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6. Sun. 맑음

 

3월 첫째 주 주일이다.

왠지 교회에 가서 사람들과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서 집 앞에 있는 교회에 갔다.

1971년에 지어진 이 교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고,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많았다.

신도의 노회화.

요즘 대부분 한국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젊은이들, 그리고 내 나이 또래의 중년층들을 일요일, 11시까지, 단정한 모습을 하고 교회에 모이게 하기엔,

교회를 채우고 있는 내용물과 형식들이 진부하고 피곤하다.

 

'목사님'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앞에 나서서 뭔가를 말하는 직업의 특성상,

아무리 안 그런다고 해도 권위적이거나 쇼맨십을 부리거나 장황한 수다쟁이다.

우리가 책에서 접하는 '도 닦는', 일상에서 수련하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나은 게 없어 보인다.

'믿음'이라는 영역, 그들이 말하는 이성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라고 말하는 영역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런데 오늘, 교회에서 들은 말씀 중, '이성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믿음이 이성을 배제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들었다. 새로웠다.)

그런 메시지로는 청년, 중년층을 모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신영복 씨의 에세이 한 챕터를 읽는 게 나를 더 성찰하게 하고, 혹은 성경을 혼자 묵상하는 편이 나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배를 보러 가는 이유는 뭘까.

공부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러 도서관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가 아닐지..

내 의지가 약하니, 교회라는 공간을 빌려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 하나님에 대해 좀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지.

운이 좋다면 기독교인다운 모습을 지니고 살고 있는 사람을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은 아닐지.(도서관에서 엄청 성실하게 공부하는 사람 보면 자극을 받는 것처럼)

아주 심플한 이유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교회에 다녀오니 좋긴 좋다.

이 교회가 좀 더 조용하기만 하다면 좋을텐데.

집에 들어오니 우석이 환기도 시켜놓고 잘 다녀왔냐며 나를 반긴다.

집안에 햇살도 들어와 있고, 상쾌하다.

 

 

 

 

#2. 교회에 다녀온 얘기를 두런두런 하다가 둘이서 오늘 스케줄을 상의했는데, 그 순간이 행복이었다.

2시30분경까지 각자 공부하고,

나가서 점심 먹고 산책.

우석은 일하러 갔다가,

저녁엔 남아 있는 부추에 해물을 좀 넣어서 해물부추전을 해 먹기로 했다.

감자랑 호박이 있으니 두부 한 모 사 와서 된장찌개도 끓여 볼까 보다.

우리 두 사람의 이런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도 얼마 남지는 않았네.

 

사람들은 애가 생기면 두 사람의 관계는 소원해진다든지 정신이 없다든지..대부분 부정적인 얘기들을 많이 들려주는데,

응 그래, 그렇구나라고 반응하긴 하지만, 속으론 30% 정도만 아무래도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랑으로 태어난 한 생명이 우리 사이에 등장하면서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더 에너제틱해질 거라 기대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원래 그런 법이다.'류 따위의 정언명제처럼 말하는 것들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한 사람으로서, 부인으로서, 엄마가 될 사람으로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사로운 일들과 관계에 연연하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인생을 길게 보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성찰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아멘.

2016. 2. 29.

 

308 연구실을 떠난다.

물리적으로는 이미 지지난 주에 짐을 정리해서 떠나왔으나 마음은 오늘에서야 떠난다.

 

운이 좋게도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로 계속 연구실이 있었는데,

5년만에 집으로 컴백한 셈이다.

 

두 번에 걸쳐 꽤 많아진 책들과 서류더미들을 집으로 옮겼다.

책장도 2개 사서 베란다에 놓은 후 잘 안 보는 책은 모두 그리로 옮겼다.

 

우석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연구실에서 짐 싸고, 옮기고, 풀고, 책장까지 고르고, 조립하고.

그는 지금 정말 물리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48시간이어도 모자를 판인데,

내 작은 바람들, 요구들에 귀 기울여주면서, 균형을 잡아가며 이겨나가고 있다.

가끔 그가 매우 피곤해 보이는데, 마음도 지쳐버릴까봐 걱정이 된다. 내가 좀 더 배려해줘야 하는 시기인데....잘 못해주고 있어서 미안하다.

그나마 그를 위해서 기도는 하고 있는데, 행함이 없는 기도가 무슨 소용일까.

 

 

올해는 해님이가 태어나는 빅이벤트가 기다리고 있고,

아무래도 신생아, 유아일 땐 아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니

집에서 공부하고 짬짬이 일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다.(그래서 어제는 다른 방에 따로 놓고 쓸 '집중용 책상' 하나를 더 샀다.)

 

 

골방에서 혼자 신경질을 팍팍 내며 논문/일을 쓰는 습관이라든가,

마감 일자가 다가와 스퍼트를 내며 공부를 한다든가,

적어도 너댓 시간이 통째로 주어져야 뭔가를 손에 잡고 한다든가 하는 나의 오래된 공부 습관을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선배들, 일하는 아기엄마들처럼 나도 애가 잘 땐 자야할 것이고,

짬짬이, 정말 짬짬이 시간이 날 때를 부리나케 잡아서 집중해 일을 처리해야 할 거다.

할 수 있을까.

아기가 주는 힘으로 가능할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가능할지....

 

 

우석과 나. 두 사람일 때는 많은 것들이 그래도 예측 가능하고 변주 가능했는데,

해님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변수가 너무 많다.

정말 막연하긴 한데, 그렇지만 이 아가의 등장이 굉장히 기대되곤 한다.

막막함과 끝없는 희망의 공존. 아이러니하다.

 

아기를 기다리면서 더욱더 기도하는 마음, 낮아진 마음, 평온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주여, 제게 엄마로서의 담대함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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