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는 밤,
지독한 감기에 걸렸으면서
늦게 퇴근하는 아내의 발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젖지 않도록
슬리퍼를 챙겨서 마중나오는 남편.

회식을 마치고 거리를 걷다가 지나치는 악세사리 샵에서
아내에게 어울리겠다 생각하며 귀걸이 세트를 사는 남편.

좀 심하게 감사해서 오늘 귀가길에 혼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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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 보는, 나의 선배의 후배인 듯한 사람네 집.
이 사람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드나든다.

이 사람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신앙이 녹아든 모습도 보기 좋고,
노래를 해서 가끔 올려 놓는 파일들도 재밌다.
이 사람의 직업은 새터민 사업 등 복지 재단 쪽 일을 하는 듯한데, 아주 사명감 있게 힘든 일을 열심히 한다.
이 사람의 친구들 소개도 따뜻하고 솔직하다.


특히 이 사람 글을 엿보다 보면
연애 시절부터 결혼 생활 1년차(?) 정도가 된 지금까지,
뚝배기같이 생긴 남편(그런데 가장 잘 생겼다고 말하는 걸 많이 봤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어떤 날엔 남편 천사를 하늘에서 내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는 글도 봤다.@@ 약간 까칠한--; 난 "사람"이 그렇게 좋은가 싶으면서도 매우 부러웠다.)

오늘 그의 집에 놀러 갔다가 '꿀맛'이라는 글을 보며,
사랑을 주는 그의 남편과 이 사랑을 고맙게 받는 이 사람이 또 한번 부러웠다.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 아닐까.
마음을 주고ㅡ 그 마음의 그릇을 모양 그대로 감사히 받고.

틀에 담겨 있지 않은 것이 마음이기에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키기 일수가 아니던가.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마음 그릇을 선사해 준 사람의 의도 그대로를 읽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그러다 문득 블로그를 닫다가 오버랩된 장면.
 "이거, 우리 아빠잖아!" 하는 거였다.


아빠는 출장을 가면 항상 엄마와 내 선물부터 챙겼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항상 가족 생각을 했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엔 종이에 빼곡하게 편지를 써서 일주일에 한 통은 꼭곡 소식을 전했었다.
마일리지를 아껴서 엄마와 내가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게 해 줬고......


엄마와 내가 '까다로운 이 선생'이라고 아빠의 예민함을 놀리긴 해도,
"(끄덕끄덕)아빠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둘이 쑥덕거리는 이유는
아빠만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_^
모든 판단 기준을 제쳐 놓고서라도.

 

단, 이 남자와 울 아부지와의 차이점은~ㅋㅋㅋ
이 남자는 말수가 없는 편인 듯했고, 주로 행동으로만 묵묵히 보여주는 유형인 듯했다.
울 아부지는 말수와 행동 둘 다 아주 풍부하시기 땜시롱, 엄마는 말을 들으면서 조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 거고.
우히힛~ :D

곧 다가오는 두 분의 33주년 결혼 기념일.
세상에서 제일 예쁜 마누라와 까다로운 이 선생께서 행복하게 사셨음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리고 두 분 다 건강하셔야 한다!


우정론

          김현

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작가는 꼬집듯 말하고 있다. 사람의 이기적인 면을 잘 꼬집는 말이지만,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정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말은 빼더라도,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마음놓이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과는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해서, 괜히 담배를 피우거나,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은 말을 계속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해져서, 구태여 의례적인 말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아무 말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해지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는 거북하다. 친구란 아내 비슷하게 서로 곁에 있는 것을 확인만 해도 편해지는 사람이다. 같이 있을 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갈만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런 친구들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내 곁에도 그런 친구들이 서넛 있는데, 그런 친구들의 고마움을 새삼 느낀 뜻 깊은 경험을 지금 나는 하고 있다. 내 친구 중의 하나는 신촌에 있는 여자대학교의 선생(김치수:문학평론가)인데, 얼굴이 시커멓고 몽고추장이라는 괴상한 별명을 갖고 있다. 내가 술병으로 한 일 년을 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켜보던 그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관악산에 등산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 나섰는데, 서울대학교 4.19탑 뒷길을 한 10여 분 걸어가다가 도저히 못 가겠다고 내가 멈춰 서자 그는 한 일이 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앞장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한 한 달 뒤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청계산을 가보자고 하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그의 뒤를 따라 나섰고, 부끄러워라, 무려 다섯 번이나 쉬면서, 지친 노새처럼 헉헉대고 청계산 제1야영지까지 올라갔다. 그는 내가 쉴 때마다 옆에 앉아 5월의 신록이나 산세의 아름다움, 맑은 하늘을 예찬하곤 하였다. 그 다음 주일에도 그가 전화를 걸어 청계산엘 갔는데 이번에는 세 번 쉬고 올라갔고, 그 다음 주일에는 한 번 쉬고 올라갔다. 그 다음 주일부터는 조금씩 걷는 길이가 길어졌고, 한 두 시간쯤 걷게 되자, 다른 산 구경을 하자면서, 그는 나를 북한산으로 데려갔다. 이제는 다섯, 여섯 시간 정도는 산길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튼튼해졌지만, 오 분만 쉬지 않고 걸어도 구식 증기기관차 같아지는 내 숨소리를, 참고 듣고 이런 험한 길로 나를 데려온 놈이 어떤 놈이냐는 호령 소리를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다 받고서 그냥 빙긋 웃어버리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일요일마다 산행을 하면서 그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숨이 가빠서 그런 것이지만, 숨이 별로 가쁘지 않은 요즘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아침 7시에 만나 별말 없이 산길을 걷는다. 그가 쉬자고 하면, 어느 틈엔지 숨이 목까지 차 있다. 그는 참외나 사과, 배를 깎아 반쪽을 나에게 준다. 그는 어린애 달래듯, 이젠 잘 걷는데 라고 말한다. 거의 매번 되풀이되는 칭찬이다. 혹시 내가 이제 못 하겠다 하고 나자빠질까봐 하는 소리다.

 육 개월을 넘기니까, 이제는 식욕도 좋아지고, 겁나는 일이지만, 다시 술 맛도 난다. “내가 자네 때문에 술병이 거의 나은 것 같네”라고 말하면 “내년 가을에는 설악산에 데려다줄게”라고 대답한다. 알랑방귀뀌지 말라는 말일 게다. 그는 매주일 나를 데리고 산엘 가는데, 이제는 그 친구가 갑자기 ‘이제부터는 혼자 다니게’라고 말하지나 않을까 겁난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빌어 “그런 나쁜 짓을 하면 못 쓰네” 하고 그를 타이르고 있는 중이다.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놀랍다.



<문제>

친구란? 우정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300자 내외로 정리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2007년 11월30일 글쓰기(논술교실)교실.


'참 좋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 그게 친구고
아,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라고 느끼는 것이 우정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그 사람이 찾아 왔을 때
마치 그 사람을 기다렸다는 식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이지희 학생/서종중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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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들은 참 좋겠다.
김현 씨의 글을 14살에 접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아빠가 보던 저 책을 언젠가 옆에서 봤던 때가 떠올랐다.
날카로운 생각과 글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


양수리에서 쉬었다.


까칠하고 정신없던 머리 속이 정화되는 느낌.
하늘이는 날 보고 반갑다며 뛰어 온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런 하늘이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그 큰 덩치가 펄쩍 안기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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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




작년에 강남 갔던 제비는 올해도 여전히 우리집에 왔다.
'물 찬 제비'라는 말이 백 번 이해되는 제비들의 날렵하고 예쁜 모습.
일부러 지붕 밑의 제비집을 치우지 않은 주인들 덕분에 올해도 제비 한 쌍은 그곳에 터를 잡았다.

엄마랑 아빠는 한참 동안 작년의 그 제비일까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아마 작년에 우리집에서 태어난 그 새끼 제비가 자라서 여기에 온 것일거라는 둥,
제비들이 여기 오기 전 조금 튼실한 정찰병 같은 제비들이 먼저 와서 마을 정찰을 한 후, 다음날 제비들이 몰려왔다는 등....
서울 내기인 우리 부모님은 시골의 이런 것들을 어린 아이처럼 신기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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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 안에 들어온 풍뎅이과의 벌레를 손으로 집어 귀엽다고 말했다.
엄마는 예상했던 대로 벌레는 싫어, 징그러..라고 말했다.

꽃들이 눈 앞, 마당에 가득하고 벌들은 윙윙 거리며, 제비들은 이야기한다.
작은 꽃밭을 만들었다며 엄마가 보여주는데, 아주 조그만 싹이 나 있다.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해바라기는 다른 꽃들에 비해 떡잎이 아주 크시다!

하늘이 목욕 시키기, 털 빗어 주기, 귀 청소해 주기, 하늘이 집-여름 버전으로 바꾸기,
뗄감으로 있던 나무 뒤 켠으로 옮기기, 전정 가위로 잡초 잘라 내기 등 몇 가지 일을 했다.
정원 일은 엄마와 내가, 집 안 청소 설거지 겸 정리는 꼼꼼한 아빠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 자기가 잘 하는 일을 분업화하여 하고 있다.
보통의 집과는 다른 이런 풍경들이 재밌어서 엄마랑 둘이 웃었다. :D

저녁 무렵, 카메라를 귀찮아하는 내가 내 카메라를 안 가지고 온 것을 후회하며,
아빠 캠코더를 꺼내 들고 동네 산책을 나선다.
바람결에 라일락의 달콤한 향기가 스친다. 하나 찍고.
북한강변에 서 있는 싱싱한 나무도 한 장,
전깃줄에 앉아 있는 제비는 세 장,
하늘이는 수도 없이 많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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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니, 꽃사과 나무에 하얀 꽃이 한가득 피어 있다. 이걸 못 본 게 아쉽네.
벚꽃과는 다른 느낌. 아주 작고 예쁜 하얀 꽃들이다. 자두나무의 꽃들도 아주아주 작은 별들처럼 붉고 예뻤다고 하던데......역시 못 봤다.


저녁을 먹는데 고기 집게를 집는 오른팔이 덜덜 떨린다.(사진을 찍을 때도 그랬다.)
푸하하...얼마나 일을 안 했음 이러냐 싶다.@@
난 아마 죽을 때에도 '운동 좀 해야하는데...'라는 멘트를 날리며 저 세상으로 갈 지도 모른다.

엄마가 해 주신 "정말 맛있는 불고기"를  휘리릭 먹고 난 후,
굉장히 빨리 설거지를 해 치운 후,
마당으로 나와 보라는 아빠 말에 나가보니 '샛별'이 떠 있다.

'개밥바라기'- 개 밥을 주고 난 후 바라보면 있다 해서 생긴 별 이름.
별 이름 치고는 재밌다며 아빠가 금성에 심취해서 말씀하신다.
과거에 보내온 빛을 우리가 8시간 후라던가?(뭐 이걸 아빠가 어떻게 계산했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사실 잘 안 들었다.ㅋㅋ)
뭐 하튼 정확한 수치는 듣고도 난 잊어버렸지만 우리는 과거에서 보내온 빛을 보면서 현재라고 말하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게 어떤 구분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난 속으로 절대시제가 아니라 상대시제의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 언어학에서 시제를 3분법으로는 구분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 2분법만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 잠시 혼자 딴 생각.

어렸을 때도 아빠는 내게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그래서인지 자연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아빠의 감정과 나의 감정은 많이 닮아 있다.
아빠의 끊임없는 이야기들을 어느 때부터인가,
아니, 내가 따로 살게 된 후부터 이런 아빠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때론 아빠는 나와 생각이 아주 비슷한 좋은 친구처럼도 느껴진다.
물론 나보다 훨씬 빛나는 생각을 하시지만.
(참고로 올해 금성은 9월 24일에 가장 밝게 빛날 것이란다. 기억해 둬야지...)

하늘에는 별이 있고,
그 하늘을 보면서 아빠는 이야기를 하셨고,
난 아빠 말을 들으며 하늘이 귀와 목을 계속 긁어 주고 있고,
하늘이는 그 커다란 덩치로 내 무릎 위에 올라 앉는다.(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은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
마음이 가볍고 든든하다.=)
건강해진 느낌이다.

내게 하나님은 얼마나 좋은 부모님을 주셨고, 좋은 가정을 주셨는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집'은 얼마나 내게 안정감을 주었던가.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일기 끝!

푸하하~ 간만에 초딩 때 쓰던 일기를 써 본 기분!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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