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새해. 첫 날을 맞았다.

12/20일부터 계속되는 J의 방학, 학교 문을 닫는다는 남편의 방학.

한낮 기온은 16도 정도.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오늘 새벽 기침이 다시 시작되었고, 재이도 약간 기침을 한다.

남편은 4년 전, 페북 피드에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며, 여느 날과 다름 없이 하던 일을 하고 있고,

바뀐 것은 나, 우리가 위치한 장소, 우리의 가족 한 명이 더 생겼다는 것.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10시쯤 재이의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북엇국, 밥, 생선, 멸치볶음.

떡국은 한국마트에 안 다녀와 떡이 없어서 패스.

재이에게 한복을 입혀 주니 아주 좋아한다. 새해인사를 남겨 카톡으로 가족들에게 보내고.

요즘 좋아하는 넷플릭스에서 하는 만화영화 두 편을 같이 봤다.

1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고.

피아노도 치고.

날씨가 흐려지고, 난 배가 고프다.

 

문득, 노는 게 지겹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면서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새해 첫날이고, 진짜 기독교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오늘은 오늘대로 잘 보내자.

2시쯤, 남편이 일을 다 끝냈다면서 방에서 나왔다. 

 

처음 가 보는 한국 식당에 가서 남편은 물냉면, 나는 이면수 구이, 재이는 튀김 우동을 시켜 먹었다. 보리차와 겉절이가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H마트에 가서 저녁 때 먹을 떡국 떡, 김치, 홈런볼, 유자청, 잡곡 콩, 포카칩, 부추 한 단, 대파 한 단을 사서 돌아왔다. 아, 맥심 커피 믹스도 작은 걸 하나 사며, 남편과 웃었다. 한국에서도 잘 안 먹던 커피 믹스를 사며, 이렇게 좋아하다니..... 뭘까. 우리에게 쌓여 있는 것들은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요즘 마트 쇼핑을 너무 자주 한다. 오늘도 130불가량이 나왔는데.... 쩝.)

 

차 안에서 잠이 든 재이를 집에 와 눕혔다.

비가 올랑말랑하는 흐린 날씨, 마트에서 사 온 커피 믹스를 타 마시며, 재이가 잠든 틈을 타 '동백이' 8회를 시청.

한 회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재이가 '이게 뭐야..' 약간 짜증이 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자고 일어났는데, 이미 어두워져 있고, 엄마 아빠는 옆에 없으니 기분이 나빴단다. (내 생각엔... 요즘 낮잠을 극혐하는 세 살 반짜리 아이는, 엄마, 아빠랑 더 놀아야 하는데 잠이 든 게 내심 분해서 저런 듯)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었던 우리는 저녁은 또 못 먹겠고, 결국 저녁 메뉴인 떡국은 재이만을 위해 끓였다. 마침 딱 그만큼의 육수가 있었고. 육전을 몇 점 부쳤는데, 나는 2점+와인 조금, 재이는 2점, 남편도 3점+와인 조금을 먹었다.

 

재이가 하고 싶다던 윷놀이를 세 판 했다. (술이 약해진 남편은 술 못 마시는 여자애처럼 조금만 마셔도 잠에 빠진다. )

자기 전에 읽고 싶은 책 세 권을 읽어줬고. 그동안 남편은 설거지를 했다.

이를 닦이고, 세수를 씻기고, 자려고 하니 갑자기 계란프라이가 먹고 싶다는 아이. 요즘 계란프라이 전문은 아빠라며, 이상한 놀이에 빠져 있는데...그냥 아빠랑 더 놀고 싶어서 그런건지. 여하튼 아빠 다시 소환. 그러다가 냉장고에 손가락을 살짝 찝혀서 꺼이꺼이 울고. 아....밤 10시30분.

 

약을 바르고, 계란프라이를 먹고, 우유를 조금 마시고 잠. 

아...밤 11시10분.

나도 같이 누워 있다가 잠이 들어 깨니 새벽 1시.

 

아-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어.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실에서 책을 보고,(여기서 중요한 건, '연구실에서'다. 난 집과 격리된 오피스가 갖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싶다... 아, 동료들도 그립다. 아이를 통해 알게 되는 엄마들 말고 공적인 자아로 만난 동료들.

 

 

새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

엄마는 아이가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이 되면, 그때부터 좀 숨통이 트인다고 했었지.

아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다섯 살. 그러나 만으론 세 살 반.

 

3년 반이었다. 폭신하게 잠을 쭉 못 잔 게.

난 아직도 아이를 재우면서 옆에서 구겨져 잠이 들고, 중간에 깨어 내 침대로 기어올라가는 생활 중이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점점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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