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같은 방 선생님인 J와 1시간 가량 점심을 먹는다. 4시간 연강을 마치고 난 뒤, 나는 녹초가 되어 미역처럼 축 쳐져 있는데 반해, J는 여전히 에너지를 가지고, 두꺼운 입술을 열어 굉장히 빠르게 많은 말을 한다.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꽤나 흥미진진하고, 게다가 솔직한 이야기들이라 재미있게 듣는 편이다.

 

지난주 J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가족사에 이어, 이번주에는 성격과 가치관(?)에 대해 이 얘기 저 얘기를 해 주었다. 약간 살집이 있는, 뚱뚱한 편인 사람에게 갖는 편견-아마 느긋할 것이다, 안달복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심할 것이다,세상에 대해 겁이 많을 것이다, 많이 먹을 것이다-은 이 선생님의 경우 아주 잘 드러맞는 편이다. 그리고 싱글인 여성에 대한 편견-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게 많아서 심심한 일이 드물고, 자기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며, 어머니와 사이가 좋다.- 역시 적중하였다.

 

학교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국문과라는 곳의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비슷한 연령 대이기 때문인지 현재 생각하고 있는 범주가 비슷하고, 거의 유사한 지점에 서 있어서 말이 잘 통하는 편인데, 오늘 얘기 도중 J와 나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했다.

 

J는 이 세상에는 자신이 모르는 게 많아서 궁금한 것도 정말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아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삶에 그리 불만도 없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어느 나라에 살든, 싱글이든 아니든, 자신의 아버지가 문제를 일으키든 그렇지 않든 어느 누구나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든, 누구든 사람 사는 것이야 희로애락을 겪는다는 점에서 거기서 거기다라는 생각. 수백 년 전에 인간들이 했던 고민이나 현대의 인물들이 겪는 이야기나 통시적 관점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였다.(고전, 역사 쪽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그런 듯.)-이 사람의 얘기에 어떤 측면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반면 나는 이상하게도 세상에 대해 그리 호기심도 없고, 오지랍을 넓혀서 세상만사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 오래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그때까지 이왕 태어난 거 최선을 다해, 바른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니 꽤나 피곤하겠군...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또 현재 나의 삶의 방식이나 환경에도 불만이 있는 편인데, 누구나 한 번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은 같지만, '삶의 질에는 차이가 있다'는 대전제가 내 머릿속에 담겨 있기 때문인 듯하다. 좀 더 인간답게, 좀 더 사랑이 많고 평안한 삶을 누리는-크리스찬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 예컨대 핀란드에 살면, 대한민국에 사는 것과는 다른,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거야라는 기대라든가, 3대가 독실한 기독교인인 집에서 자란 친구를 보면서 그들 가족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긍정적이고 맑은 삶'의 모습을 동경한다든가 하는.......

 

'인간은 잘났든 못났든, 부자든 빈자이든, 한국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누구나 태어나서 먹고 싸고, 사랑하고 싸우고 고민하고, 그러다 죽는 것은 같다.'라는 전제와 '인간이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가느냐는 천지차이다.'라는 전제.

 

'죽음은 두렵지만, 윤회해서 다시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와 '죽음, 두렵지 않아, 왜냐하면 영생이 있으니까. 영생을 누리는 세계에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육을 벗어난, 새로운 '극락세상'이 열릴테니까.'라는 전제.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한 방에서 살아가는 J와 나는, 그 표면형에서도 차이가 난다. 나는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세상이 변화하길 원하며,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내가 그 변화를 주도하기를 원한다. 반면 그는 시간이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아주 느긋해 보인다. 이 세상은 죽어도(?) 혹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작게는 학교의 일도, 더 작게는 가정의 일도) 자신이 그 변화에 참여하려는 욕구도 적다(어차피 변하지 않으니까). 

 

뭔가 모순되는 상황,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낙천적이라고 봐야 하고, 누구를 염세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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