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저절로 오겠지만 4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머리를 감고 나서 충분히 말린다고 했는데도, 모자를 쓰고 나가지 않으면 바로 머리가 띵띵거리고 몸이 으슬으슬하다.

겨울엔 왜 이렇게 비실거리는지......
몸이 가뿐하고 정신이 맑은 시간이 깨어 있는 동안 그리 많지 않다.

1월이 비실거림 속에 훅 지나가버렸고, 음력 설이 지났고,
오늘은 음력으론 1월 4일, 양력으론 1월 26일 목요일 새벽이다.

재작년 일기를 보니, 그때도 난 겨울에 비실댔고,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우겠다고 다짐했으며, 외국어를 올해야 말로 끝장을 내겠다고 덤볐고, 뻑쩍지근한 논문을 쓰겠다면서 계획을 세웠다. 어째 나아진 게 없네. 나이만 먹었지.......


초등학생 이후로 쭉 이어져 온 방학 생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방학은 정말 부지런했었고 규칙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아침 7시 30분 수영/ 9시 경-탐구생활 라디오 방송 듣기로 하루를 시작./
              매일매일 해야하는 탐구생활과 저녁에 일기 쓰기, 일주일에 몇 번 피아노학원 가는 것만 빼면 그 외엔 꼭 해야할 일이 없었나보다. 매일 친구들과 놀았나보네. 스케이트 타고, 집에서 간식 먹고......그래서 사는 게 즐거웠구만.

중학교 땐 새벽반 5시 30분, 6시에 시작하는(!) 영어단과(문법 정리반이었나?)를 들으러 21번 버스를 타고 삼성동에 있는 동아학원을 매일 다니기도 했었다. 정말 대단한 청소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그래도 꽤 공부를 했던 것 같은데 재밌었다! 역시 대단한 청소년이었다. 집에서 공부도 했고, 잘 안 될 땐 독서실에도 갔었고. 여튼 공부가 재밌었던 시절.

그때의 내가 과연 지금의 나일까?

고등학교 땐 역시 아침 7시면, 학교 5층에 있는 자율학습실에 가서 공부를 했었고, 도시락을 2개씩 싸서 하루종일 학교에 있었던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면 별로 집중하진 못했던 것 듯하고, 재미도 없었다. 해야 되는 일이니까 한 것뿐. 그나마 친구들이 있었으니 다행이었지, 혼자 그러고 있었으면 지겨워죽지 않았을까.

집중력이 떨어진 시점은 고등학교 때였군! 초, 중, 고1때까지는 재밌게 학교를 다니던 애가 학생이라는 의무감에 공부를 하기 시작한 시점은 고2. 이과반으로 진학하기 시작하였을 때였구만. 그놈의 재미없는 물리와 화학. 정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재밌지는 않았던 지구과학까지!@@

대학교 때는? 그나마 가까이 있던 학생 시절 방학인데도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왜일까.... 과외를 두세 개 했었고, 중국어 학원이나 영어 학원 같은 걸 다녔었고, 딱히 공부를 했던 것 같진 않고, 아...30여 일 유럽여행도 가고, 동아리에서 뮤직캠프도 갔었고, 그거 준비하고 뭐 그랬었군. 아빠 외국에 계실 땐 거기도 가고...주로 놀았었나본데, 별로 패턴화되지도 않고 기억도 잘 안 난다. 뭔 일이 있었지? 매번 방학 땐??? 연애에 집중했었나? 네다섯 시간 아주 작은 문제들 가지고 토론하거나 혹은 싸웠던 기억들. 4학년 땐 대학원 시험 준비 했었던 것 같고...... 모르겠네. 거참. 여튼 분명한 것은, 이때 규칙적으로 일찍 일어나거나, 매일매일이 즐겁거나 기대되진 않았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연구실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일찍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연구가 재미없어서/하고 싶은 게 없어서/그리 기대되는 하루가 아니라서인가보군.
혹은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할 게 너무 많아서.
공부의 양이 너무 많고 쉽게 해결되지 않아서.
고등학교 때처럼 같이 가는 친구가 없어서겠군.

실은 아이디어는 많고, 풀어야 할 숙제거리도 쌓여 있다.
그런데 어떤 방법론으로, 혹은 어떤 베이스를 가지고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 연구가 국어학 쪽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적으니, 노력하기 싫은 것일 수도.(해보지도 않고 비겁하고 얄팍하다.)

같이 가는 학문적 동료. 내 공부의 깊이가 얕으니 이런 얘길 꺼낼 주제도 못 되고...
이 길을 열심히 걸어가다보면 만나겠지.


일단 해 보고 얘기할 것. 2월. 한 달.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가자.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해치우려 하니,
막 덤비다가 금세 풀이 죽고, 힘들어지고, 지겨워지는 거다.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평생 해야 할 공부다.




운동을 아침에 할까 밤에 할까 뭔가를 정해 놓고 하려는 내게,
어무니 왈, '시간 날 때 아무때나'라는 명쾌한 답을 주셨다.

이러쿵저러쿵 머리만 굴리지 말고, 행동해 보는 게 이럴 땐 약이다.
행동이 조금씩 쌓이면 결과물이 나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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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갔던 수요영성클래스에서는, 나의 이런 '사소한 생활 고민'과는 다른 차원의 것을 말하고 있더군. 머리가 더 복잡하고 마음은 답답해진다. 종교란 生과 死를 취급하는 동네라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며 제대로 살아가는 길은 뭐가 이리도 어렵고 험난한지.....
 

영원함,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어떻게?),
영원한 가치를 인식한다는 것.
초월적인 눈을 갖는다는 것. 통찰의 눈을 갖는다는 것.
하늘의 길을 찾고 따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각.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자신만의 예수에 대한 '내적 증거' 혹은 체험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복잡/답답한 게 한 큐에 단순해지겠지 싶기도 하고. 

율법주의자였던 사울이 완전히 그 존재가 바뀌는 데에는,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흘 동안 시력을 잃었다가 회복하는 체험이 있었다.(사도행전 9:1-19)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던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사울이, 예수를 증거하는 바울이 되고, 그리스 아테네까지 가서 예수를 전하고 증거했다는 것은, '그가 미쳤기 때문'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하긴 사람이 어떤 큰 일을 경험하고 나면, 예전의 나와 그 사건 이후의 나는 분명 달라질 수 있으니까.......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꽃 피던 그곳에서 바울은 토론한다. 
오로지 예수를 전하고, 부활을 전하기 위해서.(사도행전17:1-34)


하아-사도행전, 처음으로 자세히 읽어본다.
시오노나나미 책도 같이 읽어봐야겠다.

2012년이 분수령이 되어, 하나님이 내 존재를 바뀌게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도 그렇고, 35년4개월여를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도 그렇고,
2012년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내 모습에 어떤 큰 변화가 생겼으면 하고 원하고 있기도 하다.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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