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5.15 2

양수리에서 쉬었다.


까칠하고 정신없던 머리 속이 정화되는 느낌.
하늘이는 날 보고 반갑다며 뛰어 온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런 하늘이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그 큰 덩치가 펄쩍 안기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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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




작년에 강남 갔던 제비는 올해도 여전히 우리집에 왔다.
'물 찬 제비'라는 말이 백 번 이해되는 제비들의 날렵하고 예쁜 모습.
일부러 지붕 밑의 제비집을 치우지 않은 주인들 덕분에 올해도 제비 한 쌍은 그곳에 터를 잡았다.

엄마랑 아빠는 한참 동안 작년의 그 제비일까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아마 작년에 우리집에서 태어난 그 새끼 제비가 자라서 여기에 온 것일거라는 둥,
제비들이 여기 오기 전 조금 튼실한 정찰병 같은 제비들이 먼저 와서 마을 정찰을 한 후, 다음날 제비들이 몰려왔다는 등....
서울 내기인 우리 부모님은 시골의 이런 것들을 어린 아이처럼 신기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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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 안에 들어온 풍뎅이과의 벌레를 손으로 집어 귀엽다고 말했다.
엄마는 예상했던 대로 벌레는 싫어, 징그러..라고 말했다.

꽃들이 눈 앞, 마당에 가득하고 벌들은 윙윙 거리며, 제비들은 이야기한다.
작은 꽃밭을 만들었다며 엄마가 보여주는데, 아주 조그만 싹이 나 있다.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해바라기는 다른 꽃들에 비해 떡잎이 아주 크시다!

하늘이 목욕 시키기, 털 빗어 주기, 귀 청소해 주기, 하늘이 집-여름 버전으로 바꾸기,
뗄감으로 있던 나무 뒤 켠으로 옮기기, 전정 가위로 잡초 잘라 내기 등 몇 가지 일을 했다.
정원 일은 엄마와 내가, 집 안 청소 설거지 겸 정리는 꼼꼼한 아빠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 자기가 잘 하는 일을 분업화하여 하고 있다.
보통의 집과는 다른 이런 풍경들이 재밌어서 엄마랑 둘이 웃었다. :D

저녁 무렵, 카메라를 귀찮아하는 내가 내 카메라를 안 가지고 온 것을 후회하며,
아빠 캠코더를 꺼내 들고 동네 산책을 나선다.
바람결에 라일락의 달콤한 향기가 스친다. 하나 찍고.
북한강변에 서 있는 싱싱한 나무도 한 장,
전깃줄에 앉아 있는 제비는 세 장,
하늘이는 수도 없이 많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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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니, 꽃사과 나무에 하얀 꽃이 한가득 피어 있다. 이걸 못 본 게 아쉽네.
벚꽃과는 다른 느낌. 아주 작고 예쁜 하얀 꽃들이다. 자두나무의 꽃들도 아주아주 작은 별들처럼 붉고 예뻤다고 하던데......역시 못 봤다.


저녁을 먹는데 고기 집게를 집는 오른팔이 덜덜 떨린다.(사진을 찍을 때도 그랬다.)
푸하하...얼마나 일을 안 했음 이러냐 싶다.@@
난 아마 죽을 때에도 '운동 좀 해야하는데...'라는 멘트를 날리며 저 세상으로 갈 지도 모른다.

엄마가 해 주신 "정말 맛있는 불고기"를  휘리릭 먹고 난 후,
굉장히 빨리 설거지를 해 치운 후,
마당으로 나와 보라는 아빠 말에 나가보니 '샛별'이 떠 있다.

'개밥바라기'- 개 밥을 주고 난 후 바라보면 있다 해서 생긴 별 이름.
별 이름 치고는 재밌다며 아빠가 금성에 심취해서 말씀하신다.
과거에 보내온 빛을 우리가 8시간 후라던가?(뭐 이걸 아빠가 어떻게 계산했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사실 잘 안 들었다.ㅋㅋ)
뭐 하튼 정확한 수치는 듣고도 난 잊어버렸지만 우리는 과거에서 보내온 빛을 보면서 현재라고 말하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게 어떤 구분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난 속으로 절대시제가 아니라 상대시제의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 언어학에서 시제를 3분법으로는 구분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 2분법만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 잠시 혼자 딴 생각.

어렸을 때도 아빠는 내게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그래서인지 자연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아빠의 감정과 나의 감정은 많이 닮아 있다.
아빠의 끊임없는 이야기들을 어느 때부터인가,
아니, 내가 따로 살게 된 후부터 이런 아빠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때론 아빠는 나와 생각이 아주 비슷한 좋은 친구처럼도 느껴진다.
물론 나보다 훨씬 빛나는 생각을 하시지만.
(참고로 올해 금성은 9월 24일에 가장 밝게 빛날 것이란다. 기억해 둬야지...)

하늘에는 별이 있고,
그 하늘을 보면서 아빠는 이야기를 하셨고,
난 아빠 말을 들으며 하늘이 귀와 목을 계속 긁어 주고 있고,
하늘이는 그 커다란 덩치로 내 무릎 위에 올라 앉는다.(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은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
마음이 가볍고 든든하다.=)
건강해진 느낌이다.

내게 하나님은 얼마나 좋은 부모님을 주셨고, 좋은 가정을 주셨는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집'은 얼마나 내게 안정감을 주었던가.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일기 끝!

푸하하~ 간만에 초딩 때 쓰던 일기를 써 본 기분!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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