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곱슬머리에 역삼각형의 얼굴, 쌍꺼풀이 없는 좁다란 눈과 언제든지 표정을 바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얄팍한 입술. 전형적인 중간 간부의 야비한 자신감과 이유 없는 대담성과 구질구질한 변명의 표정이 정확히 삼분의 일씩 나뉘어 있는 얼굴이다.

 



어차피 인생에 더 나은 것 따위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단지 더 모르는 것에 끌릴 뿐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없어질수록 삶의 열정도 사라져간다.

-전경린(2004), '바다엔 젖은 가방들이 떠다닌다', <<물의 정거장>>, 문학동네.



중계도서관에 갔다가 소설책을 열심히 읽는 아줌마들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아니면 도서관 대출증을 만든 기념에서인지 책 한 권을 빌려 오고 싶었다.
한 자라도 논문과 관련된 참고문헌을 더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전경린 씨는 뭉뜽그려 있어서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으나 느끼며 살고 있던 여러가지 감정들과 마음, 그리고 생각의 과정들을 정확한 단어 선택과 자연스러운 표현들로 내게 보여주었다. 하도 적나라해서 지하철에서 읽는 내내 내 마음과 생각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아 괜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슬쩍 보기도 했고, 비밀 일기를 쓰는 양 책을 내 쪽으로 당겨 읽기도 했다.




아- 소설은 정말 이런 맛에 읽는다!
소설가들은 정말 대단해!
이런 걸 통찰력이라고 하는 거겠지?



*사족: 훌륭한 input이 들어가면 output은 따라 나오는 것 같다. '훌륭한 input'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만들어 내며 닫혀 있던 사고의 범위를 탁 트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쓰기의 스킬을 가르치는 건 그 다음의 일...
그렇다면, 내가 소논문들을 읽어도 별 output이 안 나오는 이유는? 그 논문들이 '훌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순 남의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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