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가 쏟아질 때면, 예전에 801호에 살던 영나네 아빠 공장 얘기가 생각난다.

그때 장마로 아저씨네 공장이 다 물에 차서 새로 산 기계가 망가졌다는 얘길 들었었다.

이게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장비 같던 아저씨와 노사연을 닮은, 씩씩했던 아줌마가 얼굴이 반쪽이 된 모

습도 떠오른다.

또 더 어릴 때 희미한 기억으로, 아빠 회사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비가 쏟아 붓던 날, 아

빠가 전화를 받고서 다급하게 뛰어 나가던 장면도 생각이 나고.......

그래서인지 이렇게 비가 쏟아부으면,  '의정부에 있는 공장들'-'공장의 사장'-'그 가정의 식구들'이 순차적으로 연

상이 되고, 힘든 사람들, 더 힘들겠군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농사꾼의 자식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방 여사 언

니는 분명 농사 걱정을 했을 것 같다.ㅎㅎ)





7월 한 달, 논문 진행과 관련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했는데,

요즘 일주일 여간 몸이 안 좋기도 했고, 게으른 습관도 버리질 못했다.

벌써 7월이 다 가고 있네......



이거 괜찮겠다 싶게 영감을 주는 날이 며칠은 있었고,

그 중 하루가 오늘이었다.



오늘 스터디에서 deixis에 대해 J 선생님을 모시고 특강을 들었다.

좋은 스승이 두 분이나 계신데다가,

벌려져 있고 모호하던 각각의 개념들을 정밀한 정의와 기준을 세운 후, 체계화시키는 작업이 즐거웠다.



독어과 선생님들과의 스터디는 국문과 선생님들과 갖는 자리와는 분위기가 참 다르다.

공부해 온 분위기의 차이일까? 아니면 알고 있는 지식의 깊이 차이?

독어과 선생님들은 나를 비롯한 학생들을 함께 공부해 나가는 동료로 생각하고, 충분히 우리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무조건 확실하고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이런 연배, 혹은 이런 위치에
계신 국문과 선생님들을 모시고 하는 세미나였다면, 우리들은 입도 뻥긋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그들의 윽박지름에

서 나오는 포쓰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특히 P선생님께 배울점은 "투명한 적극성"이다.

선생님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배우는 자리엔 배우는 대상만 있을 뿐, 그 외의 겉치레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들, 못난 학자들이 할 말 없을

때 학회에서 일삼는 짓(괜히 다른 사람 말에 딴지를 걸거나 주된 논지가 아닌 부수적인 것을 걸고 넘어지는 일 따

위)은 찾아볼 수 없다.

(회의나 뭔가 공적인 스터디에서 때로 나는 불투명한 적극성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내가 어려운 것을 잘 이해했

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말을 꺼낸다든가 하는 게 대표적이었다.-_-; 다시는 이러 짓은 하지 말아야지.)






독립된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각 개념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제대로 공부를 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석사논문 쓸 때도 느꼈던 것인데, 요즘 다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니 난 또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양태-서법-종결어미-정보성-통시적 접근까지 손을 대다가 결국 양태 중에서도 네 가지 항목만을 잡아
 
석사논문을 썼다는 걸 기억하자. 일단 박사논문에서는 길을 열어 놓는 작업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차차 한
 
가지씩 해 내가면 된다. 앞으로 공부할 거리들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으니 갈 길이 구만리지만, 한편으론 전자레인

지를 놓아 둔 장 속에 먹을거리가 가득차 있을 때, 열어 보고 좋아했던 것 마냥 흐뭇함과 비스무리한 기분이 든다.





흠- 내가 참 길은 잘 선택했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