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 창조력. 창의성.

우뇌-감정과 감성의 시대. 이런 힘이 곧 경제력과 직결될 수 있는 시대.

교조적, 교리적..강요된 가치들과 반대의 개념.

나태함/ 근면함/ 자유함.

근면 성실함이 획일적인 일, 규범적인 일들을 모범적으로 잘 하는 사람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일을 기획하는 등 창조성이 필요한 일을 하려면 그 영혼에 자유함이 있어야 한다.
자유함-어디로부터? 자연의 리듬을 따르고, 그것을 느끼는 감수성이 살아 있어야 가능함.

-영성 클래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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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연 중, 학생들에게 자신을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최상의 상품으로 만들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을 공부해야 하고, 이것을 알아야하고,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봐야하고, 이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던지....... 부끄러웠다. 반성했다.

또한 내 스스로도 학계라는 공간을 '시장'으로 보고, 이 시장에서 나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논문을 쓰면 어떨까, 이런 곳에서 발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얍실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지...... 회개했다.


매일매일을,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아가리.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마음과 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위로를 받을 것이다."


  슬플 때 마음 놓고 슬퍼하고, 기쁠 때 마음 놓고 기뻐하는 삶.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고, 자유함을 얻는 길임을 배웠다.

  슬픔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기쁠 때에는 그 이상을 더 바라거나 하지 않고 자체를 기뻐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대장부처럼 받아들이는 힘.

  이러한 힘은 회피하는 것보다 강한 힘이다.

  이러한 힘이 있을 때 매사에 자유하게 된다.

 

  슬픔과 기쁨은 4계절이 있는 것처럼 인생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인데,
 
  우리는 한 쪽에만 촛점을 맞추곤 한다. 일종의 편식을 하는 셈.

  편식하지 마라.

  슬픔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럴 때, 삶을 "실컷" 살 수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연연하는 것은 내 내면의 약함 때문임을 알았다.

  이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처럼 '고독'과 '기도'와 '쉼'을 즐기는 것.

  이 기쁨을 아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찬이다.

  이럴 때 나는 내 주변을 맴도는 내가 아니라 내 자신을 만난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의 행동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 옛날, 그 정도의 따르는 인파와 능력을 행한 후라면  하나의 정당을 세우고도 남았을 것인데,

   예수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셨다.

마태 14장
모두를 보내고 홀로 계셨다.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제촉하여 배에 태워서,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

 무리를 헤쳐 보내신 뒤에, 예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날이 이미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홀로 거기에 계셨다
."(막 6:45-52, 요 6:15-21)


세상에서 벗어난 쉼과 고독과 기도!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충만함으로,
 
날이 저물때까지 홀로 산에 계셨다.

홀로.

<수요 영성 클래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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