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1. 화요일. 5시부터 6시 20분까지. 비교적 짧게 회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정말 그만 둬야겠다.

 

조직이 나를 착취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나아질 희망은 보이지 않을 때, 긍정적인 자극이 아무것도 없을 때, 동료들은 패배주의에 휩싸여 근근덕신 생계를 연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집단에서, 과감히, "탈출"하는 것이다. '안정된 처지'로 보일 수 있다는 겉모습에 휘둘려 게으르게 지내다가는 나 역시 그들처럼 패배주의에 휩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찌질한 처지로 늙어갈 것이다.

 

4년 전,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고, 보수에 비하면 편하기도 했던 언어교육원을 그만두고 나올 때, 이런 종류의 일은 지금 그만두어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정말 그랬을런지는 확인한 바 없으나) 물론 그 직업에 미련도 없었고, 그만 둔 시간동안 '논문'이라는 할 일도 분명히 있었다.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교육원 일을 하면서 같이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이 일을 그만두면 그 다음에 또 이 자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면서, 발을 걸쳐 놔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힐끔거리며 갈등했던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전제 때문이었다. '나는 현실적인 능력이 떨어지니까 사람들 말을 많이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결국에는 '내 마음대로' 일을 그만두었고, 하고 싶은 강의를 했으며(그래서 비슷한 정도의 돈은 벌 수 있었다.), 논문이라는 분위기에 젖어 치열하게 공부를 했고, '대부분의 그들'이 생각할 때 더 좋은 자리로 곧 취직도 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같은 일이 또 반복되고 있다. 그때보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조금 더 좋아보이는 자리라서 주위의 그들은 더 심하게, 발을 걸쳐놓으라고 조언을 한다. 작년 겨울, 심각하게 다른 길을 모색하려 할 때, '그들'은 하나같이(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를 뜯어말리는 입장이었다. 그때도 난 나의 전제를 가동시켜서 '그래, 나는 현실적인 조언을 좀 들을 줄 알아야 해.'라고 생각하고, 내 의지를 접었었다. 움켜쥔 것을 놓고, 새로운 것을 향해 달려들 의지도 부족했었지만.......

 

 

 

이런 결정들, '그들'v.s. '나'로 정리되는 결정들은 이번뿐이 아니라 앞으로 살면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들'은 내게 '니가 잘 몰라서 그런가본데, 세상이 그런 줄 아느냐, 다 그런 법이다, ~~란 말이 괜히 나왔겠느냐,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등의 레퍼토리로,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조언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위한다고 말하는 '안전빵'의 사는 방법은 '근근덕신 생계를 이어가며 사는 법', '재미없게 심드렁하게 사는 법'과 상통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또 어떤 때에는 알맹이보다 겉으로 보이는 번드르르함-명예-쪽으로 조언해 주는 경우가 많으며, 까놓고 보면 그들의 판단 기준 중 하나는 당장 눈에 보이는 '돈'일 때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들'은 재미없게, 행복이란 게 뭐냐 하면서, 그저 달력의 빨간 날만 들여다보면서 생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오늘 이런 저런 생각들과 이 글을 끄적이면서, '내가 비현실적이기에 '그들'의 조언을 들어본다'는 전제는 이제부터 삭제해 버리기로 했다. 몇 명의, 내가 동경하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 그들의 조언만 듣도록 하겠다. 혹은 그런 사람이 없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했을지, 체제 전복적이며 용감했던 젊은 예수그리스도의 태도를 따라가기로하겠다. 

 

 

일단, 이번 학기, 9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다시 주경야독, 비정상적인 생활을 해야겠다. 감상에 빠져 늙는 걸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더 늙기 전에, 내 몸과 마음이 소진되기 직전에 대책을 마련할 때였다.

 

하나님 이 가을, 제게 지치지 않는 힘과 대부분의 그들의 말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행동함에 있어서 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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