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 쓰면 한 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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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 한 편을 아빠가 공들여 작업하시는 '서종사랑 제7호' 첫 페이지에서 보았다.

어떤 이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자, 가장 나를 외롭게 한 사람이라는 건,
꼭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부재 따위의 비극적인 상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답고 알싸한 감정.



그나 저나 올해 가을은 참 아름답다.
창경궁의 단풍도, 우리집 앞 공원의 단풍도, 교정 내의 단풍도.
요즘 단풍은 정말 최고!


얘들이 가기 전에 꼭 사진에 담아 놔야겠어.
주말엔 하늘이랑 수입초등학교 놀러 가서, 낙엽 떨어진 곳으로 막 뛰어다녀야지!^____^

이젠 종이에는 일기를 못 쓰겠다. 머리 속에서 와글 거리는 것을 글씨 쓰는 속도가 못 따라가니 그게 답답한 거다.

나도 잘 돌아보지 않는 이런 끄적거림을 이렇게 만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참 웃기는 일인데...

사실 결심했었다. 이젠 블로그는 앨범으로만 활용해야지.

디카로 찍은 걸 현상하기란 귀찮은 일이니까, 여기다 잘 보관해 둬야지.

그리고 정말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만 글로 올려야지.

그리고, 그리고,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내 자식이 볼 수 있게 해야지.

(지금 딱 빌리조엘의 And so it goes를 들려 주고 싶은데, file로 해 놓은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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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가부터 항상 내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을 생각한다.

그 아이가 겪게 될 여러가지 생각, 방황, 경험들을 내가 먼저 보여주고 싶고, 해답을 주고 싶은 거다.

인간은 워낙 case by case라서 물론 나와 다른 종자가 나올 수 있지만, 유전의 법칙이 어디 가랴.

분명 나의 성향을 반은 닮은 애가 이 세상에 나올테니까,

자기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해 주고 싶다.

아, 이러 생각을 했던 게 나만 그러 건 아니었구나.

우리 엄마도 이 나이 때, 그랬구나.

그러면서 위로를 받았음 좋겠다.

나의 아이를 생각하면 난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

어린 것이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쌓아가야 하니.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는 가슴 아픈 일이다.

게다가 이 페이스대로라면 난 꽤나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게 될텐데, 아마도 내가 60살 쯤 되면 아이는 아직 서른도 안 됐을 나이고, 난 너무 일찍 죽는다. 그 아이가 안정기의 성인(내 생각에 마흔)이 되기 전에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난 운동도 전혀 안 하고 있으니...... 애랑 놀아줄 기운이 없을 지도 모른다.

내 나이 서른 둘.(아직 만으로는 서른!!) 아부지는 쉰 아홉, 어무니는 쉰 여덟. 게다가 우리 아부지는 청년 정신의 소유자로써 나보다 훨씬 쌩쌩한 정신력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어무니는 노친네 냄새와는 거리가 먼 cool한 분으로써 빼어난 미모와 행동력을 자랑한다. 나의 걸음걸이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고 민첩한 몸놀림까지 갖추고 있으니..... 난 이렇게 부모 복이 많은데 내 애는 참 불쌍하다.TT

그러나, 얘야.
난 너에게 줄 것들을 열심히 준비 중이다. 나중에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을 찾고 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줄게. 또 공부도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이라든가, 연애할 때 진실로 중요한 것이라든가, 좋은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법이라든가, 쓸데없는 고민을 줄이는 법 등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싶구나. 또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뭐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우리의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음악들과 영화와 책들도 소개해 줄게. 책 뒤엔 내가 끄적끄적 해 놓은 흔적들이 있고, 너의 할아버지가 죽죽 줄을 치며 옆에 쓴 메모도 있으니까 넌 무지 재미나게 볼 수 있을거다. 또 합창의 즐거움이라든가 피아노를 재밌게 치는 것도 가르쳐 줄게. 또...이 세상의 수많은 언어들과 특성에 대해서도 소개해 줄게. 네가 관심을 보인다면 말이지.그리고 넌 할머니가 그린 그림들을 감상할 수도 있고, 할머니에게 그림을 배울 수도 있는 행운아란다!=)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절대 시키지 않을 거야. 난 너에게 이런 것들도 세상에 있다는 것을 다양하게 소개만 해 줄 생각이다.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고 건강한 영혼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말이지. 사실 엄마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은 아직 못 되었단다. 날 억압하고 있는 것들도 꽤 많고(어릴 때부터 그랬어. 내가 자랄 땐 한국이란 사회가 좀 획일적이었거든.) 난 아직도 불안정한 편이야. 하지만 노력하고 있지. 계속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그렇다고 하는 것들에 따라가지 않고 좀 더 의미있게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알려고 노력 중이야. 그리고 아마 너와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쯤이면 꽤나 그 방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원래 서른 하나에 너를 만날 계획이었는데, 흠 어찌어찌하여 널 만날 시간이 늦어지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계획이 늦어진 건 너나 나를 위해 잘 된 일이야. 뭐든 아무 준비 없이 사건만 일어나다보면 호되게 깨지고 부딪히고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거든. 사람들은 그 부딪히는 시간이 뭐 자산이 된다고들 하지만, 위로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면이 더 강하고, 깨지는만큼 상처들이 남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충분히 마음의 준비, 생각의 준비를 하는 건 필요하단다. 일도 그렇지만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말이지.

난 너와 나의 멋진 관계를 기대한다.
나중에 네가 한글을 읽을 줄 알게 되서 이걸 보면 참 재밌겠다.^^ 비룡소에서 나오는 그 수많은 그림책들을 얼른 같이 읽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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