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2일 새벽 0:49 

아이의 봄방학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름 철저히 대비한 겨울방학은 매일매일의 프로그램으로 뭔가 빡빡하고 뿌듯하게 채워져 나갔는데, 무방비 상태로 있던 봄방학은 하루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다. 아이도 그닥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 같지 않고, 나와 남편은 집에서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계속 말동무 비슷한 걸 해 가면서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개강을 앞두고 마음은 조여오는데, 아이는 시간을 함께 보내주길 원한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나도 생각한다. 아이는 키우려고 낳은 거니까.

오늘도 또 하루가 지나갔다. 25일까지 미루어진 논문 투고일이 어느새 다가오고 있고, 이것도 가능할지 포기해야 할 지경에 왔다.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나의 무능함을 탓할 뿐이다.

아이와 나, 그리고 남편은 흡사 코로나 때 집에 세 식구가 뭉쳐 있던 것마냥 겨울 내내 같이 있었다. 가끔은 내가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는데, 오늘 다행히? 내가 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체감할 만한 일이 있었다.  전공의 파업의 여파가 나에게도 미칠 줄이야. 재이 피부과에 가서 2시간 넘게 기다려서 3분가량 진료를 받고 나왔다. 퇴근 시간을 2시간 훌쩍 넘게 고군분투 중인 의사도 못할 일이지 싶고, 금요일이 무섭다고 말하는 간호사들은 웬 고생인가 싶고, 수술 앞두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쩔까 싶었다. 그나마 나와 재이는 간단한 약 처방 정도, 경과 보고 정도여서 괜찮았지만, 그 옆에 산부인과, 그 앞에 폐암 센터의 환자들은 정말 어쩌란 말인가.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레 공격해 오는 윤의 태도는 정말 후져도 참 후지다. 상대방과 타협, 적절한 조정점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일방적인 건 그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이다. 그래서 전공의들의 사직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아이의 약한 피부는 언제 단단해질 수 있는 걸까. 만10세가 되면 정말 나아질까. 이제 만8세가 다가오는데 스카치테이프를 뜯다가 어긋나 작은 상처가 난 것도, 작은 벌레에 한번 물렸을 뿐인데도 그 자국이 한 달가량 간다. 그리고 자주 몸은 가렵다.

이런 와중, 너무 우울하고 외롭다. 난 이 시간을 잘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아이는 엄마아빠가 유명한 영웅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웅들은 다 힘들고 불우한데 자기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행복하니 영웅이 되기는 힘들겠다고 했다. 에게도 힘든 시간이 분명 있었고, 지금도 그런데 영웅이 되지 못한 까닭은 그 힘듦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냥 시간에 기대어 넘어왔기 때문이겠지 싶다. 아무리 생의 주기가 길어졌다고 하지만 내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앞으로 10년, 그 다음 10년이면 나도 70이 다 되어 간다. 재이 말대로 내가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나 족적을 남기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딱 10년이다. 10년 동안 난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성실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화창한 봄 날, 아늑하고 자그만한 성당에서
석진이와 일한 오빠 결혼식이 있었다.

졸업 후 못 보던 반가운 얼굴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시간은 참 많이 흘렀는데도, 사람들...
외모만 아주 조금 변했을뿐,
그 사람 고유의 목소리나 말투, 특유의 표정, 전해지는 느낌 등은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우리가 대학생이었던, 학기 중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던, 스폰서를 따려고 학교 앞을 돌아다니던 때로, 백관 앞에서 새벽 한 두시까지 촛불 켜고 노래하며 술 먹던 시절로, 나우누리로 채팅을 하던, 추석 땐 한강에서 불꽃놀이도 하고 연애도 하던, 그때로 돌아가게 되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들도 그렇고,
학교 안에 어김없이 피어 있던 목련꽃도 그렇고,
덕분에 10년이란 시간이 머리 속에서 마구 흘러 다녔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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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목련! 탐스럽기도 해라.
도서관 앞 길과 학관 앞 길의 목련.
학교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해마다 피는 목련도 친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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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학관 앞 꽃놀이에 이어 두 번째.
ETC 멤버 중, '소녀 호땡'과 '진국 소녀 지윤이'.
목련이랑 애들이랑 참 예쁘구나~!^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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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1)- 99, 00, 01, 02(?)
다들 어느새 졸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있었다.
모두 똘똘하니 하고 싶은 일들 하면서 멋지게 살고 있는 듯하다.
희연이란 친구와는 얘기도 제대로 못 해 본 사이지만, 메릴스트립 닮은 후배로 기억하고 있다. 02던가 01이던가 가물가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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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2)-우리 ETC!!!
이젠 어느새 친구처럼 편하다. 마음 여리고, 재밌는 아이들.
아마도 우린 늙어서도 만났다 하면, 공연을 하자는 등의 회의를 할 거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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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3)- 이 날 제일 반가웠던 진환이! 얼마만이냐......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귀염둥이에다가, 노래 잘 하는, 따뜻한, 속 깊은, 유쾌한 지놘이.
기쁨의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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