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석과 함께 병원에 갔다.

사람이 무척 많아서 30분 정도를 기다렸고(임산부들은 연휴가 있어도 어디를 안 가나보다.),

초음파로 해님이 머리 모양을 봤고, 심장 박동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양수의 양도 적당하다는 말을 듣고 왔다. 

내 체구가 작은 편이고, 배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그리 나온 게 아닌 것 같아서 양수의 양이 부족하면 어쩌나 약간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이 말을 듣고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진료 시간은 다 합쳐서 1분 정도?

해님이가 아무 문제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다행이지만,(해님이는 약 2.4kg 정도라고 한다.// 반면 난 임신 전보다 10kg이 늘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진료 시간은 너무 짧아서 약간 허탈? 허무한 채 우석과 나왔다.

 

 

다다음 주부터는 내진을 하고, 분만에 대해 얘기하게 될 거라고 한다.

여건이 된다면 자연 분만을 할 생각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제왕절개를 해야겠지.

출산이라는 게 순리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싶다.

하나님이 여성을 창조하실 때, 다 알아서 장치를 해놨겠지 싶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골반 벌리기나 요가, 호흡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연습해 놓아야겠다.

'노산'에 해당하긴 하지만,

그만큼 정신력이라든지 마인드컨트롤 같은 능력은 나이에 비례하는 거니까...

침착하게만 하면 출산도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병원 방문은 좀 허무했지만,

남산 공원에 가서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초록으로 가득한 5월을 봤고, 기분 좋은 햇빛과 바람을 쐬며 걸었다.

공기에 실려 있는 꽃 향기도 맡고.

점심을 먹으면서, 우석과 부모님도 한번 모시고 오면 좋을 것 같고, 나중에 우리 해님이와도 종종 오자는 얘기를 했다.

 

 

특히 공부와 일로 지쳐 있는 우석에게 병원에 매번 같이 가자고 하는 게 마음 한 편으로는 좀 미안한 감이 있었는데(머리로는 전혀 미안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석도 이 장소를 마음에 들어 했고, 기분 전환도 된 것 같아서 좋았다.

그가 행복하고 좀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과 일에 쫓기면서도 잘 내색하지 않고 나와 해님이, 양가 부모님,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우석에게 고맙다.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린 결정적인 계기는,

이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옆에 있으면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나 모르겠다.

좀 더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이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우석과 해님)을 위해,

좀 더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좋은 인간이 되게 해 주세요.'-평생의 기도 제목이다.

 

 

 

+종합비타민(임신 후기용)과 칼슘제를 샀음. 68000원. 진료비 약 9만 원.

 - 쏠쏠히,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걸 보며,

   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뭐 이런 생각도 잠시 했다.

 

 

<33주 1일> 임신 9개월이 시작됨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았다.

주수가 바뀔 때마다 확실히 몸에 변화가 온다. 새로운 증상도 생긴다.

33주차.

몸이 더 무거워져서인지, 쉽게 피곤해지고 잠이 쏟아진다.

 

어제는 저녁 준비를 하는데, 4~50분가량 서 있으니 허리가 너무 아프고,

식사 후에는 뒷정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오늘도 하루종일 내내 몸이 휘저어져서, 안 되겠다 싶어서 요가를 다녀왔는데

운동 조금 했다고 또 잠이 쏟아진다.

오늘 하루 종일 쪽잠을 두 번이나 잤다.

 

 

4월 30일까지 마감인 논문은 또 글렀네.

논문 하나 못 쓰고 4월이 지나가 버리다니.

뭘 하면서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작년에 비하면, 훨씬 수업이 적은데도 할 일을 제대로 못해 나가고 있다.

 

 

해님이가 태어나면,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시간이 더 많아질텐데,

그 시간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이 얼굴을 보면 분명 행복하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건 분명하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제공해 주는 행복감만으로는 살아가면서 한 구석 공허함을 느끼는 부류라서....

아이나 남편이 주는 행복감으로는 살아가는 의미/재미를 채울 수 없을 게 분명하니까.

해님이가 태어난 후, 논문을 쓰는 건 정말 무리겠지만, 아주 아주 작게라도 뭘 해야될 것 같다. 

 

 

2016. 2. 29.

 

308 연구실을 떠난다.

물리적으로는 이미 지지난 주에 짐을 정리해서 떠나왔으나 마음은 오늘에서야 떠난다.

 

운이 좋게도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로 계속 연구실이 있었는데,

5년만에 집으로 컴백한 셈이다.

 

두 번에 걸쳐 꽤 많아진 책들과 서류더미들을 집으로 옮겼다.

책장도 2개 사서 베란다에 놓은 후 잘 안 보는 책은 모두 그리로 옮겼다.

 

우석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연구실에서 짐 싸고, 옮기고, 풀고, 책장까지 고르고, 조립하고.

그는 지금 정말 물리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48시간이어도 모자를 판인데,

내 작은 바람들, 요구들에 귀 기울여주면서, 균형을 잡아가며 이겨나가고 있다.

가끔 그가 매우 피곤해 보이는데, 마음도 지쳐버릴까봐 걱정이 된다. 내가 좀 더 배려해줘야 하는 시기인데....잘 못해주고 있어서 미안하다.

그나마 그를 위해서 기도는 하고 있는데, 행함이 없는 기도가 무슨 소용일까.

 

 

올해는 해님이가 태어나는 빅이벤트가 기다리고 있고,

아무래도 신생아, 유아일 땐 아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니

집에서 공부하고 짬짬이 일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다.(그래서 어제는 다른 방에 따로 놓고 쓸 '집중용 책상' 하나를 더 샀다.)

 

 

골방에서 혼자 신경질을 팍팍 내며 논문/일을 쓰는 습관이라든가,

마감 일자가 다가와 스퍼트를 내며 공부를 한다든가,

적어도 너댓 시간이 통째로 주어져야 뭔가를 손에 잡고 한다든가 하는 나의 오래된 공부 습관을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선배들, 일하는 아기엄마들처럼 나도 애가 잘 땐 자야할 것이고,

짬짬이, 정말 짬짬이 시간이 날 때를 부리나케 잡아서 집중해 일을 처리해야 할 거다.

할 수 있을까.

아기가 주는 힘으로 가능할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가능할지....

 

 

우석과 나. 두 사람일 때는 많은 것들이 그래도 예측 가능하고 변주 가능했는데,

해님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변수가 너무 많다.

정말 막연하긴 한데, 그렇지만 이 아가의 등장이 굉장히 기대되곤 한다.

막막함과 끝없는 희망의 공존. 아이러니하다.

 

아기를 기다리면서 더욱더 기도하는 마음, 낮아진 마음, 평온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주여, 제게 엄마로서의 담대함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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