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J와의 신경전이 좀 피곤하다. 이 아이는 상당히 여자 아이들의 특성(?)을 꽤 많이 가지고 있어서, 나를 좀 짜증나게 만드는 게 있다. 예컨대 내가 가진 것보다 친구들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인싸인 아이를 따라하고 싶은 것, 그룹을 지어서 노는 것, 말투에 예민한 것, 씩씩하지 못한 것, 헤어스타일, 옷 등에 관심이 많은 것.

쓰다보니 나도 그런 면이 없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면 난 "그런" 건 감추거나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중성화를 요구받으며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에 외동딸로 태어난 나는 사회로부터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 하나가 되어야 했다.초,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러기 위해서 남자 아이들이 가진 무덤덤함이나 듬직함, 벌레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함 따위를 부모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무거운 짐이 있어도 번쩍 번쩍 들며 무겁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일곱 살인 내 딸은 본성 그대로 크고 있는데, 이 아이의 섬세한 결을 따라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부인 디스 전문가인 남편 말에 따르면, 나는 감각에는 매우 예민하지만 상대방에게 섬세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아이에게 무한 사랑을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말. 이 말에 부담감을 좀 내려놓으려 노력하고는 있는데, 무한 사랑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반성을 하자면, 내가 피곤에 찌들고, 하는 일이 안 될 때,,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때 난 재이에게 어른한테 하듯 지나치게 차갑게 말한다. 감정은 배제되어 있고, 모든 선택과 책임은 네가 지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주는 것인데..사실 이건 너무한 화법이다. 아직 일곱살, 만 나이로 6년 2개월밖에 안 산 어린 아이에게 뭘 하자는 건가. 하아-

육아는 내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도전이다. 타인에 대한 무한한 관심, 양보, 배려, 희생.-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연습하고 훈련해야 되는 것들. 아이가 없었으면 저 키워드에 그닥 관심없이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을거다. 아이에게 감사해야 됨.

 

*난 여전히, 이 세상에는 아이를 키우는 데 적합한 유형의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 당연히 후자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에다가, 아이를 키우는 행복감들에 큰 기쁨이나 의미를 찾는 유형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인간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과 좋은 엄마를 주셔서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게 하셨다.

아이 컨디션에 따라 내 생활이 묻혀서 가고 있을 때, 도무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아직도, 가끔 상상한다. 만약에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좀 더 예측가능하고, 계획적이고, 구조적으로, 루틴하게, 내 본성대로 살 수 있었겠지......   이것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우리 딸이 만약 나중에 "엄마 결혼을 해야할까?", "엄마, 아이를 낳아야 할까?"라고 묻는 일이 생긴다면, "안 해도 되고, 안 낳아도 된다"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자세한 근거 제시와 함께! (그런데 J는 벌써부터 자기는 꼭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는 딸 둘을 낳을 거라고 한다....Ha!)

 

8월 초부터 쏟아져내리던 폭우와 폭염이 어제부터 가셨다. 8월 23일 '처서'의 마법. 음력 절기는 좀 잘 배우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영역 같다. 8월 25일, 목요일. 가을이라고 치자. 개강까지  D-8. 옷장 정리도 해 놓고, 발표 준비, 수업 준비도 미리 좀 해 놓을 수 있기를. 한국의 가을을 킁킁, 맘껏 즐겨주려고. 더 늙기 전에 말이다. 물론 우리 딸과 함께!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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