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화법 교육의 중요성
  
갑:저 여자 누구야?
을:그건 왜 묻고 그래?
갑:물으면 안돼?
을:누가 안된대?
갑:근데 말이 왜 그래?
을:내 말이 어때서?
갑:몰라서 묻는 거니?
을:그럼 몰라서 묻지, 알면서 묻는 사람도 있어?

  일상 생활에서 벌어질 법한 상황을 설정한 대화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갑’은 얻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다. 한 사람이라도 자존심을 버리고 대화의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더라면 훨씬 생산적인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 묻는 말들이 반복되면 언쟁으로 가고 있는 신호다. 이처럼 의문문이 수 차례 되풀이되면 대화의 목적이 상실되거나 언쟁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보고 대화 방법을 바꾸는 게 좋다. 말을 평서체로 하거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설명을 해주는 게 한 방법이다. 그러나 갑과 을은 이를 피할 방법을 찾지 않고 있다. 평상시에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응대하는 훈련이 안 됐다는 증거다. 화법 교육을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스피치’라 불리는 ‘말하고 듣는’ 생활의 총칭이 화법이다. 뜻이 담긴 말을 택해 소리내는 것이 말하기이고, 소리를 듣고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듣기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올바른 대화를 위해서는 화법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의사 소통 능력 향상과 원만한 인간 관계 형성을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말하기 위주의 언어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국어의 네 영역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서 화법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미흡했다. 교육적 차원에서 보면, 고등학교 과정에서 국어 과목의 말하기·듣기 영역의 심화 과정으로 화법이 정식 과목에 편입된 것은 1995년 제6차 교육 과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그나마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어서 독서나 작문 등 다른 과목에 비해 적게 채택되고, 실제로 수업을 하는 학교는 드물다.
  대학에서의 화법 교육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1962년 ‘국어 화법’이라는 강좌가 개설됐으나, 대다수 대학의 화법 강의 역사는 짧다. 상명대가 1995년 1학기부터 학부생을 대상으로 ‘대화의 기법’을 개설한 이래 숙명여대는 1995년 2학기부터 ‘실용 화법’이라는 강좌를, 중앙대는 1996년 1학기부터 ‘문장 작법과 화법’이라는 강좌를 개설한 정도다 .
  서구의 교육 실태와 비교하면 국내 화법 교육의 부실 정도는 더욱 심하다.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습관적으로 말하기와 듣기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효과적인 듣기에 노력하기는 고사하고 자기 표현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인 상당수는 제대로 된 화법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적인 문화 배경도 제대로 된 화법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임칠성 전남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 되고 체면 의식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며 화법 교육 부실의 또 다른 원인을 진단했다.
  그러나 대학을 비롯한 교육 현장의 교육 방향이 점차 실용성 위주로 가고 있고, 사회 생활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태도나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만큼 화법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올바른 문장 구성을 위해 작문을 배우듯, 올바른 언어 생활을 위해서는 화법을 익혀야 한다. 이대규 전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개인적인 일상 생활, 사회 활동, 직업 활동에 필요한 대화의 생산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화법 교육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화법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듣는 이는 말하는 이의 인격, 인간 관계, 지적인 호소력과 연관해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법이 단순한 메시지의 전달과 이해가 아니라 의미의 공유 과정을 함께 하는 작업인 셈이다. 화법은 재주가 아니라 인격의 진솔한 표현으로도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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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토론. 토론이 아니라 씁쓸하게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을 보면서, 학생들의 스피치를 들으면서, 요새 애들의 이상한 영어 [s]에 가까운 'ㅅ' 발음과 마찰음 [z]에 가깝게 내는 'ㅈ' 발음을 들으면서, 누구보다도 '대화'를 어렵게 생각하는 나 때문에라도 얼른 좋은 논문을 써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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