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드디어 새 집이 완성되어 이사를 했다.

아빠가 공들여 지은 '예쁜 집'. 그러고보면 우리 아빠는 참 '예쁜 것'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빠 연배에 '예쁘게'란 단어를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2월 말부터 나와 같이 살던 하늘이는 이제 내일이면 새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학교에서 오면 격렬하게 반가워해 주고,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의자 밑에 조르르 달려와 누워 있고, 침대로 가면 자기도 벌떡 일어나 쫓아오고...... 항상 껌딱지처럼 날 줄줄줄줄 따라다니던 하늘이가 없는 집은 어떨지 걱정이다.

하늘이가 있어서 하던 일을 중단하고 빨리 집에 와야 하기도 했고, 집에는 털이 풀풀 날려 안 하던 걸레질을 해야했고, 쾌적했던 집에 오줌 냄새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늘이와의 이별이 아쉬운 이유는, 그것들을 모두 상쇄할 만큼의 기쁨을 하늘이가 주었기 때문이다. 하늘이는 한결같이 내게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서로를 철썩같이 믿는 사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할수록,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할수록 이별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가 내게 기쁨을 주었다면, 그가 내게 어떤 면으로든 [+좋은 것]을 주었다면 이별하기란 더 싫은 법이다. 사랑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기적인 감정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랑을 이렇게 가볍게 단정지을 수 없는 건, 사랑이란 두 사람의 상호작용 속에서 '함께 만들어간' 감정이기 때문일 거다. 함께 만들어나가고 쌓아나간다는 점에서 사랑은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되는 듯하다. 고로, 일방적인 것은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일 확률이 높지... 외로움의 변이형이거나 의존감의 변이형이거나.

으허헝.... 하늘아, 보고 싶을 거야.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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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끄럽다.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를 누가 저렇게 플랫으로 망쳐놓나 보았더니 '허각'이군.
** 그 전에 불렀던 김범수도 목소리가 너무 뾰족해서 좀 시끄러웠다.
***아까 성시경이 부른 '태양계'란 노래는 누가 만들었는지 재밌고 예쁘게 만들었더군. 예측되는 전개구조였지만 그래도 지겹지 않았다. 성시경은 참, 나이도 많지 않은 게 세상 다 아는 것마냥 잘난 척하는 건 여전해서 밉상이지만, 노랫소리나 목소리는 참 좋다.


꿀맛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는 밤,
지독한 감기에 걸렸으면서
늦게 퇴근하는 아내의 발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젖지 않도록
슬리퍼를 챙겨서 마중나오는 남편.

회식을 마치고 거리를 걷다가 지나치는 악세사리 샵에서
아내에게 어울리겠다 생각하며 귀걸이 세트를 사는 남편.

좀 심하게 감사해서 오늘 귀가길에 혼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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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 보는, 나의 선배의 후배인 듯한 사람네 집.
이 사람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드나든다.

이 사람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신앙이 녹아든 모습도 보기 좋고,
노래를 해서 가끔 올려 놓는 파일들도 재밌다.
이 사람의 직업은 새터민 사업 등 복지 재단 쪽 일을 하는 듯한데, 아주 사명감 있게 힘든 일을 열심히 한다.
이 사람의 친구들 소개도 따뜻하고 솔직하다.


특히 이 사람 글을 엿보다 보면
연애 시절부터 결혼 생활 1년차(?) 정도가 된 지금까지,
뚝배기같이 생긴 남편(그런데 가장 잘 생겼다고 말하는 걸 많이 봤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어떤 날엔 남편 천사를 하늘에서 내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는 글도 봤다.@@ 약간 까칠한--; 난 "사람"이 그렇게 좋은가 싶으면서도 매우 부러웠다.)

오늘 그의 집에 놀러 갔다가 '꿀맛'이라는 글을 보며,
사랑을 주는 그의 남편과 이 사랑을 고맙게 받는 이 사람이 또 한번 부러웠다.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 아닐까.
마음을 주고ㅡ 그 마음의 그릇을 모양 그대로 감사히 받고.

틀에 담겨 있지 않은 것이 마음이기에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키기 일수가 아니던가.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마음 그릇을 선사해 준 사람의 의도 그대로를 읽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그러다 문득 블로그를 닫다가 오버랩된 장면.
 "이거, 우리 아빠잖아!" 하는 거였다.


아빠는 출장을 가면 항상 엄마와 내 선물부터 챙겼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항상 가족 생각을 했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엔 종이에 빼곡하게 편지를 써서 일주일에 한 통은 꼭곡 소식을 전했었다.
마일리지를 아껴서 엄마와 내가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게 해 줬고......


엄마와 내가 '까다로운 이 선생'이라고 아빠의 예민함을 놀리긴 해도,
"(끄덕끄덕)아빠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둘이 쑥덕거리는 이유는
아빠만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_^
모든 판단 기준을 제쳐 놓고서라도.

 

단, 이 남자와 울 아부지와의 차이점은~ㅋㅋㅋ
이 남자는 말수가 없는 편인 듯했고, 주로 행동으로만 묵묵히 보여주는 유형인 듯했다.
울 아부지는 말수와 행동 둘 다 아주 풍부하시기 땜시롱, 엄마는 말을 들으면서 조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 거고.
우히힛~ :D

곧 다가오는 두 분의 33주년 결혼 기념일.
세상에서 제일 예쁜 마누라와 까다로운 이 선생께서 행복하게 사셨음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리고 두 분 다 건강하셔야 한다!



아마도 그 노랫말 속의 이야기들,
정말 사랑을 했건, 사랑을 흉내 내었던 간에
누구나 그런 비슷한 기억 가지고 있겠지.




'사랑'에 관하여
얼마전에 본 '행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더니.
'Once'는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그는, 또 나는 각각 어떤 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그렸을까.





사람들이 '사랑'을 그리워 하는 건,
그 순간 복잡했던 세상은 단순해지고, 순수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만약, '단순함'과 '몰입'을 다른 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사랑에 그리 관심을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띠. 오늘 하루종일 번역서와 한문책을 봤더니 글도 왤케 번역문 같냐.--; 짜증나. 필력 좋은 작가의 글 한 편 읽어야지 영 안 되겠다.)





아주 옛날, '히로시마 내 사랑'을 보며 키득대던 곳.
영화가 시작할 때, 장독대가 보이는 창문 커튼이 닫히면서 또 다른 세상으로 가게 만드는,
동숭 하이퍼텍나다에서 영화를 보았다.
버스를 타러 넓은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털모자를 파는 행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아- 이젠 혼자 영화 안 봐. 절대로.











* 이 영화의 배경인 아일랜드의 더블린은 정말 '딴 나라, 딴 세상'이다.  버스에서도 노래를 할 수 있고, 거리 곳곳에 거리의 악사들이 있고, 대문의 색깔은 선명한 예쁜 파랑, 빨강이고, 음악하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쉽게 대출을 해 주고(!), 체코인들이 살고......실제로도 그럴까? 한번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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