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7.29 2


몸으로 표현하는 것의 아름다움.

언어가 주된 표현 수단이며, 가끔씩 노래로 감정을 묻혀 내는 것이 전부인 내게 춤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다.

춤이 매력적인 이유는 언어가 빠져 있다는 데 있다.

언어가 없기에 춤은 직접적이고 원초적이다.

아름답다.(자잘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무용수들의 몸도!)




뛰어난 안무가의 안무와 음악과 발레라는 틀(그래도 한 달 발레를 배웠다고 그 기본 틀에서 저런 동작들이 다 파생되는 것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속에서 무용수들은 원초적인 에너지를 끄집어 낸다.

짜여진 틀을 고스란히 보여줘서 엑스피드 선전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이거나
아니면 정제된 틀을 통해 원초적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주거나.
기량이 훌륭한 무용수와 햇병아리 무용수의 차이다.



언어가 주는 인위적인 것이 안 보일 때, 사람들은 무용수에게 브라보를 외친다.

강수진을 훌륭한 발레리나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 사람에게 그 인위성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훌륭한 배우였다.

단지 연극배우처럼 인간의 목소리와 언어가 아니라 정제된 몸과 춤으로 표현하는 배우였다.

인간의 목소리와 언어가 빠지고 대신 몸과 춤으로 표현하는 에너지는 훨씬 센 것이었고....


강수진과 Jiri Jelinek의 <오네긴> 3막 중 파드되.

5분 조금 넘게 춤을 췄는데, 나가라는, 팔을 뻗는 강렬한 손짓에 전률했다.

극이 끝났을 때 강수진의 절규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이 사람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입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시늉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외침에 귀가 먹먹해 오고 가슴 한복판이 눌리며 아팠다.

<오네긴> 전막이 보고 싶다.



2막에서 강수진이 선택한 것은 의외로 우스꽝스러운 희극이었다.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에 맞춘 파드되.

쓸데없는 힘 따윈 다 빼고, 강수진이 누구래라는 무게감을 갖고 바라보는 관객에게 우리 함께 즐기죠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프로페셔널=힘을 빼는 것, 즐기는 것, 혼신을 다하여 집중할 수 있는 사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억에 남는 장면들>

@LDP의 현대 무용은 분출되는 인간의 에너지를 반복되는 음악 속에서 보여주었고,

@차진엽과 Edan Gorlicki의 <When You See God...tell Him>은 언어와 춤의 접합점을 보여주었다. 무용과 음악만이 있을 땐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느낌을 전해주는 반면, 이 무용처럼 언어가 들어가는 순간, 춤의 부호화는 자꾸 언어에 의해서 해독되려 한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해 주는 데 효과적인 면도 있으나 메시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

@유지연: <Etude about the Women> 엔네오모리꼬네의 미션 음악에 맞춰 독무!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정말 춤이 추고 싶었는데, 유지연 씨가 대신 해 줬다.^^

@김주원-이정윤의 <Soul mate '春春'>는 기교는 모두 빼고, 춘향가 판소리에 맞춰 인간 한 쌍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줬다. cross over적인 시도는 관객들의 감성에 어필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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