던 음악인 것마냥 흘러나왔다.

 

 대중음악 취향과, 대중음악으로 여기는 것들은 1999년이 기준이었나보다.

노래와 함께 아름다웠던 날들로 대학 3학년은 윤색된다. 음악과 추억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때도 분명 그지같고 지겹고 걱정하고 게으른 것들로 범벅이 되었던 그날들이 있었을텐데,

지지한 일상도 있고, 부끄러운 것도 수없이 더 많았을텐데,

그저 아름다웠던 젊은 그때, 젊었던 너와 나. 우리로 윤색되어 버린다.

 

어쩌면 이렇게 쉽게, 과거는 아름다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이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생명을 거둬갈 때까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