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된 부암동.
2006년부터였다.

북한산 아래에서 영성 클래스도 했었고, 이 곳에서 오이와 버섯을 넣은 "편수 만두"라는 담백한 만두고 먹어봤고, 유리창을 통해 보면 성곽을 따라 켜 놓은 안전용 시그널이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보이는 선생님 댁에도 갔었다.
그 후로 커피에스프레소라는 카페에도 부모님, 친구 C 등 좋은 사람들과 몇 번 갔고,
점점 반경을 넓혀서 구기동 쪽에 있는 산행을 갔다 온 사람들이 잘 간다는, 맛있는 밥집도 알게됐다.

어떤 의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M은 이 곳이 나와 잘 어울린다 말해줬고,
역시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C는 "참 부암동 되게 좋아하네."라고 말했다.(성격상 추측하건데, 그냥 사실을 말한 것일 듯)"



2008. 9. 13. 토요일. 추석 연휴 전 날.

11월 시험을 앞두고 있는 O와 12월 발표를 준비하는 난 학교에서 만나 공부를 했다.
아직도 같이 공부할 사람이 있으니 좋군!
저녁 땐, 전 날 밤샘 작업 후 새벽까지 회식을 했다는 S가 피곤할텐데도 내 생일 축하를 못 해 줬다고 나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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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서로를 봐 왔지만, 통털어 지금이 우리 셋 모두 제일 바쁜 때가 아닐까 싶다.
서른 초반, 이맘 때가 한창 바쁠 나이인가?



광화문에서 밥을 든든히 먹고, 부암동 바로 아래 지역인 '통의동'을 걷다가  옛날 동네, 옛날 집들 사이에 있는 '고희'란 카페에 들어갔다.
차분하면서도 밝은 올리브 색과 따뜻하고 과장되지 않은 살구색의 페인트칠.
자연스러우면서도 나름 줏대 있을 듯한 카페 주인 아줌마(?)하며,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음악도 좋고...

예쁜 공간은 사람도 덩달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살고 싶게 만들어 준다.
된장처럼 투박하고 고추장처럼 센 사람도 이런 곳에 오면 선이 여려지고 마음이 야들야들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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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 14. 일요일. 하필이면 이 날이 추석, 빨간날.

아아....금쪽 같은 일요일에 아침 일찍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야 한다니 피로가 천만근쯤 느껴진다.
내 친구가 물었던 말이 생각난다.
이 나라에 사는 30대 이상의 성인들 중, 명절을 반기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서울이 텅텅 비어 있어서 잠실까지 가는데 35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덕분에 마음이 좀 풀리고,
주차장에서 막내 삼촌, 숙모의 얼굴과 막 도착하신 아빠의 얼굴을 보니 반갑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족, 핏줄이란 정말 미스테리한 관계다.

식구들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면서도 뭔가 섭섭하여 제사를 지내는 짬뽕 문화 덕에
제삿상에 놓여 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을 사진에서 뵙고 절을 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리며 인사를 드리는 건 좋은데, 이미 육신이 없는 분들께 절을 하는 건 이상한 일임에 분명하다. 인사란 상호작용 행위인데........
하지만 상을 차려 놓고 절을 드리면 절을 하는 이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이런 게 '의식'의 힘이지 싶다.
하늘에서 기쁘게 지켜보실 수 있도록 잘 살아야지......



아침을 먹고 이젠 쉰을 바라보는(? 넘으셨을지도 모르겠네) 막내 숙모와 내가 설거지를 했다.
성별의 원리가 아니라 장유유서의 원리에 따라, 다음 명절 때부턴 스무살 초반과 십대인 동생들에게 설거지를 시켜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뺀질뺀질 안 한다고 할 수도 있고, 혹은 숙모가 아들이 설거지하는 걸 마뜩치 않아 하실 수도 있으니 동생들에게 용돈을 기분 좋게 주면서 회유해야겠다는 전략도 세워본다. 뭐, 까짓거 1년에 두 세번, 그냥 내가 해도 되지만..., 띵가띵가 애들을 놀리느니 시켜야겠다.


시골의 깨끗한 공기 맛을 알아버린 부모님과 나는 이내 잠실의 공기가 답답하다.
양수리 집으로 돌아와 바람이 통하며 천장이 높은 "우리집"에 오니 역시나 천국 같다!

대략10억쯤?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돈을 주고 주상복합 단지가 빼곡히 들어선 잠실이나 복잡한 강남에 집을 굳이 사려 드는 건 좀 이해가 안 된다. 그 돈이면 난 공기 좋은 부암동에 2층집을 짓고 살거나, 매일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양수리에 예쁜 집을 짓고 살겠다~




마당에 나와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지.^__________^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거다!



2008. 9. 15. 월요일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일명 山女 브라운박사와 북악산에 올랐다.
'이북5도청-진달래길-우이동 코스'로 대여섯 시간 가량 쭉 걸었는데,
구기동 초입의 좋은 집들을 보며, '저기 부잣집인가봐'라고 말하면서 우리 둘은 푸히힛 웃었다.
"부자야? 부잣집이야?"
초딩 수준의 짧은 말이면서도 나이 들어 보이는 이런 말을 하는 우리가 너무 웃겼다.


브라운이 살고 싶은 동네도 '부암동'이란다. 나도 그런데~~^^
브라운이 꼭 부암동에 집을 짓고 살았음 좋겠다!



브라운과 산을 오르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도 많이 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말을 나눌 수 있고,
그 친구의 말 소리를 듣는 것도 즐겁고,
아무 말을 안 해도 공백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대남문에서 배와 송편을 먹으면서, 대동문에서 쉴 때 지지직하는 라디오를 끼고 걸어오던 아저씨를 보면서, 심층해양수 사진을 찍으면서, 진달래길의 능선에서 푸하하 웃었던 장면이 또렷이 남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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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바글 생각이 끓다가도
북한산 바위가 떡 하니 나타난다든가
산 아래로 서울이 조그맣게 펼쳐져 보인다든가
이름은 모르겠지만 빨갛고 까만 열매가 달린 나무가 보인다든가
더위 속으로 시원한 산 바람이 스친다든가 하면
모든 생각은 순간 딱 멈추고, 그저 지금만 100% 느낄 수 있는 게 산행의 맛인 듯하다.




구기동 길은 우이동 쪽에서 올랐던 것보다 훨씬 아늑한 숲 속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씩씩한 기운이 있고, 잘생기기까지 하고, 거기다 아늑한 면모까지 갖췄으니,
이 산이 사람이라면 완전 반했을 듯. 뿅뿅!!
(음- 그래도 아직 1위는 덕유산이고, 2위는 울릉도에 원시림을 간직한 '그 산'이다.-(산 이름이 뭐였더라...) 덕유산은 넉넉하고 푹신푹신한 느낌이었고, '울릉도의 그 산'은 사람 숨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신기한 새들의 소리가 울리는 맑은 곳이었다. 아....또 가보고 싶군!!!!)




가을이 좀 더 깊어지고, 논문 쓰다 머리가 터질 때 쯤엔
브라운박사의 표현에 의하면 "아실아실하지만 재밌는 길"이라는 '비봉' 쪽도 가 볼 생각이다.
또, 소백산도 예쁘다던데 이 곳에도 언젠가 가봐야지.(여긴 봄에 가 볼까?^^)
그리고 올 겨울에 중간발표를 끝내고 나서, 다시 덕유산에도 가 보고 싶다.
마음이 마르고 힘들었을 때, 덕유산은 내게 위로를 주었고, 마음에 따뜻함을 넣어 주었었다.^^
고맙구만. 덕유산+ 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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