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약 한 달 뒤면 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나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사립초에 보내면 학원 신경 안 써도 되고, 학교에서 아이 수준에 맞게 잘 키워질거라 너무 믿었던 까닭이다. 

4주간의 여름방학 동안 2주는 Summer 스쿨에 나가긴 하지만, 점심은 안 먹고 온다고 한다. 아..세상에마상에. 9시부터 시작, 12시 10분 하교, 셔틀을 타고 오면 아마도 12시 30분쯤 되겠지. 집에 오자마자 점심을 먹어야 하고, 나는 그걸 준비해야 하는 거다. 매일매일 4주 동안 주말 모드(=아이와 함께 계속 노느라 지치는 모드)로 지내게 생겼다는 생각에, 일평생 처음으로 나의  '소.중.한, 꿀.맛.같.은.' 여름 방학 중 한 달이 날아간다는 사실에, 나는 거의 멘붕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이 어린 아이는 나만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오후 1시부터 잘 때까지... 뭔가를 기대하고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세 시간 넘게 온갖 군데 전화를 돌려가며 여름 방학 스케줄을 짜봤다. 태권도, 음악줄넘기, 수영-소그룹/단체 강습,  구립센터 프로그램들, 인라인, 키움센터까지...... 그런데 헉, 사립학교 스케줄과 맞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방학 특강들은 모두 공립 아이들에 맞춰 있기에 오전에 시작하는 거였다. 이런 걸 하려면 학교 스케줄은 할 수가 없다.

대혼동의 시간. 머리를 쥐어 뜯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싶고, 이 땅의 모든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란 말인가 분노했다 하면서 그 작은 카페에 앉아 정신적으로 요란법석을 떨었다. 내 연구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의 의미 있는 여름 방학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둘 다 살아야 해..뭐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 모드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 새벽에 결국 정신을 차리고야 말았다.(다행이다. 돌아와서)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뭘 위해 이러는 건가 싶었다. 정신을 차리는 데 필요한 특효약은 역시 책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게 대혼동과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구만. 1. 책을 읽는다- 2. 글로 적는다.-3. 머리로 정리한다.)

1/3 정도 읽다가 말았던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지은 재미나고 귀여운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뭔가 있을 것 같아서... 4월의 일지에서, 생각보다 빨리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말을 발견했다.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 흥미를 느끼는 것. 두려워하는 것, 기대하고 바라는 것. 아이에 대한 이해는 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저녁 아이와 함께 작은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한번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초등샘 Z, <<오늘 학교 어땠어?>>, p.104.)

재이가 방학 동안 기대하는 건 뭘까, 내가 만약 8세, 초1의 여름방학으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을까. 무엇을 하는 것이 만7세의 한여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될까. 여름방학의 한 달 동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뭘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일 재이와 이야기해 봐야겠다. 그 마음속을 잘 들여다 봐야지.

 

새벽 3시30분. 잘까, 아니면 논문을 쓸까, 아니면 계속 이 책을 읽을까. 새벽에 잠을 안 자고 5시까지 밤을 새우고 지낸 지 3일째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재이 학교 갈 준비를 한 후, 8시 5분에 남편이 재이를 데리고 나가면 식탁을 정리한 후 8시15분부터 10시30분에서 11시까지 자고 일어난다. 이 패턴이 아주 건강한 방식은 아닌데, 모레까지만 유지해 볼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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