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 온 후, 바람이 세차게 불고 구름은 영화처럼 흘러다니고...
센치해지기 쉬운 날,
어디 동해 바다로 휙 차를 돌려 가고 싶은 날,
학회에 갔다.
그것도 한국어교육학회에.@@(젠!장!)


몇몇 사람들을 번잡스럽게 만나 그리 반갑지도 않은데 서로 근황을 물었다.

순수 통사론을, 그것도 완전히 통사 이론이 base인 사람을 이 곳에서 보다니! 현재 서강대 언어교육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전혀 한국어교육 쪽 성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이 곳에서 만나니 기분이 씁쓸하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을까? (서강대는 강의도 많이 준다고 하던데... 아닌가? 아니면 그동안 성향이 바뀌었나?)

연대 국어학 전공자, 유현경이라는 국어 말뭉치를 가지고 형용사에 대해서 연구한 분도 이 곳에서 봤다. 역시 국어학은 먹고 살 길이 없는 걸까?

난 매우 편협하다. 한국어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그게 무슨 학문이냐고, 그냥 좀 쉽게 학자인 척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한국어로 벌어 먹고 살자고 뒤숭숭한데도 나 혼자 이런다.


재단에서 보조 업무를 했던 사람도 만났다. 그 사람은 지금 무슨 한국어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대리'로 일하고 있다며 명함을 주었다. 인사를 고개 숙여 하며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왜? 내게? 빈말이겠거니 하면서도 이 사람 특유의(순진하게 생겨서는 이런 말 잘하는) 접대성 멘트에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나서는 뻔한 말을 그럴듯하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교수들의 강연을 들었다.
순 짜집기 or 잡설 or 명쾌한 결론 없는 모호한 말들이 오갔다.
집어쳐라!
(난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한다. 한편으론, 한국어교육 쪽에서는 조금만 심도 있게 공부하면 금새 어떤 고지에 오를 수 있겠구나 하는 얍삽한 생각도 든다.)

토론이랍시고 토론자를 정해 두었는데,
토론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나열하기 바쁘니 제대로 된 질문과 답변이 나올 수 없다.
어제 본 한나라당 후보 토론회와 별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토론' 문화라는 것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당신 이런 면 잘했습니다 이런 건 얘기할 수 있을지언정,
말한 사람 얼굴을 앞에 두고 이러저러하다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건, 그야말로 '면박'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글쓰기 패턴에 있어서, 당초 한국은 '서론-본론-결론' 구조가 아니라 '기-승-전-결' 구조였다고 하던데, 말하기 패턴 역시 서구의 '토론식 문화'와는 다른 구조로 갔던 것은 아닐까?


괜히 일요일에 기름값 버리고, 어제 더워서 잠도 잘 못 잤는데 꺼이꺼이 연대까지 온 것이 매우 불쾌했고, 피곤했다.



2.
새롭게 알게 된 사람과 편해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할 말은 없고 부자연스럽다.
왜 그럴까?



사람마다 적정 거리감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예전엔 거의 이런 것 모르고 살았는데, 거참.
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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