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 주 토요일.
백만 년 만에 걸레질을 하고, 먼지도 털어 내니 버석버석했던 바닥이 뽀송해진다.^__^
좋군!

깨끗해진 환경에서 공부를 두 시간쯤.
몇 페이지 못 나갔다. 흡입력 없고 지루한 논문들에 이내 지친다. 문장들은 한없이 길고, 전개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젠장. 직업이라 그런가....?


오랜만에 쇼팽 발라드를 두 시간 가량 쳤고 녹음도 해 봤다. 소릴 들어보니 영 아니올시다다. 내 마음은 아슈케나지나 파워를 내고 싶을 땐 아르게리히 뺨 치는데, 손가락은 잘 안 움직인다.TT 아슈케나지가 연주한 쇼팽을 들으면서 손가락을 같이 뚱당거렸다. 소름이 쫙 끼친다.
'피가 끓는다'는 은유가 몸으로 체득되는 순간이다. 정말로 차갑던 발이 뜨거워지며 운동을 한 것 마냥 얼굴엔 땀이 난다. 게다가 머리 속은 정말 simple 그 자체. 그 멜로디와 잔영 이외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악보를 따라가면서 쇼팽이 표현하고자 하는 게 읽히고 19세기에 살았던 쇼팽과 대화를 한다! 아슈케나지까지 대화에 동참하게 하니, 그도 나와 쇼팽의 음악을 해석하는 게 거의 같았다!!!! 물론 몇몇 부분에선 나의 해석보다 그의 해석이 훨씬 극적이지만, 그렇게까지 이 부분을 늘이고, 저 부분을 쪼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쇼팽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 연주했을까?  



쇼팽은 극단적으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것도 아주 자유롭게!
저 하늘 위에 있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향하여 몰아 쳐 가다가 드디어 정점에 다달았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형태, 현실성 있는 아름다움으로 돌아와 노래한다. (New age 장르처럼 그럭저럭 무난하여 이내 지루해지는 "아름다움 주변부들"은 취급조차 안 한다. 하하하!)


바하 같은 바로크 음악을 좋아했을 땐, 쇼팽이 참 싫었다. 깡패가 나타나 건드리면 금새 죽어버릴 것 같은 나약함이 싫었고, 듣는 사람을 멜랑꼴리하게 만드는 혼란스러움도 싫었다. 그런데 작년부턴가... 쇼팽에 끌린다. '절대 美'에 대한 이 사람의 집중, '아름다움'이란 추상적 개념을 음표로 극대화하면 이런 형태와 내용이겠거니 싶다.


한바탕 굿을 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가래떡이 있길래 큰 맘 먹고 요리(=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를 해 보려 했다.

고기 다진 것도 사고,
불고기 양념도 해서
'궁중 떡볶이'를 해 먹으려고 작정.
사실 귀찮았지만 나도 '여자 생활인'답게 살아보자 하여 홈에버에 장을 보러 나갔다. 그러나 이런 의지는 식재료비와 푸드코트의 다양한 메뉴+싼 가격 앞에서 꺾이고 말았다.

1인분 만들려고 재료를 사는 값+만드는 시간+설거지 시간+집에 배는 음식 냄새 등을 고려하면 영 남는 장사가 아니다. 게다가 맛도 보장 못하지 않는가. 결국, 푸드 코트에서 시원한 열무 국수와 김치 부침개로 저녁을 해결했다. 3400원.

여러가지로 유용한 다진 마늘 한 봉지, 변비 예방 차원의 파스퇴르 요구르트(3+1, 세일이었다!), 역시 오늘만 세일해서 만 원에 세 팩을 준다는 수제 돈까스+갈비살+햄, 건면 세대 두 개, 내가 좋아하는 오뎅을 사서 집으로 오는 길, 나름 결론을 내렸다.

굳이 집에서 손수 음식을 해 먹어야 제대로 정신이 박힌 '여자 성인인가',
'여자 성인'은 음식하는 걸 어느 정도는 즐겨야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가 하는 의문.
음식 솜씨가 꼭 있어야 하는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앞으로도 쉽게 사 먹을 수 있고, 가격과 맛이 괜찮다면 그냥 바깥을 이용하겠다!
이상하게 요 며칠 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도 이젠 찌개도 끓이고 국도 끓이고 반찬도 후딱후딱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자유로워졌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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