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서 3D 초음파로 해님이를 만났다.

4주만에 보는 건데, 해님이는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 5분 동안 복도에서 걷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우석 목소리도 들려주는 등 여러 회유책을 써봤는데,

결국 옆 모습과 양 손과 발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보여줄 뿐이었다.


해님이 몸무게는 1kg이 조금 넘었고(난 임신 전보다 6kg 정도가 늘었다.)

입술과 인중이 날 똑 닮았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우석과 엄마는 코도 날 닮고, 얼굴형도 나란다.

집에 똑같이 생긴 아이가 한 명 더 온다고 상상하니, 그 신기한 광경에 웃음이 나고 기대가 된다.




지난주부터인가 컨디션이 안 좋았다.

허리가 아파 매번 숙면을 하질 못하고, 새벽 서너 시경에 잠들기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저께부터는 새벽 6시10분경이면 해님이가 움직여서 나도 깼다.

철분제 때문에 위는 쓰리고(아플 땐 먹지말다가 밥 먹자마자 먹으라고 한다.)

3월은 다 가고 있는데 논문은 끝내기는커녕 하나도 진도가 나가지 않고, 3월 말 마감일은 다가오고,

시간만 더럭더럭 가고 있는 것 같고,

꽃 피는 봄인데 즐거운 일도 없이 집에만 앉아 있고,

부끄럽지만, 남들은 다 간다는....태교 여행, 혹은 임산부 때에만 누린다는 호사? 뭐 이런 것도 없어서(하긴 난 평소가 '호사'에 가까운 삶일 수도 있는데...)

오늘 병원에 가면서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해님이를 만나고 보니,

배가 뭉치지 않게 남은 3개월, 마음을 좀 더 느긋하고 편하게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내 안에서 나름 고생 중일 해님이를 위해 좀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눈도 깜빡이고, 계속 표정과 손발을 움직이는 해님이가 내 안에 있다는 게, 좀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6월에 해님이를 순조롭게 만날 수 있도록, 출산에 대한 준비도 정성껏 해야겠다.

해님이와의 동거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준비해 내가고...

생각해 보니, 준비해 둘 게 많다.




논문의 압박이나 내 앞날에 대한, 세상살이에 대한 쪼임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이왕이면 우리 둘 모두에게 좋고, 행복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즐거운 일들을 누리면서 남은 날들을 '좋은 시간'으로 '스스로' 만들어나가 봐야겠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기대됐던 시간으로 만들어봐야겠다.







*to. 해님. 

아까는 거꾸로 내 뱃속에 들어 있다고 하는데... 방향을 좀 돌려주길.
돌려주겠지? 남은 기간 동안 잘 있다고 40주 될 때 상봉하자!
너랑 만나는 순간은 상상만 해도 감격의 눈물이 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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