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춘분, 경칩 등등이 지난 지 한참인데도 오늘 눈이 잠시 내렸다. 2012년 4월 3일이다.

어제 오늘 연일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 깼는데 계속 꿈이었고, 현실인 줄 알았는데 꿈이었던 거라 일어났는데 무진장 피곤했다. 게다가 오늘 꾼 꿈은 예전에도 한번 꿨던, 거의 비슷한 꿈이다. 아..... 

이래저래 망설이다, 시덥지 않은 뉴스를 보다가 예전부터 보고 싶던 <<만추>>를 보았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 좋았다. 일상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도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아니 나의 이야기였다. 

탕웨이의 영화. 이 배우가 아니었다면 한겹한겹 층층이 이런 깊이가 느껴졌을까.

또 감독이 누군지 궁금할 정도로 잘 만든 영화던데......(물론 뒤에서 버스를 같이 타고 가는 장면에서 끝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음), 우리나라 감독이 만들었다는 게 기분 좋을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카메라 앵글이 세련됐더라. 

 

 

비주류들의 이야기.

비주류 중에는 아마도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고 있지만 실은 스스로도 굉장히 피곤한 부류들도 있고(비주류1), 자신만의 행복의 척도에 의해 살아가면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비주류2), 어쨌든 이들의 삶은 외부에서 볼 때는 고단해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뭔가 '보통'(그 실체가 정확히 뭔지 불분명하면서도 뻔하기도 함.)과 다르다는 이유로. 

안타깝게도 난 비주류1에 해당한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살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마냥 살고 있는, 고되기 짝이 없는 비주류 1.

'애가 혼자인 것 같지 않다.' , '아들이 있어야 든든할텐데. 그래도 저런 딸이 있으니 열아들 부럽지 않겠어요.'부터 시작됐지? 아마. 그 후로 '애가 조그마한데 아주 당차요.', '손이 조그만데도 피아노를 칠 때 힘이 있구나.', '넌 재수한 것 같지 않구나. 애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이대 나온 것 같지 않아요. 몰랐어요.', 심지어 얼마 전엔 '참..쟤는 어쩜 저리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표정으로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들은 다들 칭찬이랍시고 하는 얘기들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조건들은 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모두 '부정적'이라는 걸 증명한다.

앞으론 또 어떤 편견에 맞서야 할까. '혼자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구나.' 이 얘기가 마지막으로 남은 걸까. 이렇게 되려고 또 애쓰면서 살아야 하나. 

지친다. 왜 난 꼭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수많은 그들처럼, 그냥 살 수는 없었을까. 모두가 수긍하고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할 만한 배경에서, 누구나 그래 보이는 것처럼. 언제까지 이런 일들은 생길 것이며, 난 언제까지 세상의 편견에 맞서 '그렇지않아요.'라는 걸 증명해가며 바득바득 애쓰며 살아야 하는 걸까.

탕웨이의 말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아니, 뭐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아직도 유치하게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인 척 하면서 실은 남의 눈치 왕창 보며 살아가는 부자유스러운 영혼은 아닌지. 성경에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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